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을 분리한 에너지
오늘은 제 삶의 모토라고 할 수도 있는, 제가 만든 문구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Crusade Towards Nothing.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복사한 것이기에, 부득이하게 경어체를 사용하였습니다. 혹시나 이 글을 보게 되신 분들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Crusade는 십자군 원정을 의미한다. 십자군은, 적어도 제 1차 십자군은 미쳐 있었다. 재물에, 명예에, 신으로부터의 인정에. 이들이 지닌 광기는 당면한 목표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비롯된다. 집착은 인간의 지향을 한 곳으로 응축시킨다. 그리고 이 응축으로부터 엄청난 에너지가 생성된다. 이 에너지의 발산과 분출. 그것은 그 자체로는 순수한 광기, 순수한 에너지, 가치 부여 이전에 생생한 역동으로서 존재하는 생명력이다.
Towards는 그러한 지향, 에너지의 근원이 되어주는 지향이 응시하는 것, 욕망하는 것을 지칭한다. 그것은 상투적인 언어로 목표를 의미한다. 제 1차 십자군 원정에서 이는 예루살렘이었다. 빌어먹을 예루살렘, 상징폭력과 물리적 학살과 시체와 피로 표상된 단 하나의 기호이자, 역사 속에 실제로 현전했던 도시. 제1차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무슬림과 유대인을 신의 이름으로 학살하였다. 이처럼 우리의 지향으로부터 솟아난 광기, 에너지 그리고 생명력이 하나의 고정된 목표를 추구할 때, 그것은 때때로 비극과 폭력으로 점철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간 본연의 광기, 에너지 그리고 생명력으로부터 폭력과 비극성을 배제하고, 그러한 에너지가 긍정하는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만을 추출하고자 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목표를 괄호 안에 넣는 것이다. Nothing은 이름과 달리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지향은 항상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실제로 Nothing을 지향할 수는 없다. 그것은 '아직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괄호 쳐진 목표, 유보된 목표, 도래할 목표, 일상의 리듬과 맥락에 따라 불현듯 솟아나는 목표를 의미한다. 그것은 고정되어있지 않기에 언어로 표현할 수 없고, 따라서 언어적으로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언제든 내 지향이 되어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무언(無言)가'이기도 하다. 이러한 절묘한 긴장을 대변해주는 기호로서 나는 Nothing을 채택하였다.
요약하자면, 나는 Crusade가 지닌 인간 본연의 에너지와 역동적 생명력을 긍정하고자 한다. 그러나 Crusade는 항상 특정 목표에 대한(Towards) 행동이다. 그러나 목표가 고정되었을 때, 에너지와 생명력은 폭력이란 형태로 변질될 수 있다. 제아무리 낮은 확률이라지만 나는 그것이 두렵기에, 목표의 고정을 잠시 유보시킴으로써(Nothing), 욕망으로부터 솟아나는 에너지와 생명력,그 자체만을 긍정하고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