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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Dec 27. 2024

As Time Goes By

-395

가뜩이나 잘 보지 않는 텔레비전인데 요즘은 나라가 뒤숭숭해 뉴스나마 꼭꼭 챙겨보고 있다. 물론 그 뉴스를 몇 꼭지 보고 나면 더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열통이 터지고 한숨만 푹푹 쉬게 되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내가 텔레비전을 그나마 보는 것은 주로 점심을 먹을 때인데, 아무리 그래도 요즘 뉴스는 틀어놓고 밥을 먹을 수 있는 종류의 컨텐츠가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점심시간에는 한 동물 관련 프로그램 vod를 무턱대고 틀어놓고 있다. 그냥 무조건 귀엽고 무조건 예쁜 것이 좀 필요해서.


어제 점심에는 옷장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 고양이 이야기가 방송된 편을 보게 되었다.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는데 집에서 기르는 여러 고양이 중 유독 한 마리가 옷장 속에 들어가 나오지를 않는다고 한다. 뭐, 키우는 다른 고양이들 중 한 마리가 주인 몰래 괴롭히고 있다든가 뭔 수가 있겠지 정도의 생각을 하며 보고 있었다. 그러나 일의 진상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좀 많이 달랐다. 그 고양이는, 제보자의 남편 분이 구조해 와서 기르던 고양이였고, 남편 분은 올해 초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제보자 분은 갑작스레 남편을 잃은 슬픔과 충격에 한동안 자기 스스로를 추스르는 것조차도 힘이 들었고, 시간이 조금 지나 가까스로 조금 힘을 내게 됐을 때 고양이는 이미 옷장 속으로 숨어버린 상태였다고. 거기까지를 보고 나도 모르게 아, 하는 소리를 냈다. 가끔은 숨 쉬는 것조차도 힘에 부치고 죄책감이 들던 그런 기분이 어떤 건지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아무 말도 할 수다 없었다.


고양이가 옷장 속으로 숨어버린 것은 따르던 남편 분이 갑자기 사라진 이유에 더해서, 제보자 분의 심리적 변화 또한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전문가의 진단이 있었다. 그래서 전문가의 조언으로 이런저런 솔루션을 진행해 가며(집안을 깨끗이 청소해 고양이들의 마킹 흔적을 모두 지우고 캣타워 개수를 늘리고 고양이들이 오르내리며 놀 수 있는 공간을 더 만드는 식의) 결국 옷장에 숨어 나오지 않으려던 고양이의 행동 교정을 하는 데 성공하는, 늘 그러게 마련인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그러나 아직도 떠난 남편이 보고 싶고 같이 지내던 나날이 그립다며 눈물을 글썽이던 제보자 분의 표정이 눈이 밟혀 솔직히 고양이가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건 잠시 뒷전이었다.


옆에서 그 무렵의 나를 보고 있던 분들도 지금의 나 같은 기분이셨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팔꿈치로 툭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을 쏟던 그 시기에 강아지든 고양이든 한 마리 키워보라던 지인들이 주변에 많으셨는데 제보자 분처럼 그 와중에도 고양이들을 챙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나로서는 그 말을 듣지 않기를 정말로 잘했다고도 생각했다. 정말로 슬프게도, 그리고 조금은 다행스럽게도 아무리 슬퍼도 결국 시간은 흘러간다. 내가 지금껏 살아있는 것처럼.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으며 본문의 고양이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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