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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재 Sep 23. 2019

<스물셋의 인도> #6

바라나시에서의 일상

인도의 흔한 설사약과 빠니보틀



1. 기차에서 무언갈 잘못 먹은 탓이다. 바라나시에서 설사병에 걸린 이후로 며칠을 내내 숙소 밖으로 나오질 못했으니 말이다. 잠을 잘 때도 베드버그에 물린 것 마냥 가려움의 고통을 이기지 못한 때와 같이 환각에 시달리며 잠을 이루지 못함은 물론 화장실을 언제나 들락날락해야 했다. 인도에 와서 한 번쯤은 경험하는 설사병이고 물갈이다. 외려 여행 초반에 터짐을 감사하면서도 사그라들 줄 모르는 화장실 출석에 밖을 나가는 일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지금 나가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인가. 끼니를 해결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없었고, 차라리 한국으로 돌아가고픈 마음만이 간절했다. 여행을 시작한 지 2주, 앞으로 남은 두 달간의 여정은 두려움과 부담으로 돌아왔다. 언제 라다크까지 갈 것이며 언제 또 파키스탄 훈자까지 가겠는가. 침대에 아무 생각 없이 누워만 지냈다. 그래도 현지 설사약을 먹고 나니 셋째 날부터는 퍽 괜찮아졌다. 아직은 한국 음식이나 꽤나 깔끔해 보이는 식당에서만 먹을 수 있지만 한 번 치레를 겪은 만큼 로컬 음식도 괜찮아지겠지.





2. 공동체적 이상향을 지향하던 가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한여름인 8월에 간 탓인지 가트는 이미 물에 잠겨버린 지 오래, 가트에 삼삼오오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하염없이 멍만 때리던 풍경은 도대체 어디로 갔느냔 말인가. 8월의 바라나시에는 더 이상 사람들이 모일 만한 장소가 없다. 언제 어디서 만나자는 약속 없이 쉽게 모일 만한 공간이 없다는 거다. 8월의 바라나시에선 사람들을 직접 찾아 나서야 한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간다는 숙소에서도 이들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바라나시에 6일 정도 머무는 동안 다들 나를 보고는 여기 와서 한국 사람 처음 본다는 말만 해왔다. 그 많던 한국 사람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계절을 막론하고 매월 수많은 여행자가 인도를 찾는다면, 이들은 모두 더위를 피해 라다크에 갔음이 분명하다. 300명 가까이 되는 여행자 채팅방에서의 주 대화주제가 라다크와 레, 판공초와 같은 것이라면 나조차도 하루빨리 북쪽으로 올라감이 맞다. 정말이지 하늘을 찌르는 더위에 여행자들 모두가 지쳐있었다. 기존에 계획했던 오르차와 아그라는 더위에 이기지 못해 보아도 보지 않은 것이나 진배없을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델리를 거쳐 선선한 마날리로 감이 맞다.





3. 낯익은 한국말이 들렸고 낯익은 사람들이 보였다. 어디에서 본 사람들이었을까, 여행지에서 봤던 사람들이었나? 그런데 그렇다기엔 최근 여행하는 동안 한국 사람들을 너무 못 만나고 다녔다. 분명히 어디에서 많이 본 분들인데, 곰곰이 생각하다가 유튜브를 떠올리게 되었다. 내가 구독하던 채널, 한국에서 영상으로 볼 때는 그저 이상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내 앞에, 나와 같은 숙소에 있었다.


“혹시 여행유튜버 킴앤조 아니신가요? 저 구독자예요!”

