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국토대장정 히치하이킹 여행
여행 2일차
광주에서 전주까지
토스트와 계란, 팩으로 된 딸기잼과 버터로 이루어진 여느 게스트하우스와는 달리 별밤의 아침 식사는 무려 '집밥' 이었다. 아침에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나에게 사장님께서 매일 해주시는 집밥이라니... 그냥 경유지 차원으로 잠깐 들렀던 광주에 다시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별밤만의 집밥이 그리워서, 그리고 바베큐 파티와 같은 거창한 분위기가 아닌 소소한 분위기여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어서.
"광주 시내의 많고 많은 곳들 중에 왜 하필이면 문화회관인가요?"
어제 영암에서 광주로 오던 차 안, 뻔뻔해야지 더 잘 살고 사회생활도 잘 할 수 있을 거라며 응원해주었던 40대 남자는 내게 엄청난 팁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바로 문화회관에 가면 외곽도시로 가는 차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고급 정보. 호남고속도로 서광주 IC의 진입로에 있는데다 차량 이동량도 많기 때문에 이곳에서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하기야 우리나라를 잘 모르는 외국인들도 서울을 외친다는 곳이 바로 문화회관인데, 나라고 안 될 일이 있을까.
히치하이킹 여행이라고 해서 난 무조건 국도로만 가야 하는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래야만 될 것 같았다. 고속도로에서 과연 이게 될까? 단거리 이동을 많이 하는 편인 나에게 내 목적지까지 가는 차가 나타나지 않을 거란 생각은 빈약한 편견에 불과했다. 안 될게 뭐 있나, 일단 하고 보는 거지.
현재 시각 10시 반, 출근 전쟁이 한판 휩쓸고 간 고속도로 진입로에는 여유로움만 감돌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동차의 이동량이 생각보다 많이 없다라는 것. 거기에다가 여긴 고속도로 진입로다. 국도와는 달리 저 멀리 전주나 대전, 밑으로는 순천으로 가는 차들도 꽤 높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그 와중에 정읍이나 장성으로 가는 차가 과연 있기나 할까? 사실 아까 그 길가에서 계속 시도하다가 하도 안돼서 진입로 턱밑까지 올라온 나다. 여기마저 실패하게 된다면, 히치하이킹 장소를 통째로 바꾸거나 최후의 수단인 시외버스 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택시들이 내 엄지손가락을 보고 멈춰 서는 바람에 수없이 죄송함을 표해야 했고, 그 덕분에 버스를 기다리다 지친 한 할머니는 택시를 얻어탈 수 있었다. 그 후에도 물건을 내리는 택배기사에게도 조심히 다가가 장성이나 정읍으로 가냐고 물어봤지만 방향이 달라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밖에 들을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장성이나 정읍 쪽으로 가시나요??”
그렇게 서 있기를 30분, 그렇게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차 한 대가 드디어 내 앞에 멈춰 섰다. 혹시나 다른 이유로 멈춰 선 게 아닌가 싶어 조심스럽게 다가갔지만 그는 '장성'이라고 쓰여 있는 내 피켓을 보고 멈춰 섰다고 했다. 드디어 광주를 벗어나 목적지에 다가갈 수 있게 되다니! 감동의 쓰나미가 자연스레 밀려왔다.
그는 나보고 요즘 젊은이 같지 않다는 말을 했다. 남들 하란 대로에 길들여져 수동적인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고 친해지기가 쉽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히치하이킹 여행을 하는 나를 보고 용기 있다고 말했던 그분.
