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아침 햇살이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잎 위에서 반짝입니다. 노란 은행 잎의 부드러운 흔들림은 신선한 아침 바람을 느끼게 해 줍니다. 가을은 어느덧 이렇게 화사한 차림으로 깊어갑니다.
즐겁게 콧노래를 부르며 울긋불긋한 가을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갑니다. 떨어지는 낙엽이 만들어내는 춤사위 같은 율동은 발걸음마저 가볍게 만들어줍니다.
아직 청춘을 간직하고 있는 초록 잎 사이에서 열매가 빨갛게 익었습니다. 낙상홍 열매는 스스로 보석이 되는가 봅니다.
길게 늘어진 가지에는 붉은 결실이 알알이 영글어 가네요. 가을을 맞는 마음은 이렇게 붉어지는 것일까요?
빨갛게 익어가는 열매들을 보니 가을의 미소를 보는 듯합니다. 잎은 노랗게 변하고 군데군데 갈색의 반점이 생기지만 열매만은 더욱 진하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작은 수풀에는 분홍색 꽃들이 깨알같이 피어납니다. 깊어가는 가을에도 꽃은 피는군요. 가까이 들여다보니 개여뀌 꽃이 아름답네요. 자세히 보면 어느 꽃이나 모두 아름다운 것이겠지요. 생명의 신비를 담고 있으니까요.
낮은 언덕 아래의 작은 숲 속으로 들어가니 마른 낙엽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냅니다. 매자나무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는 이곳은 고즈넉한 풍경입니다. 초록 잎과 빨간 열매에서는 아름다움과 함께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마치 비밀의 화원에서 조용히 간직했던 신비한 미소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노랗게 물들어가는 잎과 빨갛게 익어가는 열매의 아름다움을 조용히 들여다봅니다.
밝은 햇살을 받으며 붉게 빛나는 것은 야광나무 열매가 아니라 깊어가는 가을 같습니다. 가을은 이렇게 익어가며 아름답게 반짝입니다.
지난봄에 하얗게 피어나던 아그배나무의 꽃도 이제 붉은 열매로 익어갑니다. 그 안에 꽃의 향기와 초록 열매의 풋풋함 그리고 시간을 간직하면서요.
낙엽이 가득 쌓인 정원에서는 맥문동 열매가 흑진주처럼 반짝입니다. 마른 낙엽 사이에는 이곳저곳에 떨어져 있는 붉은 아그배나무 열매가 보입니다. 하얗게 피어있던 나무수국의 꽃은 갈색으로 말라 있고요. 비록 향기는 사라지고 색깔은 변했어도 그 모습은 그대로 남아있는 것도 있는 것이군요.
낙엽이 떨어지는 그늘의 벤치에 앉아있으니 마치 가을의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는 듯합니다. 한 올 한 올 떨어지는 나뭇잎은 쌓여가고, 열매들은 익어가고, 커피 향은 진합니다. 춤을 추며 날아오던 갈색 잎이 살포시 곁에 앉으며 인사를 합니다.
길모퉁이 카페에서 테이크 아웃해 온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문득 듣고 싶어지는 '고엽(Autumn Leaves)'을 들어봅니다. 동네의 작은 공원에서 듣는 레이어스 클래식의 연주가 멋지네요. 편안하고도 달콤한 아침입니다.
다시 천천히 걷는데 커다란 나무에서 마른 잎들이 마치 눈처럼 떨어집니다. 땅 위의 낙엽은 흩어지며 쌓여 가고요. 바람이 계속 불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길가에는 빨간 낙상홍 열매가 초록 잎 위에서 아직 잠들어 있는 듯합니다. 마치 자장가 같은 산들바람을 맞으며 달콤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요?
어느 가지 끝에는 노랗게 물든 마지막 잎새가 남아있고, 붉은 보석 같은 열매에서는 뜨거운 미소가 느껴집니다. 낮은 바람의 리듬에 따라 흔들리는 부드러운 율동도 느껴지고요.
따스한 가을 햇살은 보라색 열매를 더욱 빛나게 합니다. 눈이 부시 지도 않는지 보라색 눈망울은 더욱 반짝입니다.
밝은 햇빛에 반짝이며 산들바람에 가볍게 춤을 추며 좀작살나무 열매는 익어갑니다. 아니 가을이 익어갑니다.
가을 햇살을 받으며 작은 꽃들이 헤살 거립니다. 하얀 미소에는 어떤 기쁨과 즐거움이 묻어나는 듯하고요. 그런데 이 미국 쑥부쟁이는 먼 길을 떠나와 이곳에 안주를 했군요. 조상으로 계속된 그녀들의 멀고도 먼 여행길을 떠올려 봅니다.
햇살은 빨간 열매에 스며드는데 어느 열매는 갈색 혹은 검은색으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부지런한 산수유는 이 가을에 벌써 내년 봄을 준비하고 있나 봅니다. 벌레 먹은 잎새 사이에는 작은 꽃봉오리가 보이는군요. 단단한 껍질로 겨울의 추위를 이기며 또 다른 계절을 준비하려는 것이겠지요.
