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보다 소중한

좌충우돌 엄마의 진솔한 육아 분투기

by 오롯이

아기를 낳으면서 예상치 못한 것 중 하나, 바로 모유였다. 정확하게는 내가 모유 수유를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렸을 적부터 난 엄마로부터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엄마에게 모유는 삼 남매를 키우며 고생하신 요소 중 하나였다. 가슴이 땡땡 불어서 스치기만 해도 눈물이 날 정도로 아팠는데 모유가 나오지 않아 엄청 고생하셨다는 안쓰러운 이야기였다.

그래도 설마, 나는 모유가 나오지 않을까? 하고 가졌던 기대감은 두 살 터울 언니를 보며 접혔다. 언니는 제왕절개 후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아 일주일 만에 단유 했다. 역시는 역시인가. 엄마와 언니의 사례를 보니 유전적으로 나라고 다를까 싶었다. 그리고 출산 후에는 분유를 먹여야겠다고 마음먹으니 편했다.

모유를 처음 마주한 건 산후조리원에서였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유로 선택한 조리원은 사실 가슴 마사지를 수준급으로 잘하는 원장님이 계신 곳이었다. 자칭 강남권에서도 유명하셨던 원장님은 조리원 입소 다음 날부터 마사지를 해주셨다.


모유를 위한 가슴 마사지는 신박했다. 가슴을 드러내놓고 침대에 누워 있으면 원장님께서 뭉친 가슴을 조물조물 마사지하며 나오는 젖을 한 방울 두 방울 젖병에 담는 방식이었다. 당시 나는 젖몸살을 앓고 있어서 사실 마사지 손길이 달갑지 않았다. 손을 얹기만 해도 쩌릿쩌릿 아팠는데 조물조물 마사지를 해대니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도 믿어보자 싶어 견뎠다.

초유는 30cc. 바나나 우유보다 조금 더 노란 모유를 보니 참 신기했다. 선뜻 맛을 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소중한 초유를 신생아실에 가져다주며 조금은 아니 많이 뿌듯했다. 이후 세 시간마다 유축을 시작했다.


모유 양은 조금씩 늘어 110cc까지 추출되었다. 4~5번 더 받은 가슴 마사지 덕분이었다. 막상 모유가 나오고 나니 얼떨떨했다. 금방 마르려나 싶어 불안하기도 하고, 엄마나 언니와 달리 모유를 잘 내는 내가 뿌듯하기도 했다.


모유는 전혀 다른 육아 일상을 가져왔다. 예상과 달리 아주 많이 바쁘고 고되었다. 아기가 젖가슴을 직접 빨고 먹는 모유 직수는 쉽지 않았다. 젖병의 맛을 본 아기는 힘을 덜 줘도 우유가 나오는 젖병이 아니면 수유를 거부했다. 휴, 서너 번 도전한 끝에 나도 직수는 포기했다.


모유 수유를 위해서 세 시간마다 유축을 해야 했다. 초보 엄마 일상에 유축까지 얹어지니 정말 쉴 틈 없이 시간이 금방금방 지나갔다. 유축하고, 설거지하고, 모유 데우고, 수유하고, 트림시키고, 설거지하고. 한 번 수유 텀에 해야 하는 일이 이 정도가 되니 정신이 없었다. 모유를 주면서도 단유를 슬슬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어느 날 AI에게 물었다. "모유를 유축해서 아기에게 먹이는 게 너무 힘들어. 모유는 최소 얼마나 먹여야 하니?" 답변은 간결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니세프, 대한모유수유의사회 등 여러 전문 기관에서는 생후 6개월까지는 모유만을 먹이고, 그 이후부터 24개월 이상까지는 이유식과 함께 모유 수유를 지속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이왕 시작했으니 6개월은 더 해야 되나 보다 싶어 좌절했다. 초유를 보며 뿌듯했던 마음은 아주 작아졌다. 다만 모유를 먹으면 아기가 건강할 거라고, 분유값도 많이 아낄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모유 수유의 고비는 곧 또 찾아왔다. 바로 음식 제한 때문. 짜장면을 맛있게 먹은 다음 날 아기가 기름진 변을 보기 시작했다. 평소 황금색에 깔끔한 편을 보던 아기였는데, 짜장면 영향인지 굉장히 기름진 변을 여러 번 누었다. 깜짝 놀랐다. 즉시 모유를 중단했고, 분유로만 3일 정도 먹였다.


빨간 음식을 먹으면 아기 똥꼬가 빨개진다는 말도 쉽게 넘겨지지 않았다. 빨간 김치와 국물, 음식들을 모두 가리게 됐다. 하루하루 일상이 쉽지 않은 초보 맘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맛있는 거 먹기인데, 이걸 또 조절하려니 우울감이 들기 시작했다.


배우자는 조심스럽게 단유를 권했다. 내가 건강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이유였다. 술, 담배 빼고 다 잘 먹었다는 인터넷 속 엄마들의 글들을 보며 좌절한 나는 갈등했다. 그런데 한 켠에서는 '잘 나오는 모유를 중단해도 정말 괜찮겠어?' 하는 마음이 치솟았다. 고민만 거듭할 뿐 스스로를 납득할 명분도 확신도 들지 않아 괴로웠다.


배우자에게 바통터치한 후 오랜만에 나선 산책 길. 공원에 자리한 흔들의자에 앉아 푸른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어느 누구도 모유 수유를 하라고 강요한 적이 없는데, 나는 왜 스스로를 스트레스받게 방치하고 있을까?


그렇다 모유보다 소중한 건 바로 나다. 육아를 전담하는 엄마가 스트레스 없이 즐겁게 지내야 아이도 안정감 있게 지낼 것이었다. 우선순위를 바로 잡으니 고된 마음이 걷혔다.


이후 일주일에 한두 번 치팅데이를 가지고 있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되 그로부터 하루는 유축한 모유를 아기에게 주지 않고 버리는 것이다. 시간 맞춰 유축을 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은 여전했지만 햄버거, 짜파게티, 김치찌개 등 먹고 싶은 걸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해방감을 느꼈다. 하루 지나고 깨끗한 모유를 아기에게 줄 수 있다는 뿌듯함도 유지할 수 있고 말이다.


어느덧 아기가 태어난 지도 66일이 되었다. 순간순간 땀이 빠짝 날 정도로 치열한 육아 일상 속, 오늘도 모유 수유는 진행 중이다. 글을 쓰는 지금도 유축 시간이 다가오는지 가슴이 빵빵해지면서 저릿한 통증이 느껴진다. 누군가 모유 수유를 계속해야 할지 묻는다면 스트레스받지 않는 쪽을 선택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중요한 건 바로 엄마 당신이라고.


육아 역시, 삶과 동일하게 자신의 선택을 견디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글을 읽을 정도로 모유에 대한 깊은 고민을 가진 그대라면 우리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응원도 얹어주고 싶다. 모유보다 육아보다도 소중한 나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우리 모두 힘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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