  

여행유튜버 킴앤조는 내가 여행 중에 만난 첫 구독자라고 했고 마침 아침을 먹으러 갈 때여서 인도인들이 아침으로 흔히 먹는 푸리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설사병이 갓 멈췄을 때여서 로컬음식을 먹는 일이 여간 두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본디 설사병 같은 자질구레한 것들은 충격요법으로 치유하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본질은 다르지만, 일종의 예방주사와도 같고 내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나 시험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고프로와 함께하는 여행은 나에게 꽤나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사진을 촬영하고 싶을 때면 카메라를 드는 기존의 나의 여행과 달리 영상을 촬영하면서 다니는 여행은 사소한 일상의 전부를 카메라에 담아야 하다 보니,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의식하게 됨은 어쩔 수 없으며, 사실 나도 여행 영상을 남기기 위해 액션캠을 가져오긴 했지만 막상 카메라를 들고 나니 긴장한 탓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어쩔 줄 모르던 내가 보였다. 여행을 다니고 처음 보는 사람들을 만남으로써 외향성을 학습한 내성적인 성격의 나는 사진만 찍고 글만 써야지.

    

여행일정이 겹친 덕분에 바라나시를 떠나고 일주일 뒤 마날리에서도 같이 여행하게 되었고, 10월 초에는 파키스탄 라호르에서 다시 보기로 했다. 어쩌면 파키스탄 영상에서는 나도 같이 나올지도. 영상을 촬영하는 모습을 볼 때는 실시간으로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것처럼 신기했었는데 막상 내가 영상에 나온다면 또 어떤 느낌일지.





4. “혹시 한국 분이시면 같이 흡연하러 가실래요?”

 

처음 나에게서 그녀는 내 앞에 놓인 담뱃갑과 라이터를 보았을 테고, 두 번째로는 내가 한국 사람임을 직감했을 것이다. 외형적인 면모에서 누가 봐도 한국 사람임이 태가 났거나, 아니면 한국 사람이면 유별나게 가지고 있는 물건을 가지고 있었거나. 그녀도 내가 바라나시에 와서 처음 보는 한국 사람이라고 했고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여행 얘기로 흘러갔다. 그동안 여행 중에 다녔던 곳이라던가, 파키스탄 훈자에 간다 하는 앞으로의 여행일정과 같은 여행자 간에 흔히들 나누는 대화 주제로 이어졌다.


델리로 처음 들어와 인도여행을 시작한 지 4일 정도 되었다는 그녀의 표정과 말투는 오래된 여행자 해적왕을 닮은 첫인상과는 다르게 어딘가 순박해 보였다. 델리 빠하르간즈에서 여행자들을 상대로 호객하는 상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재밌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아 인도여행이 처음이면 그럴 수 있겠구나 싶으면서도, 원래부터 천성이 누군가 먼저 다가옴에도 여유를 느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돌이켜보면 처음 인도에 왔을 때의 나도 그랬던 것 같았다. 모든 게 새로웠고 인도인에게 먼저 말도 걸며 사진 찍어도 되냐면서 다가가곤 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내 안의 내성적인 면모가 두드러졌고, 대화의 물꼬를 트기 시작하면 대강 어떤 패턴으로 흘러가는지 눈앞에 선하게 되어 큰 흥미를 얻지 못하게 되었다. 나에겐 그저 형식적으로 지나쳐야 할 바라나시가 순박한 해적왕에게는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해적왕과의 대화 중에 겨울에 책이 나오고 작가가 된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녀는 내게 다소 심오한 질문을 던졌다. 어떨 때 행복을 느끼냐고.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 사람들은 네 잎 클로버 (행운)만 좇다 세 잎 클로버 (행복)을 짓밟는다는 표현을 꽤나 맹신하는 편이라 이렇게 대답하기로 했다. 지금 설사병이 멈췄음에 행복감을 느끼고 어디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고. 사소하고 일상적인 요소에 행복을 느낀다는 말이 과연 정답인지, 아니면 진정한 내 마음의 소리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 당장 생각나는 답변은 그거 하나였다.


해적왕과는 다음 날 거리에서 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나는 그다음 날 델리로 떠났고, 그녀는 다른 여행지로 갔겠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시점까지 한 달 가까이 지난 지금, 그녀에게 인도는 어떤 인상으로 남아 있을지 궁금하다. 과연 한 달 전과 다름없이 한결같을지. 개인적으로 나는 이전과 다름없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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