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판결에서의 '사회적 유대관계'에 관하여
서울남부지방법원 2020. 1. 16. 선고 2019고단4619 판결 중 발췌
○ 유리한 정상: 피고인이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의 태도를 보이고, 이 사건 범행으로 별다른 이익을 취득하지는 아니한 것으로 보인다. 1회의 이종 벌금형 전과 외에 다른 전과 없다. 여러 지인이 선처를 탄원하는 등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해 보인다.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한지, 혹은 결여되었는지 여부는 피고인의 처벌 수위, 즉 형량을 정할 때 고려하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른 집행유예 참작사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사회적 유대관계"는 행위자적 요소, 즉 해당 인물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해당 인물에 대한 평가요소입니다. 법원이 사회적 유대관계를 양형 판단에 고려하는 것은, 사회적 유대관계가 견고하다면 성행 교정의 여지가 있으므로 재범의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일선 법원에서 사회적 유대관계 여부를 판단할 때 가장 분명한 판단요소는 가족, 지인들의 탄원서로 보입니다. 그 외 직업, 가족과의 교류 등을 두루 고려하는데, 사건 이후에 형성된 유대관계도 반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합의 또는 피해금액 변제를 위한 금원 조달방법을 고려한 것도 인상적입니다.
우선,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하다고 인정한 하급심 법원의 설시들을 몇 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족들이 선도를 다짐하며 선처를 호소하는 등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하다(창원지방법원 2023. 1. 17. 선고 2022노2705 판결)
피고인의 처가 여전히 피고인을 신뢰하며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탄원하고 있고, 피고인의 사회적 유대관계가 두텁다(서울서부지방법원 2019. 11. 27. 선고 2019고단2490 판결)
피고인의 처를 비롯한 가족, 피고인이 근무하는 회사의 대표를 비롯한 지인들이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탄원하는 등 사회적 유대관계 분명한 것으로 보이고, 이러한 사회적 유대관계가 다시는 이와 같은 범행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피고인의 다짐에 중요한 지지가 될 것으로 보이는 점(수원지방법원 2021. 11. 12. 선고 2021노4485 판결)
피고인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대표자로서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해 보이는 점(대구지방법원 2020. 9. 8. 선고 2019노3898 판결)
이 사건 이후에 경주에 정착하여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며 건강원을 운영해오는 등 비교적 건전한 사회적 유대관계를 형성한 것으로 보이는 점(대구지방법원 2017. 9. 15. 선고 2017노3053 판결)
피고인은 오랜 기간 직장생활을 하여 왔고 직장동료와 수사관의 도움으로 피해자들 중 상당수에게 피해금액을 변제하는 등 비교적 견고한 사회적 유대관계가 인정되는 점(창원지방법원 2022. 10. 27. 선고 2022노140 판결)
피고인의 아버지가 합의금 마련을 위해 퇴직금 중간정산까지 하는 등 가족들의 계도의지와 사회적 유대관계가 뚜렷해 보이는 점(서울고등법원 2023. 6. 20. 선고 2023노554 판결)
반면, 사회적 유대관계를 미약, 불분명, 결여로 평가한 하급심 법원의 설시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재범을 방지해 줄 사회적 유대관계가 미약한 점 등을 감안하면 피고인에게 실형을 선고하여 일정 기간 사회와 격리하고, 준법의식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수원지방법원 2023. 8. 10. 선고 2023고단136 판결)
