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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재 Oct 15. 2019

<스물셋의 인도> #8

지상낙원 마날리




1. 마날리 사람들은 어딘가 여유롭다. 아무래도 선선한 날씨가 한몫하지 않을까. 숙소도, 식당도 어딘가 여유가 넘친다. 어쩌면 그간의 내가 더위에 찌들어 이를 인지하지 못한 탓도 있겠다. 인도인들은 언제나 여유로운데, 내가 지치고 힘드니 오직 나밖에 신경 쓰지 못한 거다. 어쩌면 그게 더 맞을 수도 있다.







아침 일찍 도착한다는 버스는 점심께가 다 되어갈 무렵이 지나도 쿨루(Kullu)에 멈춰 서있었다. 마날리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진, 동네에서는 그나마 큰 마을. 버스는 그대로 길 위에 속절없이 시간을 보낼 뿐이고, 상황을 알 리 없는 외국인 여행자들은 서로들 쳐다만 볼 뿐이다. 나중에 가서 버스 기사에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니, 이전 정류장에 내린 승객의 짐이 바뀌어버린 탓에 개인적으로 다시 짐을 바꿔주러 갔다는 거였다. 장거리 버스인 데다 승객도 꽤 있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한 시간가량 지체됨에도 싫은 내색 없이 여유를 즐기던 사람들, 델리와는 다른 풍경과 마주해 이들의 마음도 트인 거일 수도 있겠다. 숨이 턱 막히지 않는 날씨, 그리고 티베트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 마날리는 외국인뿐만 아니라 인도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 여행지 중 하나였다. 그러니 여유가 넘칠 수밖에.




티베트식 수제비 요리, 뗌뚝




2. 북인도는 모름지기 뗌뚝이다. 4년 전 처음 인도여행을 할 때도 매일같이 찾았던 게 티베트 식당이었고 뗌뚝이었다. 한국의 수제비와 비슷한 티베트 음식, 국물음식이 잘 없는 인도 음식에 아쉬움을 표하던 여행자들에게 티베트 음식은 완벽한 대체재였다. 뗌뚝은 물론 칼국수와 비슷한 뚝바와 티베트식 만두 모모까지 한국인 여행자 입맛에 안 맞는 음식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애당초 티베트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곰파를 보러 재차 인도에 온 나에게 티베트 음식은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나 다름없겠구나. 검색해보니 마침 내가 머물던 올드 마날리에도 티베트 음식점이 있다고 나와 있었다. 지도에 표시된 위치만 대강 잡고 일단 가보기로 하자, 어차피 동네도 작고 여행자 거리에 옹기종기 모여있을 테니.




티베트식 수제비 요리, 뗌뚝
티베트식 만둣국, 보통 모모 수프로 통한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맛보는 뗌뚝, 국물을 몇 번 뜨고는 그래 이 맛이지 하면서 연신 국물만 뜨기에 바빴다. 어쩌면 이 맛이 그리워서 다시 인도에 온 거일지도 모르겠다. 후에 추천으로 가게 된 식당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맛집으로 소문이 났는지 아예 한국어로 된 메뉴판도 있더라. 뗌뚝도 뗌뚝이지만 여긴 만둣국이 일품이었다. 주문할 때 얘기만 하면 맵게도 먹을 수가 있었는데 이쯤 되면 인도 음식 대체재를 뛰어넘어 한국 음식 대체재로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하딤바 데비 사원




3. 마날리에서 머무는 일주일 동안 무엇을 했는지 되새겨 보자. 근방에 바쉬싯이라는 작은 마을과 폭포, 온천이 있다는 얘기를 듣긴 했다. 후에 라다크 여행을 함께하게 된 민식은 온천이 너무 좋아서 매일같이 갔다고 했지만 나는 크게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바쉬싯 근처면 후에 라다크에서 내려온 다음에 가도 괜찮잖아? 하면서 정작 마날리에 다시 왔을 땐 같은 숙소에서 하루만 지내고 떠났지만. 크게 가본 곳이라고 해봤자 뉴 마날리로 이어지는 숲길과, 하딤바 라는 이름의 힌두교 사원, 그 옆으로 이어진 숲길이 전부였다. 사원은 인도인 관광객이 워낙에 많은 데다 힌두교를 믿지 않는 이상 크게 와닿는 바는 없어 보였다. 어떤 신이 모셔져 있는지도 나는 알지 못한다. 설령 알고 있다 해도 힌두교를 믿는 여느 인도인들처럼 기도를 드리거나 종교적 의식을 행하진 않았을 거다. 이들처럼 힌두가 곧 문화고 삶이어서 마음으로 받아들인 게 아니라 그저 텍스트로 인지한 정보 조각에 불과할 테니.







