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아리 Mar 13. 2023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관두고 헤어지기로 했다

미안해 여기가 우리의 끝이야

사랑해 그래서 이 관계의

끝을 내려해

너와 애초부터 사귈 수 없는 여자였어 난.

너와의 미래를 더 이상 그릴 수 없어 난.

나는 한 없이 능력이 없어

너와 같이 살 능력도,

너와 연애할 능력도

앞으로 결혼할 능력도

나에겐 없어. 아무것도.

돈 벌 능력도 없어


나 같은 여자 더 이상 만나지 말고

다른 좋은 여자 찾아서 떠나

내 곁을 떠나

너의 소중한 시간과

너의 소중한 사랑을

더 이상 허비하지 말고

이제 보내 줄게

나를 떠나. 제발.


  백화점 라운지 카페 일을 관두려고 한다.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지금까지 일한 지 이주. 그러나 나는 그 일에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다.


  아름답고 꿈같았던 베트남 여행이 끝나고 어제 일요일, 출근을 했다. 그러나 나는 그 일에 적응을 못해 출근을 하기 전 늘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절대 그만두지 않을 거라고 다짐을 했었다. 디에타민이든, 주의력 결핍을 완화해 주는 ADHD 약이든 복용해서라도, 아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관두지 않을 거라고 마음을 다 잡았다. 하지만 어제, 어쩌면 그전까지 쌓이고 쌓인 게 폭발해서, 관두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앵돌아섰다.


  어제는 유난히 사람이 많이 몰린 날이었다. 나와 같이 입사해서 이 주만에 적응을 끝마친 스물두 살짜리 여자애의 무시를 받으며 여느 때처럼 일했다. 그러나 어제는 다른 날과 다른 날이었다. 아니다. 어제도 다른 날과 다른 날은 아니었다. 똑같았다. 똑같이 나는 일을 못했고 우왕좌왕했으며 바쁘게 몰아닥치는 주문을 받지 못해 포장이나 서브 쪽일을 하며 어린 동기 여자애에게 무시받고 늘 멘붕을 느끼며 일했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오픈 때 오래 일한 직원이 결근해 나 혼자 오픈 시간 일하게 됐을 때, 메인 데스크에서 일하는 백화점 정직원들(매니저라고 우리는 부른다)에게 요주의 인물로 찍혀 주문을 받으러 갈 때도 따라붙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매니저로 불리는 백화점 직원이 알던 것도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게 하는 거니 상처받지 말라고 말을 했는데 그 말에는 악의는 없었으나 경고가 있었다.

  게다가 어제는 새로 온 신입 여직원이 있었는데 나는 새로 온 여직원을 내 동기 여자애처럼 가르칠 수 있는 입장이 아니거니와 같은 포지션의 대우를 받았다. 즉 처음 와서 일을 못하는 여직원처럼 나도 그렇게 취급받았다. 어제는 선임 매니저 정직원에게 1인 1 메뉴 주문을 잘 못 받거나 테이블 자리 착오를 해서 혼나기도 했고 다른 때보다 더 엉망진창이었다.

9시간 일하면서, 수없이 들이닥치는 주문량에 나는 결국 기가 질려버렸다. 머신 마감을 하는 일도 한없이 복잡하기만 했다. 이주, 4일을 일했으나 내겐 도저히 앞으로도 잘 적응할 자신이 없었고 지금과 같은 끔찍한 상황이 계속 이어질 것에 마음이 끝도 없이 심란해졌다.


  나는 어제 그 모든 일련의 과정들을 겪고 깨달았다. 나는 어디 가서든 적응을 못할 인간이었다. 늘 그랬듯 나는 알바를 채 두 달도 적응을 못해 그만둔 적이 많았다. 이번에도 그 연장선이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다. 일을 못하는 나는 일을 진짜 못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나를 자를 리는 없겠으나 더는 견딜 수가 없어 나 스스로 그만두려고 한다. 이로서 나의 사회 진출은 또 한 번 좌절된 셈이며 나는 이번에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패한 것이다.


