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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Dec 18. 2024

이런 식의 '정신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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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 주문씩이나 할 정도는 아니고, 그러나 집 근처 슈퍼에 가서 후다닥 사 오기에는 뭔가 꺼림칙한 물건들이 몇 가지 생기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여기서 꺼림칙하다 함은 마트에서 사면 분명 조금이라도 더 싸게 판다든가 혹은 같은 값에 원 플러스 원을 한다든가 선택의 폭이 좀 더 다양하다든가 하는 물건들을 말한다. 그러나 이런 물건 몇 가지를 가지고 마트에 주문을 하려고 하면 괜히 최소 주문 금액을 맞추겠다고 지금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이런저런 물건들을 사야 하는, 소위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가 생기곤 한다.


이럴 때 차선으로 이용해 볼 만한 것이 마트와 같은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소위 SSM 브랜드의 슈퍼마켓들이다. 이런 곳들은 이를테면 마트와 집 근처 마트의 딱 중간 중도에 위치해 있어서 최소 주문 금액도 마트보다는 낮고 선택의 폭은 집 앞 슈퍼보다는 다양한 경우가 많다. 단 이곳의 한 가지 단점은, 그렇게 물건을 주문해 놓고 보면 역시 같은 브랜드의 마트보다 물건이 아무래도 조금은 더 비싸서 뭔가 손해 본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렇다 보니 외출할 일이 있으면 어지간하면 마트에 들러서, 거기서 필요한 물건 몇 가지를 사 오는 편이다. 이러면 여러 가지 문제가 동시에 해결되기 때문이다. 단 이 때도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있다. 마트라는 곳은 늘 말하는 바 돈이 없는 게 문제지 살 물건이 없지는 않은 장소이기 때문에, 이것도 필요할 것 같고 저것도 필요할 것 같다는 식으로 주섬주섬 담다 보면 그냥 집에 앉아서 편하게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는 거나 별로 차이도 없을 만큼 카트에 담아버리는 일도 흔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오늘 꼭 사야 하는 물건들의 항목을 입 속으로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눈 옆을 가린 경주마처럼 돌진해 사야 할 것만을 사고 곁눈 한 번 안 돌리고 마트를 나오는 강단이 필요하다.


외출할 일이 있어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렀다. 집 근처 마트가 아닌, 집에서 조금 떨어진 요즘은 잘 가지 않는 다른 브랜드의 큰 마트였다. 요거트 게맛살 등등, 오늘 꼭 사야 할 것만을 중얼거리며 이것저것 물건을 담다 보니 연말이라 그런지 이런저런 할인품목들이 많이 쌓여 있어서 그만 또 시선이 분산되고 말았다. 맛있을 것 같은 버터쿠키도 있었고 입 심심할 때 먹기 제격인 짭쪼금한 감자칩도 있었다. 그리고 어디 보자. 집에 샴푸를 거의 다 써가지 않던가? 샴푸 린스는 또 의외로, 그다지 필요하지 않을 때는 다양한 제품들이 싸고 다양하게 많이도 나와 있는 것 같지만 막상 사겠다고 생각하면 린스를 뺀 샴푸만 서너 개를 묶음으로 판다든가 하는 식으로 딱 마음에 맞는 구색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렇게 주섬주섬 몇 가지를 홀린 듯 담고 계산을 하고 보니 어느새 마트 주문 금액만큼은 아니어도 그냥 SSM 슈퍼에 주문했으면 이걸 집까지 들고 가는 수고는 안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금액이 되었다. 뭐, 괜찮아. 거기서 사면 샴푸나 버터쿠키를 이 돈에 못 샀을 테니까. 같은 돈에 이것저것 많이 사 왔으면 됐지 뭐. 언제나 그랬듯, 나는 그런 식의 '정신승리'를 하며 집에 돌아왔다.


그거 왜 그러냐면 네가 계획을 세워놓고 장을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장 한 번 볼 때 필요하겠다 싶은 물건은 죄다 체크를 해서 한꺼번에 다 주문해 버려야 쿠폰 쓰기도 좋고 중간중간 헛돈 쓰는 일이 없지 하고 그가 핀잔을 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 몰라 몰라. 그런 거 당신이나 하지 나는 그런 거 못한다고. 못하게 생겨먹은 성격인데 어쩌라고. 나 혼자 살겠다고 내빼놓고 이제 와서 그런 잔소리 같은 거 먹힐 줄 아냐고. 괜히 제 발이 저려서 그런 말로 애써 못 들은 체한다. 뭐 사실이 그렇기도 하다.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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