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원재 Jul 21. 2018

#8 인도 푸쉬카르

151231 인도 푸쉬카르







1. 손에 꽃이 하나 쥐어진다. 그는 호숫가로 안내한다. 푸쉬카르에 처음 도착한 여행자를 위한 환대라고 생각했다. 신발을 가지런히 벗고 종교인을 따라 호숫가 한 편에 자리를 잡는다. 이마에 빨간 점을 찍고 기도문을 외우는 종교인의 모습은 꽤나 성스럽게 보인다. 바로 여기서, 적절한 순간에 끝 맞추어 인사를 건넸더라면 좋았건만, 예상대로 나는 듣지 말아야 할 단어를 듣고 말았다. 도네이트. 종교의식을 빙자한 사기수법이라는 거다. 그 순간만큼은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속이려 했다는 사기라며 화를 내고 신발까지 챙겨 도망친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불운이 묻겠다는 괜한 마음에 액땜이라는 명분으로 몇 푼 쥐어줄 법도 하겠다만, 그럼에도 도망친 건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무신론이 작용했을 지도 모른다. 며칠 뒤 이마에 빨간 점을 찍고 다니는 몇 서양인 여행자들을 본 적이 있지만 그들 역시 표정이 좋지 않아보였다.





 -





 2. 아침은 언제나 티베탄 음식점에서 먹었다. 인도음식에 비해 향신료가 덜한데다 인도음식에는 없는 국물요리까지 가미한 티베트 요리는 지난 밤 비워진 속을 달래기 충분했다. 그중에서 뗌뚝은 한국의 수제비나, 감자옹심이 같은 음식이었다. 음식점에 모인 여행자들은 뗌뚝으로 아침을 맞으며 점심 때 갈 식당을 고민했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다보면 금세 점심이 되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몇 시 몇 분 무슨 식당. 연락처도 주고받지 않은 여행자들을 꽤나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모이게 한 건 순전히 음식 때문이었다. 계란조차 팔지 않는 채식주의자들의 도시인 이곳이 맛집의 도시라는 거다. 정말이지 6일 동안 머물면서 고기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티베트 음식과 인도 음식, 이스라엘 음식이나 햄버거, 주스 맛집들이 줄을 잇는데 아직까지도 찾지 못한 맛집이 또 줄을 이을 거다. 이렇도록 먹을 복이 넘쳐 사랑스러운 도시를 어떠한 명분으로 등질 수 있었겠는가.





 -





 3. 내가 머물던 125루피짜리 숙소에는 양변기가 없었다. 그렇다보니 무릎이 안 좋아 쭈그려 앉지 못하는 나에겐 매일 아침마다,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선 커다란 모험을 하나 거쳐야 한다는 거다. 주로 숙소 밖에서 썼던 화장실들을 되짚어 보곤 했는데 마침 어제 저녁에 갔던 식당이 머릿속에 떠올라 한 번 가보기로 했다. 과연 문은 열려있을지. 열려있다. 화장실도 다행히 열려있었다. 혹시나 싶어서 핸드폰을 켜보니 일전에 연결한 인터넷이 그대로 남아 새로운 소식들이 하나 둘씩 뜨기 시작했다. 양변기에다 인터넷까지 될 줄이야. 한국이라면 별 것도 아닌 일상이 인도에서는 더한 행복으로 다가온다. 마치 어제는 없었던 일인 것처럼. 





 -





 4. 히말라야 이후로 다시는 오를 거라 생각하지 않은 산을 다시 오르게 되었다. 돌산 위에 지어진 사원이 중점이라기보다는, 올라가는 길이나 사원에서 보던 풍경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산 밑으로 보이는 사막, 그리고 푸쉬카르. 작은 호수를 둘러싼 작은 마을에 이렇도록 오랜 시간을 머물렀나 싶다가도 기대를 이미 뛰어넘은 음식들과 마음을 녹이던 일상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3시까지 보기로 했는데, 어디 갔다 이제 왔어?”
 “3시까지 오라고 했던 거 기억 안나?”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만난 첫 번째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였다.

 “이건 어디서 샀대? 인도 느낌난다.”

 서귀포에서 5천원 주고 산 냉장고 바지를 두고 하는 이야기 같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누구냐고 되묻자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선재’가 아니냐며 되묻는다. 알고 보니 그는 교회에서 단체로 여행 온 청소년들을 이끄는 인솔자였다. 그렇다보니 나 역시도 일행으로 생각한 거였다. 스물을 갓 넘긴 애가 혼자 여행할 거라 생각할 리가. 그 뒤엔 나와 같은 또래의, 어디 서울에서나 볼 법한 화장술로 무장한 이들이 대거 서있었다. 여행자가 아닌 단순한 관광객. 교회에서 온 거면 선교활동이나 하러 왔을 테지. 단도직입적으로 나의 인상을 투영하겠다. 그들에게 인도는 ‘남는 여행’ 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 의지로 왔다기보다는, 억지로 온 느낌이 더 강했다. 그러므로 내가 보는 인도와 그들이 보는 인도는 확연히 다를 테다. 단순한 짜증과, 더러움과, 뭇 인도인의 치근덕거림에 환멸만 남을 것이다. 눈대중으로 슥 훑다 끝나버릴 그들의 여행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





 5. 전형적인 보수적 인간상. 티베탄 식당에서 만난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데리고’ 온 그를 보고 느낀 인상이다. 직업이나 이름, 결혼 여부를 서슴없이 묻거나 하는 막가파식 화법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갑의 위치에 많이 있었던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인도의 물가나 돈 몇 푼이 얼마나 하찮게 여겨질지. 음식을 여러 개 시켜놓곤 별로다 싶으면 몇 개 버린다는 마인드에 경악하곤 했었는데, 나 같은 가난한 여행자에겐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초등학생 아들을 지나치게 통지하는 모습 또한 그리 좋은 인상으로 다가오진 않았었는데, 무엇을 하려해도 안 된다는 말을 먼저 들었을 테니 아이가 기가 죽어 땅만 보고 있는 눈빛이 내 앞에 선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아닌데.

 생각의 차이라고 치자. 하지만 불편함을 떨쳐낼 수 없는, 그런 만남이었다.





 -





 * 책 <현실주의적 여행> 의 속편 <인도주의적 인도> 의 한 파트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160124 인도 고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