다시 그늘로 들어서니 선선한 느낌이 드는데 낮게 불어오는 바람이 기분 좋게 얼굴을 스쳐갑니다. 회양목은 여전히 청춘인 듯하고 하얀 막에 감싸인 열매들은 꽃 같습니다.
바위틈에서 살아가는 강아지풀도 가을을 느끼고 있습니다. 작은 씨앗들은 어디론가 날아가고 마른 흔적만이 갈색의 수염처럼 바람에 흔들립니다.
뾰족한 잎들이 늘 푸른 주목나무는 언제나 청춘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열매는 어느덧 이렇게 빨갛게 익었네요.
봄이 어린이고 여름이 청년이라면 가을은 중후한 느낌이 드는 중년 같습니다. 문득 어느 시구가 아스라이 떠오릅니다. 찾아보니 영원한 청춘으로 남아있는 윤동주의 시구절이 맞네요.
가슴속에 하나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그가 세는 별은 그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 그리고 동경과 같은 것들이었겠지요. 그리고 시간은 빨리 흐르지만 아직 청춘이 남아있기에 또다시 헤아릴 별들을 남겨두었을 듯합니다.
아름다운 시구를 읊조리며 이 아름다운 가을날의 아침을 느껴봅니다. 알록달록 물들어가는 나무 위에서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커피는 아직 따뜻하고요. 캣 스티븐스의 'Morning has broken'이 듣고 싶어 집니다.
따스한 가을 햇빛을 받고 있는 배롱나무의 잎사귀는 마치 세잔의 팔레트 같습니다. 자연의 색깔이 그림보다 더 아름답지만요.
지난여름부터 피고 지는 하얀 꽃은 오랫동안 은은한 향기를 날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을이 되니 꽃댕강나무의 하얀 꽃봉오리가 불그스름해집니다. 꽃도 익어가는 것일까요?
초록의 측백나무 사이로 길게 뻗어 나온 매자나무 가지가 손을 흔들어옵니다. 빨간 열매는 아름다운 미소로 다가오고요. 인사도 잊은 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마음이 점점 뜨거워집니다.
잎은 벌써 많이 떨어지고 마른 듯한 가지에는 붉은 열매가 걸려있습니다. 왠지 그윽한 가을의 멜로디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잘 익은 모습과 붉은 색감은 탐스럽고 반짝이는 미소는 아름답습니다. 언젠가는 땅으로 돌아가야 하겠지만, 부디 오래 남아주었으면 하는 욕심이 생깁니다.
살짝 입을 벌리는 열매가 유혹적입니다. 누구의 입맞춤을 기다리는 것일까요? 그런데 사철나무도 사철 푸른 것은 아니네요. 노랗게 물들어가는 잎새 사이에서도 열매가 붉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화살나무의 물들어가는 잎과 잘 익은 열매가 그림 같습니다. 제목을 달아보라고 한다면 '조용한 휴식 또는 기다림'이라고 하고 싶군요.
작은 숲 속에는 나뭇잎 사이로 내려오는 가을 햇살과 물들어가는 잎을 흔드는 낮은 바람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노란 잎새 아래에는 박태기나무의 열매가 줄을 지어 달려있습니다. 이제는 검게 익은 열매 안에는 잘 여문 씨앗이 가득하겠지요.
주렁주렁 달린 남천 열매들이 풍요로운 느낌입니다. 조용히 다가가 속삭여봅니다. 곱게 익어주어 고맙다고요.
이제 나뭇잎들은 점점 더 물들어가고 가을은 깊어지겠지요. 아마 시간도 조금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질 듯합니다. 하지만 산책자의 발걸음은 언제나 안단테이고 싶습니다.
나무 담장 위에는 노랗게 물든 가을이 가득한데 칸나의 불꽃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습니다. 가을은 꽃도 잎도 불타는 계절인가 봅니다.
울긋불긋한 나뭇잎 사이마다 색색으로 익어가는 열매들이 가득한 가을입니다. 느린 발걸음에서 만나는 각각의 모습은 아름답기만 합니다. 지난 시간 동안 꽃들이 아름답게 피고 또 초록의 열매들은 비와 바람을 잘 견디어냈기 때문이겠지요.
꽃이 모두 열매가 되는 것은 아니고 열매도 모두 다 잘 익어가는 것은 아니더군요. 새삼 아름다움의 이면에 담긴 인내를 느껴봅니다. 아마도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밝은 햇살을 받으며 걸어도 좋고 그늘에서 선선한 바람을 느껴도 좋네요. 하늘은 푸르고 흰 구름은 조용히 흘러갑니다. 커피는 맛있고 듣고 싶은 노래는 계속해서 생각납니다. 낙엽이 떨어지는 벤치에 앉아 밥 딜런의 'One more cup of coffee'를 듣습니다. 왠지 진한 향기가 담겨있는 뜨거운 커피를 한잔 더 마시고 싶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