숲길은 그나마 와닿는 바도 있었고 외려 안정감도 주었다. 길을 걸었을 때 바람에 나무가 살랑였고 잔잔한 소리와 함께 나무 특유의 향이 코끝을 스쳤다면 그것만으로 된 거다. 자연은 인간에게 많은 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 물론 지금 살랑이는 나무의 이름은 무엇이며 어떤 식물과 동물들이 공존하는지 알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만, 그렇다고 이를 모른다고 해서 자연이 주는 감정이 달라지진 않는다. 숲은 그저 숲이다. 동식물에 학명이 붙여지지 않았던 때에도, 검색 몇 번에 세상 모든 정보를 손에 얻는 지금도 숲은 한결같다. 문명의 발전과 고도화로 같은 숲을 바라보는 인간의 이해관계는 달라지겠지만, 이를 배제하고 그저 자연이 좋아서 숲길을 걷는 이라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을 거다.







밥을 먹으러 갈 때 말고는 대부분 숙소에서 시간을 보냈다. 노트북으로 글을 쓰거나, 아니면 같은 숙소에 머무는 사람들과 카드게임을 하거나. ‘우노’라고 불리는, 한국의 원카드 비슷한 게임이었는데 본인이 가지고 있는 카드가 한 장이 남아 있을 때 우노를 외치는 게임이었다. 그도 그럴 게 우노나 원이나 언어만 다를 뿐 숫자 1을 뜻하는 건 같지 않은가, 규칙만 조금 다를 뿐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익숙하게 하던 것이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게임을 시작하고, 끝을 맺는 이는 늘 정해져 있었다. 브라질 사람, 일본사람, 그리고 각각 펀자브주와 벵갈루루에서 온 인도인. 나보다 먼저 숙소에 머물던 이들이었고, 내가 떠나기 전까지도 머물던 이들이었다. 게임으로 하나 된 공동체 사회,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이들이 하나의 친숙한 공감대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영어를 썩 잘하지 못하더라도, 문화권이 완전히 다르거나 전 세계적으로 공유하는 주류문화에 일가견이 없어도 얼마든지 공동체에 뛰어들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사실 그간의 내가 그랬다. 영어로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살되 썩 잘하는 편은 아닌지라 여행자 간에 흔하게 주고받는 국적이나 여행계획, 그동안 다녀왔던 여행지와 상대방이 나고 자란 국가에 대한 일말의 지식을 몇 개 던지고 나면 더는 대화주제가 나오지 않았고, 그렇다고 빌보드 차트에 나오는 해외 팝송이나 외국 드라마나 영화를 잘 보는 것도 아니다 보니 공유할만한 공감대가 크게 없었던 거다. 아무래도 이건 내가 넷플릭스 계정이 아직 없어서 그런 거 같지만.







국외에서 여행을 다니면서 아쉬움을 느꼈던 부분이 바로 사람, 여행자 간의 만남이었다. 한국의 게스트하우스처럼 여행자들이 모일만한 공간을 따로 주선하지 않음은 당연한 일이며, 막상 외국인 여행자와 대화를 튼다고 해도 크게 공유할만한 주제도 많지 않아 대부분 겉핥기로 스쳐 지나간 인연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여기 마날리는 달랐다. 여타 여행자들 사이에 껴도 어색하지도 않고 편하다는 게,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게.


정말이지 나는 이제야 알았다. 영어를 못 하는 것도, 나아가 외국인 여행자와 쉽게 어울릴 만한 성격이 못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여타 외국인 여행자들과 딱히 할 얘기가 없었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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