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
월요일 오전마다 미팅이 잡히면서 내 월요일은 좀 많이 버라이어티해졌다. 일단 가뜩이나 정신없는 월요일 오전에 시간 맞춰 어딘가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 주는 텐션이 만만찮고(날마다 출근하시는 분들이 듣기에는 가소로우시겠지만) 미팅을 마치고 나면 그의 봉안당에 들어서 이런저런 넋두리를 하고 늦은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온다. 그 와중에 가끔은 돌발로 우체국에 가야 할 일이 생기는데 이렇게 되면 월요일 아침의 퀘스트 난이도가 두 배 정도로 올라간다. 부쳐야 할 물건을 하루종일 가방에 넣고 다닐 수는 없으니 미팅을 하러 가기 전에 우체국에 들렀다가 가야 하고, 그 과정에서 또 만만찮은 시간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략 우체국에 들를 일까지가 있는 월요일의 나는 버스만 일곱 번에서 여덟 번을 갈아타야 한다. 이렇다 보니 퍼뜩퍼뜩 빨리빨리 움직이지 않고 미적거리다가 환승 가능한 30분을 넘겨 버리면 하루에 순수 버스비만 만 원을 훌쩍 넘게 지출하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차비 비싼 빨간 버스를 타고 시 경계를 넘어 서울이라도 다녀오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월요일의 내게는 미션 안의 작은 미션 비슷하게 하나의 미션이 추가로 주어진다. 최대한 빨리빨리 움직여서 어떻게든 많이 환승을 찍고 버스비를 세이브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처럼 쉽진 않다. 이미 몇 번이고 쓴 것 같지만 5분만 기다려도 왜 이렇게 버스가 안 오냐는 짜증이 나게 만드는 서울 버스와는 달리 경기도 버스는 10분 안에만 오면 빨리 오는 식으로 배차 간격이 매우 널찍널찍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린 버스의 정류장에서 바로 다음 버스를 갈아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갈아타기 위해 한참을 걸어가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볼일을 다 보고 다음 지점으로 이동해야 하는 버스가 타고 온 것과 같은 번호 버스밖에 없어서 '절대로' 환승 적용을 받을 수 없는 구간도 있다. 그래서 아무리 동동거리고 애를 써도 내 최선은 그간 늘 여섯 번 정도였고 아주 운이 좋으면 다섯 번이었다.
어제는 우체국부터 시작해서 미팅을 하고, 봉안당에 갔다가 점심까지 먹고 돌아오는 풀 코스가 잡혀 있는 날이었다. 또 뭘 어떻게 해야 오늘 버스비를 만 원 안으로 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것저것 다 귀찮아져서 그냥 오는 대로 타고, 되는 대로 걷고, 괜히 아등바등 애를 쓰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는 이상하게도 우체국에 별로 사람이 없다던가 우연히 잘못 탄 버스가 목적지로 가는 다른 노선의 버스였다든가 배차시간이 30분인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온다든가 하는 식의 몇 가지 우연이 겹쳐서 무려 버스를 일곱 번 갈아타는 동안 '환승'이 아닌 '승차'로 카운팅 된 것이 딱 두 번뿐이었다. 야, 이런 일도 가능하구나. 작심하고 환승 좀 잘 찍어보겠다고 그렇게 애를 써도 죽어도 안 되더니 아무 생각 없이 오는 대로 타는 날 이런 세계 신기록을 세우다니. 참 사는 거 내 마음대로 안된다 싶어 헛웃음이 났다.
그냥 가끔은 되는 대로, 닥치는 대로 살아보는 것도 좋다.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애를 써봐야 안 되는 일은 결국 안 되고 될 일은 어떻게든 되기 때문이다. 너무 힘주지 말고 살아야겠다. 그런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