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
'감쓰'라는 말이 있다. '감정 쓰레기통'의 약어다. 말 그대로 혈연 혹은 친분 등을 빌미로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일방적으로 쏟아붓는 행위를 두고 '감정 쓰레기통 취급한다'는 식으로 쓴다.
처음 이 말을 알고는 좀 놀랐다. 이야 세상 정말 각박하구나. 딱 그런 느낌이었다. 아니 사람이 사는 게 너무 힘들면 주변 사람 붙잡고 징징거릴 수도 있고 하소연할 수도 있고 그런 거지, 그걸 '감정 쓰레기통'이라니. 왜 이렇게 갈수록 사람들이 눈곱만큼도 손해 안 보고 살겠다는 약은 생각만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게 꼭 그렇게만 생각할 일일까.
나의 경험상 늦은 시간에 걸려오는 전화는 대개 별로 반갑지 않은 전화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게는 저녁 아홉 시도 넘어서 전화를 하는 지인이 몇 사람 있다. 그들의 용건은 대부분 주변 사람에게 든 섭섭한 이야기들이다. 대개 남편이고, 다음이 아들딸, 가끔은 시댁 식구들부터 직장 동료에 이르기까지 범위도 다양하다. 처음엔 하던 일을 멈추고, 텔레비전을 보던 중이라면 끄거나 소리를 뮤트하고 성심성의껏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그런 전화들이 흘러가는 패턴은 대개 비슷하다.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한테도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었겠지요 하고 대답하면 너는 도대체 누구 편이냐는 서운해하는 항의가 돌아온다. 맞장구를 치며 그건 상대가 잘못했네 하고 거들면 그때부터는 역으로 우리 OO(주로 이런 뒷담화의 주제는 가족들인 경우가 많으니) 욕하지 말라는 식으로 되레 언짢아한다. 편을 드는 것도 아니면서도 맞장구를 치는 것도 아닌 그 미묘한 지점을 찾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그리고 이 전화가 가장 섭섭하게 느껴지는 지점은 그렇게 본인의 부정적인 감정을 내게 다 쏟아붓고 난 뒤에 늦은 시간 전화해서 시간 너무 많이 뺏아서 미안하다고, 그런데 넌 어차피 남편도 없고 애도 없잖아 하고 덧붙일 때다. 그냥 늦은 시간 전화해서 쉬는 거 방해해서 미안하다 정도에서 끝내면 안 되는 걸까.
그래서 언제부턴가 나는 '그런 용건'으로 내게 전화를 걸어오는 분들에게서 특정한 시간대에 연락이 오면 블루투스 이어폰을 꺼내 끼고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눈으로는 서핑을 하든 다른 뭔가를 읽으며 귀에 들리는 몇몇 말에만 건성건성 대답한다. 아차피 그분들은 사태의 해결책이나 획기적인 개선 방법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울화통이 터지는' 본인의 속내를,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듯 손나팔을 하고 고함지를 대나무숲이 필요할 뿐이다. 그래서 적당적당한 대꾸만을 한다. 물론 그러다가 가끔 너 내 말 듣고는 있는 거냐는 가시 돋친 반문이 돌아올 때가 있다. 처음엔 더러 뜨끔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또한 대충 받아넘긴다. 내가 당신과의 통화에 그렇게까지나 진심이 아니라는 걸 당신이 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약간의 '수동 공격성'이 내게도 생겨버린 까닭일 것이다.
'감쓰'라는 말이 있다. '감정 쓰레기통'의 약어다. 말 그대로 혈연 혹은 친분 등을 빌미로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일방적으로 쏟아붓는 행위를 두고 '감정 쓰레기통 취급한다'는 식으로 쓴다. 처음 이 말을 알고는 좀 놀랐다. 이야 세상 정말 각박하구나. 딱 그런 느낌이었다. 아니 사람이 사는 게 너무 힘들면 주변 사람 붙잡고 징징거릴 수도 있고 하소연할 수도 있고 그런 거지, 그걸 '감정 쓰레기통'이라니. 왜 이렇게 갈수록 사람들이 눈곱만큼도 손해 안 보고 살겠다는 약은 생각만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했던 건 내게도 서울에 올라와 처음 취직한 회사가 너무나 이상한 곳이어서 편도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퇴근길 내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 울면서 하루의 일을 하소연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즉 내게도 다른 누군가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썼던 기억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연락조차 끊어져버린, 날마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아는 동생의 징징거림을 받아주던 그때 그 언니는 지금 어떻게 살고 계실까. 산다는 건 가끔 참 쉽지 않다. 아주 잘 사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는데도, 웬만큼만 하면서 살자고 생각하는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