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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Dec 26. 2024

그까짓 생수병 뚜껑

-394

나는 손이 좀 많이 작은 편이다. 학창 시절 피아노를 치는 수행평가를 연습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나는 엄지에서 새끼손가락까지를 있는 힘껏 뻗어봐야 같은 옥타브의 도에서 라 정도를 아주 겨우 칠 수 있을 정도다. 키보드를 기준으로 한다면 제일 상단에 놓여있는 숫자키의 1에서 0까지가 겨우 짚어지는 정도다. 손이 이렇게 작다 보니 뭘 해도 믿음직스럽지가 못하고 어딘가 어설퍼 보이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요즘 나를 쓸데없이 화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생수병 뚜껑이다.


요즘 들어 나오는 생수병들이 일제히 환경보호 운운 하며 라벨을 없애기 시작했다. 아, 여기까지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 오히려 분리수거를 하는 입장에서도 편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걸로는 뭐가 성에 차지 않던지 얼마 전부터는 생수병의 뚜껑들이 표가 나게 납작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특정 브랜드 생수 한 종류만 그렇더니 슬금슬금 유행처럼 번져서 요즘엔 거의 대부분의 생수병 뚜껑들이 다 예전 대비 절반 혹은 3분의 1 수준으로 납작해진 느낌이다.


 앞서도 썼듯이 나는 손이 작아서 손으로 하는 일은 잘하건 못하건 일단 몹시 어설퍼 보인다. 특히나 꽉 잠겨 있는 모든 종류의 병뚜껑을 열어야 할 때가 아주 압권이다. 그 와중에 뚜껑이 확 납작해져 버린 생수는 새 병을 꺼내 딸 때마다 한참이나 실랑이를 벌어야 한다. 그렇게 별 것도 아닌 생수병 뚜껑 하나를 여느라 한참이나 실랑이를 벌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버럭 짜증이 나서 아니 무슨 거창한 환경보호를 한다고 병뚜껑을 이따위로 만드는 거냐고 나도 모르게 투덜거리게 된다.


머리가 좀 식고 나서 생각하면 그렇다. 예전의 두꺼운 뚜껑의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치면 뚜껑을 만드는 데 드는 플라스틱이 절반 정도로 줄어들 것이고, 생수를 사다 먹는 사람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을 테니 거기서 절약되는 플라스틱의 양이라는 것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어쩌면 라벨을 붙이지 않는 것보다 플라스틱 자체를 덜 사용하는 효과는 더 클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납득할만하다가도, 또 다음 생수병을 딸 때 납작해진 뚜껑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아 빙글빙글 헛도는 꼴을 몇 번 당하고 나면 어김없이 아 고까짓 플라스틱 좀 아껴서 무슨 환경보호를 얼마나 한다고 생수병 뚜껑을 이따위로 만드는 거냐고 어김없이 짜증을 내게 된다. 세상에 이로운 것과 편리한 것은 반드시 같이 갈 수는 없고, 오히려 적지 않은 경우에는 거꾸로 가기 마련이라는 걸 모르지도 않는데도. 생수병 뚜껑 한 번 열어보려다가 머리끝까지 약이 올라서 한참을 씩씩거리다 쓰는 글인 게 맞다. 좀 있으면 해도 바뀌는데 난 언제쯤 이런 걸로 초연해지는 어른이 되려는지, 아직은 영 요원해 보이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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