피고인이 미혼으로 혼자 생활하고 있어 사회적 유대관계 또한 그리 견고하다고 보이지는 않는 점[서울고등법원 2019. 12. 13. 선고 2019노2171, 2019보노64(병합) 판결]
피고인은 혼자 거주하면서 가족들과도 연락하지 않는 등 사회적 유대관계가 결여된 것으로 보인다(대구지방법원 2016. 6. 29. 선고 2016노1605 판결)
피고인은 특별히 밀접한 사회적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 가족과 사회의 지지체계가 미흡한 점[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2021. 10. 7. 선고 2021고합35, 40(병합), 2021전고3(병합) 판결]
피고인의 가족들은 모두 파키스탄에 거주 중이고 국내에서는 피고인 혼자 생활하고 있어 사회적 유대관계가 견고하지 못한 점을 피고인에 대한 불리한 정상으로(대전고등법원 2024. 3. 22. 선고 2023노595 판결)
피고인은 별거 중인 노모 외에 연락이 닿을 수 있는 가족관계가 없는바, 피고인이 재범을 하지 않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사회적 유대관계가 미약한 것으로 보인다[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2023. 2. 6. 선고 2022고합98, 2022전고16(병합) 판결]
피고인이 현재까지 미혼으로 일정한 직업이나 수입이 없는 등 사회적 유대관계가 견고하지 않은 점[서울북부지방법원 2013. 12. 13. 선고 2013고합322, 2013전고27(병합) 판결]
피고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취업을 위해 노력하여 왔으나 실패하였고 건설 일용직 등 여러 일을 하여 왔으며, 피고인과 장기간 생활했던 피고인의 조모는 뇌졸중으로 요양병원에 입원 중에 있고, 부친은 피고인과 사이가 원만하지 않고 모친은 이혼 후 피고인과 연락이 두절된 상태인데, 정상적인 일상생활 유지를 지지해줄만한 견고한 사회적 유대관계가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수원지방법원 2023. 6. 16. 선고 2023고합141, 2023전고11(병합), 2023보고5(병합) 판결]
피고인이 별다른 재산, 경력 없이 건설현장에서 일용노동자로 일하고 있어 경제적 능력이 미약하고, 2명의 자녀 외에는 사회적 유대관계가 견고해 보이지 아니한 점[서울고등법원 2014. 6. 13. 선고 2014노437, 2014전노73(병합) 판결]
피고인은 10여 년간 장기간 노숙인으로 생활하여 가족적, 사회적 유대관계도 결여되어 있다[서울고등법원 2023. 1. 12. 선고 2022노2632, 2022전노115(병합) 판결]
피고인은 미혼으로서 가족들과도 별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특별한 직업이 없이 파지를 수집하여 생계를 이어가고 있으며, 일상의 대부분을 술에 취한 상태로 생활하는 등 사회적 유대관계가 결여되어 있는 점(대구지방법원 2012. 7. 19. 선고 2012고단3374 판결)
피고인이 어려서부터 또래와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어 오면서 이 사건 범행발생 이전까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을 통한 가상세계에 중점을 두고 이에 몰입했던 것으로 보여 사회적 유대관계도 미약한 것으로 보인다[인천지방법원 2017. 9. 22. 선고 2017고합261, 2017전고25(병합), 2017초기1720(병합) 판결]
판결문의 설시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같은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화목한 가정에서 가족들 사이에서 양순하게 자라와 좋은 직업을 갖고 주변에 탄원서를 써줄 지인들을 가진 사람과, 미혼에 혼자 생활하면서 가족과 교류가 적거나 직업이 불분명한 사람에 대한 처벌의 수위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언뜻 생각해보면 사회적 유대관계는 당사자의 심리적 안정이나 도덕 체계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인 한편, 반성과 개전을 유도하고 재범을 억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언제나 바람직한지, 그리고 형평에 맞는지 불쑥 의문이 듭니다.
