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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켜 먹는 음식 메뉴로 가장 만만한 것을 들자면 역시 중식, 그중에서도 짜장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짜장면이라는 건 사실 막상 먹어보면 노상 아는 그 맛인데도 한동안 좀 안 먹었다 싶으면 귀신같이 먹고 싶어지는 일종의 주기가 따로 있는 종류의 음식이다. 게다가 동네 중국집마다 짜장면 탕수육 세트 정도는 있게 마련이고 가성비까지 나름 훌륭하니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짜장면을 시켜서 먹자고 하면 그는 언제나 곱빼기를 시켰고 나는 간짜장을 시켰다. 딱히 입이 고급이라 디폴트한 짜장면은 먹지 않는다는 주의가 아니라, 짜장면을 먹고 나면 그릇 아래쪽에 흥건하게 소스가 남는 것이 너무 싫어서였다. 똑같은 가게의 똑같은 짜장면을 시켜 먹어도 그의 그릇은 대개 깨끗하게 비워지는 데 비해 내 그릇에는 언제나 물이 잔뜩 생긴 소스가 흥건하게 남았고, 이게 도대체 왜 이런지 내가 짜장면을 깔끔하게 먹을 줄을 몰라서 이러는 건지 하는 생각에 그가 먹는 것을 연신 곁눈질해 가며 열심히 따라 해 본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거 도대체 왜 이런 걸까 하고 한 마디 했더니 그는 지나가는 말 비슷하게 먹던 중에 섞여 나온 침 때문에 그런 거 아니냐는 답을 했고 그럼 내가 침을 이만큼이나 흘리면서 짜장면을 먹는단 얘긴가 싶어 그게 그렇게나 민망하고 면구스럽고 짜증이 났다. 그러다가 어느 날 희한하게도 간짜장을 먹을 때는 그런 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뒤로는 내내 간짜장만 시켜 먹곤 했다.
딱히 시위에 나가지도 뭔가를 열정적으로 하지도 않았는데도 탄핵이 가결되고 난 후 열흘 남짓 동안 쌓였던 피로가 와르르 몰려드는 기분이어서 일요일 하루는 내내 병든 병아리모양 꼬박꼬박 졸다 깨다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점심 때가 되고 또 뭐라도 한 그릇 먹어야 할 것 같아 짜장라면을 하나 끓이다가 문득 유독 내 그릇에만 흥건하게 고이던 짜장면 소스를 생각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짜장면을 먹을 때 바닥에 생기는 물은 짜장면 소스를 끓일 때 넣는 전분이 침 속에 든 소화효소에 분해돼서 생기는 수분으로, 그러니까 그게 전적으로 다 침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같은 양의 침 속에 소화효소가 많이 분비되기 때문에, 짜장면을 먹을 때 바닥에 물이 많이 생기는 사람은 말하자면 그만큼 짜장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고 한다. 아, 그래서 소스를 끓일 때 전분을 넣지 않는 간짜장을 먹을 때는 물이 생기지 않는 거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러니까 나는 그보다 훨씬 더 짜장면을 좋아했었던 거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고 조금 서운해졌다. 그냥 유난 떨지 말고 같은 짜장면을 좀 더 시켜 먹을걸 하고. 설령 바닥에 고이는 그게 물이 아니라 전부 다 침이면 또 어떤가 하고. 이렇게 빨리 헤어질 줄 알았더라면 체면치레 같은 건 좀 덜 해도 좋았을 텐데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