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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애서 살다가 경기도로 이사 온 후 한동안 가장 크게 적응이 안 된 것이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은행'이 너무 멀다는 거였다. 서울에 살 땐 집에서 다른 일을 하다가도 뭔가가 생각나면 지금 집 앞 편의점에 다녀오는 수준으로 훌쩍 은행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서울을 벗어나니 그게 잘 안 됐다. ATM기는 여기저기 많이 있었지만 '은행'에 가기 위해서는 제법 한참을 걸어가거나 급기야는 버스를 타고 한두 정거장 가야 할 때도 있었다. 물론 웬만큼 적응된 지금은 경기도에 은행이 적은 것이 아니라 서울에 은행이 너무 많았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만.
두 번째로는 버스의 배차 간격이었다. 서울의 버스 정류장에는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의 시간이 어지간해서 5분을 넘기지 않았던 것 같은데 경기도 버스는 정류장에 뜨는 버스 도착 시간이 10분 이내면 '곧 오는 것'이고 조금 타이밍을 잘못 맞추면 20분 가까이씩 기다려야 할 때도 허다하다. 이것 또한 처음에는 뭐가 이런가 하는 생각에 꽤 볼멘소리를 했었지만 지금은 적당히 적응하고 살게 되었다.
업무 때문에 미팅을 하러 갔다가 봉안당에나 들르려고 버스를 타러 갔다. 그 정류장에서 봉안당에 가는 버스는 총 세 대가 있는데, 그중 한 대는 좀 많이 돌아가는 버스이고 두 대는 거의 노선이 비슷하다. 버슷한 노선의 다른 버스 두 대가 5분 정도 간격으로 오고 있었다. 먼저 오는 차를 놓치면 그다음 차를 타도 되겠지만, 심지어 위에도 썼듯 경기도 버스의 배차 간격이 5분이면 그건 거의 '바로 오는' 수준이지만 괜히 그 5분이라는 시간이 아까워서 핸드폰도 들여다보지 않고 뚫어지게 차선만 바라보다가 먼저 오는 버스를 냉큼 탔다. 아슬아슬하게 자리는 없었고, 아 그냥 다음 차 탈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추운 날씨에 5분 더 정류장에 서 있느니 따뜻한 차 안이 훨씬 낫다고 열심히 상황을 합리화했다.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정류장 몇 개를 지나가는 동안도 자리는 나지 않아서, 나는 봉안당까지 가는 길의 거의 절반 정도를 서서 사다가 내릴 때가 거의 가까워 와서야 난 자리에 앉아 아픈 다리를 쉴 수 있었다.
두어 정거장쯤 가서 봉안당 앞 정류장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리기 직전, 뒤에서 쫓아온 버스 한 대가 내가 탄 버스를 앞질러 먼저 정류장에 잠깐 내렸다가 내가 내릴 때쯤 출발했다. 그 버스는 아마도 3분 후에 올 예정이었던 비슷한 노선의 다른 버스인 것 같았다. 심지어 그 버스는 텅텅 비어있기까지 했다. 순간 어쩐지 몹시 억울해졌다. 그 5분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서 자리도 없는 버스를 타고 요 앞까지 서서 왔는데. 그것만도 억울한데 심지어 도착까지 늦게 하다니. 괜히 허탈해져서 떠나가는 버스의 뒤꽁무니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서두른다고 늘 잘 되는 건 아니고, 빨리 한다고 늘 옳은 선택이 되는 건 아닌가 보다. 그냥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