우선 근본적으로, 사회적 유대관계가 재범의 위험성을 판단하는 데 유의미한 요소인지에 대해서부터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안정적인 환경과 사회적 유대관계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이미 범죄를 저질러서 법정에 선 피고인이(다시 말해 '초범의 위험성'이 이미 입증된 피고인이), 해당 사회적 유대관계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재범의 위험성이 적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까요?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아래와 같이 해당 문제를 지적합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범죄 양형기준에 대한 의견서" 7쪽 中
그러나 여기서 간과된 점은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한 성폭력 행위자는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점입니다. 즉, 그 사람에게는 분명한 사회적 유대관계가 있어 범죄를 저지를 시 잃는 것이 더 크다는 것이 범죄 방지에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는 것이 이미 증명된 것입니다.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한 상태에서 어려운 첫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범죄를 저지른 후에야 사회적 유대관계를 잃을 것이 두려워 두 번째 범죄는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은 모순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한편, 사회적 유대관계는 작출 가능한 판단 요소이기도 합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N번방 사건)의 재판에서 한 피고인의 아버지는 공무원 신분을 이용해 동료 공무원들의 공무원증을 수십장 제출하여 사회적 유대관계를 입증하고자 했고(한겨레신문, “아버지 공무원증 내고 감경 호소”…n번방 법정서 본 ‘양형 부당’ 사례),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사건에서 수사, 재판 진행 중 약혼과 혼인을 하여 이를 감형자료로 제출하였다고 합니다(한겨레21, 성범죄가 결혼하면 형량 깎아준다고?). 김보화 박사님은 특히 성범죄 전담법인들이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하다는 판단을 이끌어내기 위해 개입하는 점을 (법시장화의 관점에서) 지적합니다(김보화, 성폭력 사건 해결의 '법시장화' 비판과 '성폭력 정치'의 재구성에 관한 연구, 80쪽). 공판검사가 마약사범이 챗GPT를 통해 작성한 허위 탄원서 조작을 발견해낸 사례(정기훈 검사)가 있지만 이는 해당 검사의 재능과 열정에 기댄 매우 드문 사례이고, 탄원서나 반성문의 진정성은커녕 진위를 분별할 기회조차 갖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나아가 사회적 유대관계는 사회적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위에서 본 서울고등법원 2019. 12. 13. 선고 2019노2171, 2019보노64(병합) 판결은 "피고인이 미혼으로 혼자 생활하고 있어 사회적 유대관계 또한 그리 견고하다고 보이지는 않는다"고 보았고, 대전고등법원 2024. 3. 22. 선고 2023노595 판결은 "피고인의 가족들은 모두 파키스탄에 거주 중이고 국내에서는 피고인 혼자 생활하고 있어 사회적 유대관계가 견고하지 못하다"고 보았습니다. 전통적 가족의 해체가 이뤄지고 결혼, 출산에 관한 인식이 예전과 달라지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정상가족'의 개념을 전제로 하는 사회적 유대관계의 판단은 비판의 소지가 있습니다.
덧붙여 사회적 유대관계라는 지표가 경제력을 포함한 계급과 상관관계가 있는 요소라는 점이 못내 마음에 걸립니다. 신자유주의와 형벌의 불편한 관계에 대해서는 따로 다룰 기회가 있길 바랍니다.
위 판결문들의 설시가 사회적 유대관계의 유무를 기준으로 획일적으로 형의 가중, 감경을 판단하는 취지가 아니라는 점은 넉넉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유대관계의 존부가 유일한 판단요소가 아님은 물론이고, 판단의 순서상 행위자적 요소와 행위적 요소를 두루 종합하여 판단할 때 적정한 형량을 산출하고 이를 설명하기 위한 요소로 활용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위 판결들 중 사회적 유대관계를 인정하지 않은 판결 중 상당수는 그 사실관계를 살펴보면 매우 수위높은 강력범죄였습니다. 대체로는, 개별 재판부가 사회적 유대관계의 판단에만 얽매이는 대신 여러가지 요소들을 고려하여 적정한 양형을 산출하고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다만, 판결의 기능은 해당 판결의 결론과 그 이유를 설명하는 데 국한되지 않습니다. 판결문의 설시는 해당 피고인으로 하여금 추후 자신의 행동양식을 결정하게 할 뿐만 아니라, 피고인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응의 행위규범 판단기준을 제공하고, 변호사들이 변론에 사용할 재료들을 발견할 보고가 됩니다. 사회적 유대관계에 관한 판결 설시의 누적은 그 나름대로 일정한 기준을 형성하게 됩니다. 같은 맥락에서 김보화 박사님은 위 논문에서 "이처럼 성범죄 전담법인들은 무죄주장이 어렵다고 판단될 때에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진지한 반성이나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하여 증명의 내용들을 조작하고 있고 이에 대한 재판부의 승인은 성범죄 전담법인들의 개입 여지를 확장시키고 있다"면서 '재판부의 승인'을 문제의 하나로 지적했고, 위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양형기준에서 '사회적 유대관계'를 배제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형사재판에서의 "사회적 유대관계'라는 양형요소에 관한 논의가 조금은 필요해보입니다.
그런 고민을 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