우리는 왜 처음 보는 이들을 두려워하고 어려워할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어색한 분위기를 견딜 수가 없어서도 있을 것이다. 함께 아는 사람도, 공통 관심사도 알 수 없는 상대방에게 과연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짧은 대화가 끝난 후 찾아오는 어색함이라면 단 1초도 참아낼 수 없는 게 인간의 심리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요인이 있다면 바로 ‘까 봐’가 아닐까 싶다. 상대방이 이럴까 봐, 저럴까 봐. 내가 이렇게 말을 걸었는데 아무 말도 없을까 봐, 차를 잡겠다고 손을 열심히 들었는데 못 본 척하고 차갑게 지나갈까 봐. 도전해보지도 않고 이미 그 일을 해낸 경험자마냥 부정적인 말들만 하는 사람들을 향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린 이미 수많은 일들을 해왔던 도전자들이었고 수많은 여자들에게 보기 좋게 까여왔다. 상처로 덕지덕지 바느질된 마음은 경계심으로 더 단단해져 버렸고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는 이미 저 바다로 내던진 채 방어벽만 겹겹이 쌓여졌다. 그리고 그런 우리들이 받은 서투른 충고는 또 다른 상처로 남겨져 버렸다.
히치하이킹 여행은 언제나 그렇듯 자문자답의 연속이다.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점이 생기면 이렇게 하면 되지!라는 답변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이번에도 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백양사 IC에서 정읍시내로 가는 차들은 그리 많지 않지만 정읍을 어떻게든 지나가는 차는 많이 있지 않을까?
사실 여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바로 나오는 곳이 정읍이었다. 그 말은 즉슨, 광주방향으로 가지 않는 이상 웬만한 차들은 다 정읍을 지나치긴 한다는 얘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스케치북을 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주로 간다 는 분을 만날 수 있었다. 내 전략은 확실하게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이 전략이 이번 여행에 있어서 최고로 멍청한 전략으로 남겨질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전라남도에서 전라북도로 넘어올 때
감정에 복받쳐 오르던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은 사진
우리를 태운 차는 점점 정읍 IC에 다다르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 내가 긴장하고 있는 만큼 운전자분도 같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에게도 휴게소가 아닌 고속도로 한복판에다가 사람을 내리는 일은 아마 태어나서 처음일 테니까. '과연 괜찮을까요?'라는 걱정 어린 한마디와 함께 난 정읍 IC 진출구에서 내리기로 했다.
"이런 데에서 함부로 내리거나 그러시면 안 돼요! 도대체 어쩌다가 내리신 거예요?"
그때쯤 뒤에서 들려온 다급한 목소리. 알고 있다. 내가 멍청한 짓을 해버렸다.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내릴 생각을 하다니,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아찔하고도 위험한 순간이었다. 이런 와중에 시설관리차량을 타고 다급하게 달려온 고속도로 관리하시는 분들에게는 얼마나 황당하고 위험해 보였을까. 거기에다가 고속도로를 따라 정읍시내까지 걸어 내려가겠다고 말을 해버렸으니, 황당을 너머 어이조차 없어 보였겠지.
그래도 어떻게 도착은 하긴 했나 보다.
정읍이 단풍잎으로 유명했던가? 하고 생각해보니 가을만 되면 40대 50대 어머님 아버님들이 단체로 몰려가는 곳이 바로 여기였었다. 여행 안 좋아하고 등산 별로 안 좋아하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 내장산. 그 유명한 산의 고장이 바로 정읍이었었다.
사실 정읍에 가는 건 제주도에서 만난 효담누나를 만나기 위함이었었다. 예전부터 정읍에 오면 연락하라고 했던 누나였었지만, 어쩌다 보니 그 약속을 계속 지키지 못하다가 이제서야 지키게 되었다. 정읍에는 정확하게 몇 시쯤에 도착하게 될지 몰라 일단은 1시나 2시쯤으로 얘기는 해뒀었지만 실제 도착시간은 놀랍게도 그보다 훨씬 앞선 12시였었다. 거기에다가 약속 장소에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도 나.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나 때문에 누나도, 나도 둘 다 깜짝 놀라곤 했다.
그리고 정읍에서 내가 마주하게 된 것은....
그냥 탕수육도 아닌 볶음 탕수육!
마음 같아선 이 탕수육에 대한 예찬글을 몇 줄 남기고 싶었지만
새벽 1시 반에 그 글을 써내기엔 너무나도 배가 고파서 다음 포스팅 때 남기기로 한다.
2015.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