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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Dec 23. 2024

대통령이 세 번이나 탄핵되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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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뭘 하나 하려면 제대로, 재미나게 신나게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종특'인 모양이다. 영문을 알 수 없는 계엄에 뒤이은 대통령 탄핵까지 그야말로 이러다가 나라가 망하는 게 아닌가 싶은 와중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즐겁고 신나게 이 상황을 헤쳐나가는 것 같다. 특히나 시위 현장에 시민들이 만들어서 들고 나오는 각양각색의 깃발들이 워낙 재미있어서 작게는 실소를 크게는 폭소를 터트리는 일이 자주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보살만이 팬 노릇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듣는 한 야구팀의 로고가 그려진 깃발이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한 국보급 투수조차도 그 팀에 있을 때 통산 100승을 하지 못했고 심지어 메이저리그도 아닌 한국 프로야구에서 100승도 못한 투수를 왜 비싼 돈을 주고 데려오느냐던 메이저리그의 팬들이 그 팀의 수비 에러를 모은 클립을 보고는 모두 납득했다던가 하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팀이었다. '날 힘들게 하는 건 야구팀 하나로 충분하다'는 문구를 읽고 한참을 웃었다.


야구는 매년 4월부터 10월 정도까지 반 년 동안 일주일에 여섯 번, 세 경기씩 두 시리즈를 매일매일 한다. 여기서 모든 야구팬의 번뇌가 시작된다. 야구는 워낙에 변수가 많은 경기여서 제아무리 날고 기는 강팀이라 해도 어이가 없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졸전을 한 시즌에 몇 번은 하게 마련이다. 물론 정말 강팀이라면 한 시즌에 두세 경기 정도 나올 소위 '대첩급 경기'를 한 시즌에 열 경기 가까이 치르는 팀이라는 것도 있다. 야구를 잘하는 팀과 못하는 팀의 차이는 대개 이런 식으로 생겨나고 급기야 점점 벌어진다.


그래서 그 깃발을 보고 한참 웃다가, 나는 갑자기 정색을 했다. 아니 잠깐만. 저 팀이 마지막으로 우승한 게 99년도인지 그랬고, 그 해에 저 팀에 밀려서 우승 못한 게 내 고향이 연고지인 그 팀이 아니던지. 한국 프로야구 리그가 출범한 것이 1982년이니 올해로 42년이 된 셈이다. 그러니 그걸 구단 열 개가 나눠가진다고 하면(물론 리그 초창기에는 팀이 6개밖에 안 됐던 시절도 있지만) 한 팀이 네 번씩은 우승했어야 평균이란 얘기가 된다. 그러나 모두가 다 아는 바 혼자 42번 중에 12번을 우승한 팀이 있으니 그 팀이 그만큼 많은 우승을 하는 동안 제 몫의 우승을 못 챙겨 먹고 빼앗긴 팀도 있다는 말이 된다. 내 연고지 팀이 대표적인 '우승 못하는 팀'이 아니던지. 이 팀의 마지막 우승은 자그마치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태어난 아이가 지금 30대 초반이고, 그 아래로 태어난 사람들은 이 팀이 우승하는 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남의 말 할 때가 아니었네. 그렇게 중얼거리고 한참 웃었다.


이 팀이고 저 팀이고 대통령이 세 번이나 탄핵되는 동안 우승 한 번 못했다는 건 프로 스포츠 구단으로 좀 심각하게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고민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특히나 우승한 지 30년 넘어가는 경상도 연고의 모 팀이라면 더더욱. 두 팀 모두 새 시즌에는 성적 좀 잘 내서, 안 그래도 이 머리 아픈 세상을 사는 팬들에게 야구로까지 근심을 안겨주지 않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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