  꿈만 갔던 여행을 하며 나는 느낀 바가 많았다. 베트남 다낭과 호이안을 여행했는데 여행지의 황홀경들과 야경. 즐거움으로 가득한 순간들. 그 순간들을 지금은 엄마와 즐기지만 다음에는 남자친구와 이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했는데 나는 돈 벌 능력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여행에 돈이 많이 쓰이는 걸 보며 생각했다. 나는 부모의 도움 없이는 이런 행복한 순간을 영원히 즐기지 못할 인생이라고.


  행복한 순간을 영원히 즐기지 못할 인생.

나는 일이 끝나고 전철을 타는 내내 울었다. 라운지 일을 관둘 것이며 관두는 즉시, 지금의 남자친구와 헤어질 것이다. 돈을 한 푼도 못 벌 내 초라한 인생에 남자친구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 나 같은 여자와 사귀며 세월을 허비하게 하고 싶지 않다. 나 말고 더 능력 좋은 여자를 만나 같이 살고 결혼하며 행복하게 살게 해야 했다. 능력도 없는 나와 사귀는 남자친구가 불쌍해진다. 내 곁에 그를 두는 것은 내 이기심과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내줘야 한다. 나는 남자친구가 원하는 그 모든 것을 해줄 수 없는 초라하고 비굴한 여자임으로. 남자친구를 비참한 여자와 사귀는 불행한 남자로 만들 수는 없었다. 더 관계가 깊어지기 전에, 더 추억을 쌓기 전에 빨리 헤어져야 했다. 남자친구를 나라는 감옥에서 빨리 해방시켜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게 해야 했다.

  

  남자친구를 행복하게 해 주려는 마음에 왜 눈물이 이렇게 나는 걸까. 토요일 돌아와 3일간의 찬란했던 여행의 순간이 한순간에 잊히는 잔혹한 현실의 순간. 남자친구와의 사랑도 여행의 순간처럼 꿈같은 순간이었으나 현실의 냉혹함에 잊혀야 하는 순간이었다. 남자친구와도 헤어질 것이다. 간절히 헤어지고 싶지 않은 그였지만 나는 그와 이별할 것이다. 그와 나눴던 추억, 사랑이 야멸친 현실에 집어삼켜진다. 여행의 순간이 그랬던 것처럼.


  눈물이 계속 멈추지 않는다. 그가 내게 매일 했던 사랑 고백들, 그와 즐겼던 추억, 그에게 선물했던 내 마음. 이 모든 게 한순간에 사라질 거라는 생각이 눈물 나게 했다. 그와 헤어지는 순간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와 헤어질 수밖에 없는 내 비루한 현실이 참을 수 없이 슬프게 했다. 슬프다는 평이한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내 감정을 욱하게 했다. 경계선 지능을 첫 판정받았을 때만큼 치가 떨리도록 슬펐다.


  안녕. 내 행복, 내 사랑, 내 꿈. 나는 이 모든 걸 버리려 한다. 내게 사랑은 사치고 욕심이고 불가능이었다. 내 현실은 누군가를 사랑할 자격이 없었다. 행복할 자격도 없었다. 내게 사랑도 행복도 없을 것이다. 내게 남겨진 삶은 불행과 부적응과  부담, 부당함, 불운만이 남겨질 것이다. 나는 그 모든 B급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이딴 인생을 남자친구와 함께 할 수 없다.

남자친구는 나보다 더 능력 있는 여자를 만나 나와 그랬던 것처럼 추억을 쌓고 행복하게 사랑할 것이다. 나와의 모든 추억들은 다 잊고 버리고....


  나 같은 여자 더 이상 사랑하지 말고 훨훨 떠나.

슬픔은 다 내 몫으로 할게.

내 인생은 이미 틀렸으므로.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절망 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