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국토대장정 히치하이킹 여행
여행 2일차
광주에서 전주까지
현재 시각 밤 10시 46분.
하지만 저녁을 든든하게 먹고 온 탓인지 먹방에 심하게 동요되진 않는다.
보통 탕수육이라 하면 튀김 옷을 입고 나온 고깃덩이와 오이와 당근이 퐁당 올라간 소스 국물을 상상하곤 한다. 하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양념 소스를 입은 채로 식탁 위로 올라온다. 이는 소스 따위에 눅눅해지지 않을 튀김 옷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고 생활의 달인에서 봤는데) 그런 탕수육을 맛보게 될 줄이야...
짬뽕도 기가 막히게 맛있다. 원래 난 짜장파였다. 짜장면과 짬뽕으로 의견이 극명하게 갈릴 때 무조건 난 짜장면을 선택했었다. 하지만 여기만큼은, 제주도의 다래향 다음으로 여기만큼은 무조건 짬뽕이다. 사실 여기서 짜장면은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짬뽕이다.
음식의 맛이 보통이 아니다 싶었더니, 과연 생활의 달인에 나온 맛집이었었다. 역시 생활의 달인...
시내에서 누나의 집이 있는 산외면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사실 히치하이킹으로 충분히 갈 법한 중장거리를 다른 대중교통으로 간다는 것 자체가 양심에 찔리긴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같이 이동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나만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혼자 길 위에 나설 수는 없는 일이니까. 융통성을 발휘해야할 때는 해야지.
김동수 가옥
여기서 자전거를 타고 조금만 가면 나오는 곳이었다. 처음 이곳을 알려주었을 땐 그냥 이런 곳이 있나보다 하면서 히치하이킹 여행을 하는 와중에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을까 했는데 지나치기엔 가까워도 너무 가까웠다. 집에서 자전거로 5분만 가도 이런 곳이 나온다니...
가옥이라고 해서 강진의 다산초당처럼 소박하게 집 한 채만 아담하게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 옛날에, 오직 상류층들만 지을 수 있었다던 아흔아홉 칸 짜리 대저택이었다. 그리고 여기가 관광안내지도에 큰 글씨로 '김동수 가옥'이라고 적혀져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다는 것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해가 질 무렵이었던 4시 30분에 가서 그런지 정말로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관광안내해설사 분도 막 퇴근하려던 참이라 들어가도 되나 안되나 하며 망설였을 정도.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린 가옥의 진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만약 조선시대 옷이 아닌 현대적인 옷을 입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지나다니고 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몰입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80년대에도 쓰였고 90년대에도 쓰였을, 어쩌면 촌스럽고 식상할 정도로 흔히 쓰는 비유법이지만 '타.임.머.신' 을 타고 '과.거' 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것도 아무도 없는, 집주인이 먼 길을 떠난 사이에 습격한 낯선 이가 된 것만 같았다.
그리고 몇 백년 전에도 한결 같았을 이곳의 일몰.
자전거의 페달을 차마 밟을 수가 없었다. 이런 풍경이라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남기고 싶었다. 정읍의 어느 시골 마을이 주는 어쩌면 평범하다고 생각되었을 일몰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그저 보는 것 만으로도 좋았다. 정말이지 그 어떤 생각도, 그 어떤 상념도 지금만큼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겨울의 논도 결코 황량하지 않았다. 오히려 푸른 빛이 감도는 여름과 황금 빛으로 일색인 가을보다 더 빛이 났다. 수많은 논을 봐왔다. 사실 우리집도 경기도에서 버스를 타고 꽤나 들어가야하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학교 가는 길은 항상 논밭과 함께였었다. 하지만 이러한 풍경은 여기가 처음이었다. 논이 이렇게 나도 빛이 난다는 게...
그녀의 남자친구인 대은형에게 히치하이킹 여행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나. 언뜻 보면 손가락으로 욕하는 것 같지만 절대 아님ㅋㅋㅋㅋ 사실 나도 이 사진 보고 깜짝 놀랐다. 내 손가락 왜 저러고 있어... 하면서 말이다.
그나저나 머리는 또 왜 저러냐
점심 때 미리 예약해 둔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전주까지는 형과 누나가 데려다 주기로 했다. 정읍에서 전주까지 많이 멀지 않을까 했는데 30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기차로 가도 한참은 가야하는 거리를 과연 30분 만에 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주시에 들어왔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였다. 와 어떻게 전주까지 오긴 오는구나. 땅끝에 있을 때만 해도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전라도를 가로질러서 거의 북쪽 끝까지 왔구나...
전주 한옥마을 하면 단연 야경이었다. 물론 바게트 빵버거나 초코파이, 문꼬치와 같은 먹방들도 떠오르긴 했지만 그래도 야경이 제일이었다. 오목대로 올라가기 전에 나오는 등산로! 막상 오목대에 올라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오목대 말고는 아무것도 없음..
어쩌다보니 전주를 한 달만에 다시 오게 되었다. 그때도 바게트 빵버거니, 초코파이니 등등 여러 맛집을 돌아다니며 먹방투어를 하고 마지막에 오목대에 올라와 야경을 보곤 했었는데 이곳을 다시 찾게 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듯 하다.
전주를 여행하는 내일러들 사이에서는 막걸리 파티로 유명한 크로싱 게스트하우스. 한 달 전에도 예약 전화를 걸어봤지만 그땐 바닥에서 자겠다는 사람도 나타날 정도로 예약이 다 차서 못 가고 오늘에서야 가게 되었다. (사실 이것도 딱 한 자리 남아서 겨우 가게 된 것이다)
여행이 일상이고 일상이 여행이 되어버린 나이지만 새로운 게스트하우스는 언제나 떨리기 마련이다. 아무리 같은 게스트하우스라고 해도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고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설레는 마음을 안고 조심스레 문을 열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음껏 즐기기로 다짐한다.
그리고...
write by 효담누나
감사합니다! 잘 쓸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