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재산이 많다는 어떤 부자 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우연히 친구와 식사 자리에 합석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는 세상의 가치를 돈으로 판단하고, 돈의 힘을 빌려 이런저런 이쁜 여자와 사귀는 재미로 산다고 했다.
그는 60대 중반의 유부남이었다. 지금은 특별한 직업이 없지만, 그동안 벌 만큼 벌었고(주로 부동산으로.), 현재 강남에서 살면서 자칭 타칭 우리나라 1% 상위권에 드는 부자라고 한다. 이날도 그의 곁에는 곱상하고 예쁘게 생긴 이지적인 여인과 함께였다. 그는 행복하다고 했다. 피부도 곱고 나이에 비해 젊고 건강하게 보였다. 그야말로 소위 한량이었다. 이전에도 비슷한 유형의 사람을 더러 만나보았지만, 이처럼 노인층도 아니면서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돈 걱정 없는 하루하루를 단순히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었다.
다들 그에게 “회장님. 회장님”이라며 머리를 조아렸다.
내 주변에는 통상 직업군인, 직장인, 공무원 등 가진 돈은 별로 없어도 나름 가치관이 분명하고 목표지향적인 월급쟁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부자도 분명히 목표지향적이긴 하다.
돈으로 이쁜 여자를 자빠뜨리려는. (이 대목에서는 최근 뉴스에도 나왔지만, 성관계하려 돈 번다던 재산이 140억 인 日本의 70대 사업가가 결국 사망하고 55세 연하 부인이 살인 혐의로 체포된 사건이 생각난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겹쳤다.
정말 돈이 모든 걸 해결해 주는 걸까.
부자들은 모두 행복한 걸까. 행복의 기준은 무엇일까.
지금도 항상 부족한 월급으로 한 달 한 달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진정한 행복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걸까.
돈이 충족하면 다음 단계는 어떤 목표로 살아갈까.
이런 사람을 정말 부러워해야 하는가.
삶의 궁극적 목표는 돈을 끝없이 벌어서 안락한 생활을 즐기는 데만 있는 것인가.
한때 중국에서 역사상 가장 많은 뇌물을 받은 혐의로 중국 최대 자산관리회사 회장을 중국 당국이 사형을 집행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뇌물 3,000억 원과 100채의 주택과 100여 명의 첩을 두었다고 했다. 역대급이다. 이런 사람에게 뇌물을 바친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 불량한 이득을 취했을 것이며, 이런 사람의 첩이 된 자는 무엇인가 상당한 보상을 누렸을 것이다.
실상 지금도 뉴스를 보면 돈으로 원하는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돈으로 할 수 없는 것이 있을까. 자본을 중시하고 자본을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계에서는 물론 능력껏 열심히 노력해서 쌓아 올린 부의 가치는 인정해야 하며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한탕주의와 기회주의에 편승해서 너무나 쉽게 돈을 벌고, 그들끼리 각종 이권과 정보로 형성된 어둠의 카르텔을 이용해서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비웃으며 벌어들이는 돈의 가치에서도 행복은 존재하는 것인가.
나는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부자들을 함부로 폄훼하고 재단할 능력도 권리도 없는 소심한 서민에 불과해서, 재물과 행복에 대해 단순히 평가해 볼 뿐이다.
장자의 천지편(天地篇)에, 중국의 요임금이 화주에 방문했을 때 그를 맞이한 관원이 요임금에게 장수와 부자, 그리고 자식의 풍요를 축복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나, 요임금은 오래 살면 욕된 일이 많고 (수즉다욕, 壽則多辱), 부자가 되면 쓸데없는 일이 많아져 번거롭고 (부즉다사, 富則多事), 자식이 많으면 걱정이 많다 (다남자즉다구, 多男子則多懼)고 자신은 원치 않는다 한다.
오래 사는 것과 돈 그리고 자식이 행복의 기본 요소가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다. 돈은 분명히 삶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고, 안정감을 주며, 불안을 줄이는 데는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무릇 돈이 너무 많아도 관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진짜 부자는 절대로 부자 행세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좋으니 관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자가 되어봤으면 좋겠다는 게 우리 일반인의 마음일 것이다.
『100세를 살아보니』의 저자 김형석 교수 인터뷰 내용 중에, 행복해지기 힘든 2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다. 성실, 진실, 언행일치 등의 정신적인 가치보다는 돈과 권력, 개인의 명예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이다. 돈과 권력, 명예는 기본적으로 소유욕인데, 가지면 가질수록 더 목마르다고 한다. 더 배가 고프니 항상 허기진 채로 살아가야 하는 반면, 정신적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은 자기만족을 알기에 행복한 삶을 살더란 이야기다. 물론 드물긴 해도, 정신적 가치를 충분히 잘 알면서 돈과 권력, 명예를 가진 이라면 더 훌륭한 삶을 사는 거다.
둘째는 이기주의자들이라고 했다. 이기주의자는 자기밖에 모르는 이들이다. 이들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선한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격의 그릇이 작을 수밖에 없다. 행복의 크기도 작다는 말이다.
이제, 퇴직하고 두 번째 세 번째 직장생활을 전전하며 아직도 월급쟁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는 어떤가.
큰돈을 벌기가 쉽지 않은 현실에 만족하고 물질보다 정신적 가치를 더 소중히 여기면서 애써 돈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면서 살아가야만 하나.
네 명의 자녀를 키워오면서 아직 집 한 채 제대로 장만하지 못했지만, 나는 오늘도 꿈을 먹고 살아가려고 한다. 아들딸들은 각자 자기의 목표를 향해 매진하고, 우리 부부는 나름 건강하고 소박하게 하루하루를 잘 보내려 한다.
매번 느끼는 경제적 아쉬움은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정신적 만족으로 승화시켜 나가고, 매번 찾아오는 부족함은 욕심을 줄여나가면서 균형을 맞추려 한다.
물론, 당장은 아쉽겠지.
돈이 전부라는 세상과 마주하면서 돈과 다툴 마음은 조금도 없지만, 돈이 크게 없어도 얼마든지 행복하고 멋진 인생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것쯤은 이제 조금씩 알아가는 나이에 접어들었다.
삶에서 분명 돈이 매우 중요하고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것이 아직 너무나 많다는 것을 살아오면서 터득했기 때문이다.
행복은 종종 단순한 데서 발견된다.
테니스, 헬스, 등산 등 땀 흘러 쌓아 만드는 건강한 육체, 정다운 이들과 나누는 즐거운 사랑과 우정의 시간, 독서로 알게 되는 삶의 깊이와 확장성, 4명이나 되는 자식 부자인 우리 가족과 함께하는 귀중한 순간들, 꿈꾸던 자기 계발의 시간 등등.
태어날 때 가난한 것은 내 탓이 아니지만 죽을 때 가난한 것은 내 탓이다. 특히 죽음을 앞두고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재산을 전혀 쌓지 못한 것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저자 마이클 샌델도 거래 만능 시대에서 빈부 격차는 가난한 사람이 더욱 가혹한 삶을 살게 만들고, 좋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사고파는 세상에서는 돈이 모든 차별의 근원이 되어 결국 불평등과 부패, 퇴색하는 시민정신을 이끌게 될 것을 우려했다.
두 가지 사례 모두, 죽을 각오로 단단히 노력해서 꼭 부자가 되라는 말이다.
그래! 크게 부유하지는 않아도 결단코 가난을 물러줄 수는 없다.
돈은 벌 수 있을 때까지는 벌어야겠다. 당연히 건전하고 건강한 방법으로.
아직 늦지 않았다!
나중에 손자 손녀에게는 용돈이라도 좀 넉넉하게 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