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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재 Sep 01. 2019

<스물셋의 인도> #2

에어아시아를 에어인디아로 만드는 기적




4년 전 처음 인도에 갈 때와 다를 바 없는 방콕 출발 콜카타행 비행기. 그땐 성지순례를 떠나는 캄보디아인들로 인산인해였다면 이번엔 인도인들로 인산인해였다. 옆 좌석도, 건너편 옆 좌석도, 맞은 편, 뒤편도 모두 인도인. 간간이 보이던 일본인들은 멀리에 앉았는지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신임 소대장도 나와 같은 생각이겠지. 태국이 아니라 여긴 이미 인도라고. 처음 비행기로 올라가던 계단 앞, 멀직이에 서서 어쩔 줄 몰라하던 소대장의 얼굴이 선하다. 대열이라는 게 없이 우후죽순으로 들어가던 인도인들의 모습, 중간에는 사진을 찍는 이들도 몇 있어서, 일반적으로 순서에 맞추어 줄을 서는 게 당연한 한국이나 일본이었다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임이 빤해 보였다.

그런 소대장에게 소대원으로서 눈짓을 보냈다. 여긴 인도라고, 남들보다 앞서 줄을 서는 게 당연한 인도라고. 인구가 워낙에 많다 보니 길을 걷고 사소한 무언가를 해내는 것조차 경쟁인 삶이 당연할 수밖에 없으며, 막상 남들보다 앞서더라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 게 인도라고. 도대체 그건 어떤 이유인 걸까, 나 또한 새치기를 하니 너 또한 괜찮다 하는 관용에서 비롯된 걸까, 이렇게 보면 또 인도가 꽤나 현자의 나라처럼 보여지는 듯한데. 소대장은 이번에도 씨익 하고 웃으며 내 뒤로 섰다. 여행자 간에는 서로 돕고 도우며 사는 법.

비행기가 이륙할 무렵, 보통의 일반적인 기내에서는 이착륙 시가 제일 예민한 편이기 때문에 몇몇 아기들의 울음소리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조용히 하는 편이다. 하지만 인도인들에게 그런 건 없다. 어느 한 명의 생일이었는지 다 같이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줌은 물론 휘파람도 불며 생일인 자는 일어서서 감사의 인사를 표하기도 하는데, 이를 보고도 통제하지 않는 승무원들은 이미 해탈했음이 분명하다. 그래 이건 인도 가는 비행기니까. 에어아시아가 에어인디아가 되어도 이상할 바 없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의 일인가. 태국인 승무원들의 표정은 이미 지쳐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콜카타에 닿길 바랄 뿐.





새벽 비행이다 보니 콜카타는 생각보다 빠르게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쪽잠을 거하게 잤던 탓이겠지. 공항은 에어컨을 세게 틀어놔서 그런지 델리 이남 북인도의 덥고 습함을 체감하기엔 아직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알아야 마음의 준비라도 할 텐데. 뜨거운 8월 인도에서 시원함을 넘어 으슬으슬하기까지 하니 너무나도 감사할 뿐. 이제 도착 비자만 해결되면 될 텐데. 입국신청서와 도착비자 신청서를 작성하는 일은 인도에 두 번째로 오는 나에게도 낯설게 다가온다. 그만큼 작성양식이 까다로운 감도 있겠다만, 사실 여행하면서 체득한 영어를 절반 이상 까먹은 감도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2년 가까운 군 생활에 지나치게 적응한 탓이겠지. 부모님 성함을 쓰고 조부모 중에 파키스탄 출신이 있는지를 적는 게 그렇게까지 까다로운 문항은 아닐 테니, 나는 다만 영어 무식자일 뿐이었다.

입국 심사를 마치는 데까지는 두 시간여가 걸렸다. 여기서 한 시간은 영어 무식자의 두뇌 싸움이었고, 나머지 한 시간은 심사관과의 싸움이었다. 중년에 점잖고 심사관 경력 20년 이상 되어 보이는 남자가 알고 봤더니 갓 인수인계를 받는 중이었던 것. 어쩐지 이전에 했던 일과 앞으로의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게 이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심사관의 권력은 무시하지 못하니 곧이곧대로 답변하긴 했다. 짧은 머리까지 보여주면서 이전에는 군인이었고, 앞으로는 작가가 될 거라고. 십 분쯤 지나자 사수로 보이는 심사관이 나타났고, 사수의 지시에 따라 그는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그 와중에 도착 비자 도장이 아닌 내 여권에 다른 도장을 찍자 사수가 잘 못 찍었다고 뭐라 하긴 하더라.

군 복무 당시 이등병 때 모습이 겹쳐 올랐다. 그때의 나는 2.4종 계원이 된 지 한 달이 조금 안 된 상태였고, 내 위의 사수는 나보다 3살이 더 많은 맞선임이었다. 늦은 나이에 입대한 탓에 매사에 열심히 살아야 했고, 이를 통해 본인의 쓰임새와 당위성을 증명해야 했던 그의 삶. 덕분에 바로 밑에 있던 나는 실수가 잦아질수록 해당 사회 속에서 도태됨과 불안함을 안고 살아야 했지만 말이다. 어쩌다가 잊고 지냈던 과거가 떠오른 건지. 도착 비자 도장은 무사히 내 여권 속에 안착했고, 아웃 티켓이 파키스탄이라는 이야기는 다행히 오가지 않았다.

격세지감이라도 느끼듯, 공항에서는 와이파이를 쓸 수 있었다. 4년 전만 해도 와이파이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던 것이었는데. 그래도 공항 밖으로 나가면 다시 못 들어가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었다. 인터넷을 조금 쓰다 자고 일어나니 날은 이미 밝아 하루가 시작된 지 오래였다. 인도에서의 첫날, 4년 전 처음 인도에 도착했을 때의 충격이 이번에는 조금이라도 덜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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