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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Dec 17. 2023

위탁기관의 상담사들

고용노동부에는 많은 민간 위탁기관 사업장들이 있다. 우리부의 중책 사업들을 위탁받아 사업을 대리 운영하는 것이다. 수년간의 취업성공패키지 사업이 그러했고, 2021년부터는 국민취업지원제도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그곳에는 무수히 많은 직업상담사들이 장소를 달리 할 뿐 나와 똑같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똑같은 업무를 수행하지만 고용센터에 소속된 직업상담사들에 비해 그들이 업무를 신속히 처리하는 데는 여러가지 제약이 있다. 수당 하나를 지급하려면 수당을 지급하기 직전에 구직자가 현재 취업을 한 것은 아닌지, 사업자등록을 낸 것은 없는지, 일용근로를 한 것은 없는지, 복지 수혜를 추가로 받은 것은 없는 지 등등 여러 가지 개인정보들을 조회해야 한다. 그런데 위탁기관의 상담사들에게는 고용센터의 상담사들처럼 개인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 권한이 대단히 한정되어 있다. 개인정보는 말그대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위탁기관의 상담사들이 관리하는 구직자들의 수당을 지급하고 내일배움카드를 발급하는 업무는 고용센터 내의 지정된 담당자들-주로 공무원들-이 대신 수행한다. 나는 이 과정에서 위탁기관 관리를 전담했던 동료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업무 매뉴얼을 제대로 숙지하여 주도적으로 업무처리를 할 생각은 않하고 똑같은 질문을 반복적으로 물으며  의존적인 상담사들도 있고, 1차 검토 단계에서 첨부되어야 하는 서류들을 걸핏하면 빼먹는 상담사들도 있었다. 문제는 그런 상담사들의 경우 '개선'이 잘 안된다는 점이다. 이런 모습들을 지켜 보면서 나는 위탁기관의 상담사들에게 약간의 편견을 갖게 되었다. 업무 역량의 편차가 매우 심하거나, 아니면 업무역량이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이라고 그들을 한꺼번에 폄훼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런 내가 잘못된 일반화의 오류를 깨뜨리게 된 계기는, 2016년 10월 컨퍼런스에 참석한 바로 그 날이었다. 본부에서는 해마다 전국 고용센터와 위탁기관의 직업상담사들을 대상으로 상담 우수사례를 공모하고 성대한 수상식을 개최한다. 나는 그해에 처음 참가했던 대규모 컨퍼런스의 역동적인 풍경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수상자를 포함해 전국에서 초대장을 들고 모여든 상담사들의 상기된 얼굴과 행사장을 꽉채운 압도적인 에너지는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후끈후끈하다.


수상식이 끝나고 수상자들이 연단에 올라 각자의 사례를 발표할 때, 그때 나는 처음으로 전국 위탁기관의 열정적인 직업상담사들을 대면했다. 그들이 구직자들을 대하는 진정성 뿐만 아니라 한 명의 구직자를 취업시키기 위한 열정적인 고군분투기에 나는 저절로 겸허해 졌다. 그들의 역량을 의심하고 오해했던 순간들이 한없이 부끄러워 지면서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업무역량이 낮은 상담사는 고용센터 내에도 널려 있는데 말이다. 


두번째의 감동은 2022년도 상담 우수사례집을 읽었을 때였다. 대상을 수상한 인천의 위탁기관 유선미 팀장님의 글은 내가 상담사로서 내적 성장을 했던 올해에 쐐기를 박았다. 그녀의 글은 이미 도입부에서 나를 각성시켰다.


그녀는 초보 상담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태의 내담자를 팀장이라는 이유로 떠안게 된다. 그녀 역시도 코뿔소 처럼 씩씩거리며 험악한 말투의 청년을 대면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청년이 상담예약시간 10분 전에 도착하여 팀장님에게 허리숙여 공손히 인사를 하더란다. 나는 그 순간 보여준 유선미 팀장님의 태도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10분이나 일찍 오고, 인사도 공손히 했어, 장점이 2개나 있으니 저거면 됐다!"


나는 그녀의 이러한 긍정성이 경이로웠다. 대체 어떤 내공이면 누구나 피하고 싶은 사람에게서 이렇게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을까.  대체 얼마나 따뜻하면 한 사람의 인간을 이렇게 온전히 품어 안을 수 있을까.

내가 유선미 팀장님의 글에서 받은 감동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그 감동에는 뭔가 깊은 깨달음 같은 것, 통찰 같은 것이 동반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23일 목요일, 서울 중구 웨스턴 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는 2023년 국민취업지원제도 우수사례 컨퍼런스가 개최되었다. 나는 2016년에 이어 7년만에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컨퍼런스는 한정된 인원이 초대 되기 때문에 매년 가고 싶다고 갈 수도 없는데 올해에는 운이 좋았다. 그리고 거기서 2022년 대상에 이어 올해에도 장려상을 수상한 유선미 팀장님을 만났다!  참석자 명단에서 그녀의 이름을 보자 마자, 나는 꼭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 조용히 테이블로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고 감사함을 전했다. 그녀의 글이 내게 준 울림에 대해서, 당신의 글이 누군가에게 이렇게 깊은 영향력을 준 것에 대해서 그녀가 꼭 알기를 바랬다. 올해의 나는 악성 구직자들을 좀더 포용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왜냐하면 그녀가 내게 준 교훈처럼 '장점'을 보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컨퍼런스가 끝나고 행사장을 빠져 나올 무렵, 나는 입구에서 올해 대상을 수상한 강릉의 위탁기관 팀장님을 지나치게 되었다.  "팀장님, 축하드립니다!"  그녀는 생면부지의 내가 건네는 인사에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고용노동부에는 이렇게 멋지고, 열정적이고, 유능하고, 헌신적인 위탁기관의 직업상담사들이 있다. 그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고용센터의 상담사들 보다 열악한 근무환경에 놓여 있다. 훨씬 더 실적의 압박을 받고, 훨씬 더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그들의 업무는 상담실 안과 필드를 오가며 다이나믹하게 이루어진다.

때때로 나는 내 자리에서 고정된 업무만 하면 되는 고용센터의 상담사라는 것에 얼마나 안도를 했던가. 

하지만 이제  9년차의 나는 당신들의 열정에 때때로 열등감을 느낀다고 말하고 싶다. 이것은 아주 퓨어한 진심이다.    -2023년 12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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