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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해용 Sep 05. 2023

내 이부자리를 정리하면 느끼게 되는 것들

때로 지금 하는 일이 무료하거나 동기부여가 잘되지 않을 때면 美 해군 대장 윌리엄 맥레이븐의 텍사스 대학 졸업식 연설을 한번 들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으면침대 정돈부터 먼저 하라(Start off by making your bed)”고 강조했다. “매일 아침 침대 정돈을 한다면여러분은 그날의 첫 번째 과업을 완수하게 되는 것이고그것은 여러분에게 작은 뿌듯함을 줄 것이며다음 과업을 수행할 용기를 줄 것이다”라 덧붙인다.     


가끔 지금의 내 행동을 돌아보면어릴 때 습관이 여전히 몸에 배어 있는 때가 있다.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라는 속담이 맞긴 한 것 같다습관이 그만큼 중요하고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나는 어릴 적에 산속 깊은 탄광촌 관사에서 한때 살았었다가끔 신작로를 지나는 대형 덤프트럭이나 몇 시간에 한 번씩 다니는 버스를 탈 때도 있지만학교까지 10리를 주로 친구들과 노닥거리며 걸어 다녔다가끔 지나가는 차량이 뿜어대는 뽀얀 먼지 덮어쓰기는 당연히 감내해야 했다수업이 끝나고 산속의 집에 돌아와도 특별히 재미있는 일이 없기에 학교에서 놀다가 늦게 가거나 주로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셜록 홈즈와 루팡 등 탐정소설에 흠뻑 빠져든 적도 있었다무척 재미나던 김내성 작가의 탐정 추리 소설을 아직 기억한다훗날 탐정이나 될까 생각할 정도였다너무 재미있어서 가끔 늦게 집으로 가다가 어두워지면 반딧불을 잡아 유리 반찬통에 넣어서 그 빛으로 책을 읽으며 걸은 기억도 있다반딧불과 눈빛으로 호롱불 대신 공부했다는 전설의 형설지공(螢雪之功)을 이미 그때 경험한 셈이다어린 시절 몸에 밴 걷는 것과 독서는 습관으로 이어졌다지금도 산책을 좋아하고 한 달에 몇 권 정도 책 읽기를 즐긴다.     


타인의 습관 때문에 잘 된 사례도 있다흡연이 그러하다흡연이 주는 장단점이 있겠지만담뱃대에 궐연초를 계속 구겨 넣어 손톱마저 노랗게 변한 나의 할아버지, 흡연 애호가이신 부모님에게서 늘 풍기던 찌든 담배 냄새는 지금도 가끔 당시 추억과 함께 바로 옆에서 나는 듯하다그 냄새에 질려서인지 난 여태껏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나도 바로 내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습관이 되었다. 오랜 군대 생활이 몸에 배어서인지. 어릴 적에는 부모님의 이부자리도 어린 자식들이 대부분 정리했다. 그것이 부모 공양인 줄 아는 시대가 있었다. 아쉽게도 지금은 그럴 수도 없다. 대부분 침대 생활을 하게 되면서 굳이 이부자리를 정리할 필요도 없다. 그냥 일어나서 침대 이불을 대충 정리하면 된다. 나처럼 침대가 불편해서 굳이 바닥에 자는 사람도 있다. 후다닥 이부자리를 툴툴 정리하는데 10초도 채 걸리지 않는다침구 정돈 같은 사소한 일도 매우 중요하며, 그 작은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면 큰일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윌리엄 맥레이븐 제독의 말에 일찌감치 공감했다나의 하루도 이처럼 이부자리를 정리하면서부터 시작되고 이부자리를 깔면서 끝난다     


스티븐 스콧의 『게으름이 습관이 되기 전에』 책에서 일을 미루는 이유로 ‘완벽주의자라서,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귀찮아서, 나중에 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주의를 빼앗는 것들이 많아서, 시간이 늘 부족해서, 진실과 마주하는 게 두려워서, 즉각적인 보상을 얻으려고 해서, 일이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등 8가지를 든다.     


때로는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이 편할 때가 많다. ‘아이젠하워의 매트릭스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당장 시급하거나 중요한’ 것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한번 보자고 한 약속은 1년 안에 이루어지면 다행이고내가 관심이 있어도 상대가 불편해하는 기색이라도 보일 지면 그냥 내 뜻을 접어버리면 된다자연히 게으름이 습관처럼 찾아온다.         


아마추어 골퍼들이 가끔 라운드를 나가보면서 늘 후회하며 하는 말은 연습해야겠다이다골프도 이왕이면 잘하면서 즐기면 더 좋다잘하고 싶다면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한다방법이 없다아무리 시간이 부족하고 나중에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어도 골프를 더 즐기려면 게으름이 누적되기 전에 연습장으로 달려가야 한다연습이 몸에 배지 않으면 품격 있는 골프가 주는 멋진 싱글의 맛을 느낄 수가 없다.     


내가 해야 하거나, 할 수 있는 일은 바로바로 직접 하려고 한다아직도 배울 것이 많다요리수영골프외국어 등등언제든지 언젠가 배우고 싶고배우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유익한 습관은 계속 살리고 무익하거나 좋지 않은 습관은 폐기처분 하려 한다     


먼 훗날 정신줄을 놓거나 이부자리를 정돈할 힘조차 없어지기 전까지는 내 이부자리는 직접 정돈하려고 한다굳이 큰일이나 다음 과업을 수용할 용기까지 필요 없더라도, 아침마다 느끼는 작은 성취감을 통해 자신감과 긍정적인 마인드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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