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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재 Sep 03. 2019

<스물셋의 인도> #3

콜카타 탈출기






정말이지 콜카타는 이틀이 적당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사람에 치이고 더위에 치이는 그저 도시, 델리 이남 북인도의 대도시일 뿐, 은행에 가서 현금을 인출하고 유심카드를 사며 내일 떠나는 기차표를 사는 것 이외엔 별 용건이 없는 도시였다. 빅토리아 메모리얼이라고 하는, 영국 식민지 시대 당시 건물이 있다고 듣긴 했었는데 뭐랄까 굳이 한국에 대입하자면 조선총독부 같은 건물 지어놓고 메이지 메모리얼이나 히로히토 메모리얼이라고 이름 붙인 거와 다를 게 뭔가 싶었다. 아무래도 나라별로 식민지 시대에 관한 인식이 다른 탓도 있겠다만, 구태여 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메모리얼 말고도 그나마 여행자들이 많이 간다는 뉴 마켓도 한 번 갔었는데, 이전에 와봤던 곳이어서 그런지 무언가를 크게 할만한 게 있나 싶어 주변만 배회했다. 덕분에 삐끼로 보이는 인도인 남자가 한 명 들러붙더라. 무엇을 하고 싶냐, 무엇을 사고 싶냐 하는 질문으로 끈질기게 따라붙었고, 괜히 이런 수작으로 돈이라도 몇 푼 뜯어낼 심산인 게 빤했던 그에게 혼자서 다니고 싶다, 저리 가라고 했더니 친구 왜 그러냐는 뉘앙스로 다시 따라붙기 시작한다. 인도에서 마주하기 쉬운 패턴이다. 포기를 모르는 척 핑계 삼아 패배주의에 입각한 지지리도 못난 근성을 감추고 싶은 거다. 네잉 짜이 헤 짤로, (필요 없으니 저리 가) 저 자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외국인 여행자에게 들러붙을 것이며, 이전에 얼마나 많은 여행자로부터 꺼지라는 이야기를 들어왔을 것인가. 그럼에도 그의 계획에 곧이곧대로 빠진 이들도 있었겠지.











저녁부터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당장 나는 기차역으로 가야 하는데, 숙소 앞 도로는 발목이 잠길 만큼 물에 잠겨 하우라 강의 새로운 지류가 되었다. 최근 일주일 사이에 홍수가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덕분에 같은 숙소에 머물렀던 건휘 씨는 콜카타에 열흘 가까이 머물렀다고 했는데, 그 말이 퍽 와닿았다. 콜카타는 한두 시간만 비가 내려도 홍수가 된다는 걸. 이전에 인도를 여러 차례 여행했던 친구에게 홍수 얘기를 하자 그 동네 하수도는 영국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거라 오래될 만큼 오래되었으며, 여전히 변한 게 없다고 외려 인도에 와있는 나를 능가할 정도로 툴툴대었다. 인도판 우버인 올라로 차를 잡아보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비가 이렇도록 내리는데 매칭이 된다는 게 더 신기한 일 아닐 텐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길거리의 릭샤를 타거나, 아니면 택시를 타거나. 정작 타고 싶지 않을 땐 지천으로 널려 있는 릭샤가 오늘 같은 날에는 보이지 않는다. 일종의 머피의 법칙이라고 해야 하나. 믿을 만한 건 택시뿐이었다. 비를 맞아 온몸이 흠뻑 젖어가는데도 그렇게도 흥정을 하고 싶었다. 5km 앞에 떨어진 기차역까지 200루피 (3400원). 그래, 그렇다 치자. 나도 비 오는 날은 지친다.












기차역의 흔한 풍경이 내 앞에 마주한다. 군데군데 자리를 깔고 누운 사람들과 커다란 전광판에 따라 각기 다른 승강장으로 흩어지는 사람들, 그리고 짜라잔 하고 울려 퍼지는 안내방송 소리. 한두 명쯤 보일법한 외국인 여행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보통 이들은 바라나시행 기차가 있는 하우라 역으로 갈 테니까. 지금 와있는 실다 (Sealdah) 역은 이번에 와서 처음 들을 정도로 생소한 기차역이었다. 서울로 치면 청량리역쯤 되겠다만, 외국인 여행자 열이면 아홉 정도는 모를 역일 게 분명하다. 그런 기차역에 하시마라라는, 이름마저도 생소한 곳으로 가는 기차가 있다. 그러니까 웨스트벵갈 주의 동쪽 끝자락, 이름만 봐서는 일본의 어느 시골 기차역 같은 이름이었지만, 인도인들은 ‘하시마라!’ 하며 어딘지 곧잘 아는 눈치였다.











SL칸이 다 그렇듯 여섯 명이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형식으로 되어있었고, 잠잘 시간이 되면 가운데 칸을 침대로 만들어 각기 다른 여섯 개의 침대를 만들었다. 내 옆에 앉은 이는 콜카타에서 한 시간 거리인 Kamarkandu로 가는 중년 남자.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힌디어 중에서도 영어와 공유하는 단어가 몇 있었기 때문에 짧은 영어 단어만으로도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창문 가까이에서 핸드폰을 만지고 있자 그러면 훔쳐갈 수도 있다는 손짓과 유튜브로 함께하는 힌디음악. 새로운 여행지에서는 이제 유심칩을 통해 인터넷을 쓸 수 있게 되었고, 그를 수반하는 인도 인터넷 통신망의 발전으로 기차 안에서도 유튜브를 볼 수 있게 되었다. 4년 전 시골 동네에선 그저 G만 떴었는데, 지금은 4G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발전인가. 나는 그저 이들과 더 많은 것들을 공유할 수 있음이 좋을 뿐이다.

한 시간에서 삼십 분 정도 더 지나자 중년 남자는 기차를 떠났고, 그 자리엔 인도인 청년들이 메웠다. 서너 명 정도가 일행으로 보여서 나름 인도여행을 떠올릴 때 상상한 수많은 질문 공세를 예상했었는데, 생각보다 짧고 젊잖게 끝난 대화에 인도인에 대한 편견을 다시 한번 일깨우게 되었다.

어디서 왔냐, 한국에서 왔다.
어디로 가냐, 우린 말다로 간다.
거기 방글라데시 국경 도시 아니냐, 맞다.
우리는 군인이다. 오 나도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군인이었다.

하며 군 복무 시절 전투복을 입은 사진을 보여주었고, 대화는 끝이 났다. 사실 군인이라는 말에 한국 군대와 인도 군대의 다른 점을 비롯한 군대 얘기를 이어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한국이나 인도나 군 관련된 얘기라면 보안 사항으로 민감한 탓인지, 아니면 전역한 한국군인이라는 말에 내가 외국인하고도 군대 얘기나 해야 하며 이미 노잼을 예감한 건지. 마지막으로 대화가 더 이어지긴 했다. 전투화 끈을 묶고 있는 남자의 모습에 그거 인도 군화냐고 물어봤던 거. 그게 전부였다.











기차는 15시간을 달려 하시마라 역에 도착한다. 정말이지 기차역 말고는 크게 뭐가 없던 시골 마을. 사실 구글에 암만 검색을 해도 시골 마을에서 다음 시골 마을까지 가는 방법이 상세하게 나올 리 만무하겠다만, 여하튼 다음 목적지로 가는 방법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 모든 건 오로지 현장에서 직접 부딪혀 봐야 안다. 나를 믿어야 하고, 인도를 믿어야 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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