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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아리 Apr 14. 2023

나의 부모(2)

아버지에 대해

  나의 아버지. 아버지를 떠올리면 괴롭다. 아버지와 나 사이의 뿌리 깊은 반목과 앙금은 지난한 세월 간 반복됐다. 그 간극은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다. 아버지는 이미 내게 싫은 존재이자 단절되고 산산조각 난 존재이다.


  아버지는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이며 자식들에게 광폭한 이였다. 아버지는 늘 자식들에게 화가 나 있었고 입에는 거친 욕설이 난무했다. 늘 남의 집 자식들과 자신의 자식들을 비교하며 자신의 자식들을 부끄러워했다. 언제나 퇴근하고 돌아오면 자식들의 안부를 묻기보다 지적과 비난부터 일삼았다. 아버지는 당신이 가장이라는 권위를 휘두르며 자식들을 휘어잡으려고 했으나 집안의 양육과 가정사에는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어머니에게 모든 가정사와 자녀 양육을 다 떠맡기고도 당신 자신의 목소리가 곧 법이어야 했다. 아버지는 밖에서는 한없이 선량했고 어머니는 설사 잃을까 전적으로 따르면서도 약자인 자식들 대하기는 함부로 했다. 세상에서 자기 자식들에게만 본성을 드러내는 아버지, 아버지는 좋은 아비도, 좋은 남자도 내겐 아니었다.


  아버지의 성정은 예민하고 신경질적이기가 이를 데가 없었다. 자신이 집안에 들어오면 그 일거수일투족을 참을 수 없어했고 작고 사소한 일이라도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신경질을 부렸다. 밤에 잠을 잘 때, 작은 불빛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했고 작은 소리에도 민감했다. 거실에서 자면서 시계 시침 소리 하나에도 못 견뎌해 어머니는 시계를 시침 소리가 없는 것으로 바꿔야 했다. 가족들 중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부엌의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도 참을 수 없어해 어머니로 하여금 보일러도 교체하게 했다. 그렇게 그 가시 같은 민감함으로 자식들을 들볶았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노상 욕을 퍼부었다. 조그마한 일도 자식들에게 시키고 작은 것에도 쉽게 불쾌해져서는 넘어가지 못했으니 자식들이 그 성미를 다 받아줄 리가 없었고 그럴 때마다 쌍욕과 입에 담을 수 없는 험악한 말을 늘어놓았다.    


  아버지와의 대화는 불통 그 자체였다. 뭔 말이라도 할라치면 욕부터 나가고 폭력을 행사하는 양반이었으며 자식의 말은 전부 말대꾸로 치부했다. 서른의 세월 동안 아버지의 대화 방식은 변하지 않았고 성정도 태도도 모두 그대로였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극렬히도 싫었다. 고백하자면 아버지 때문에 남자에 대한 혐오가 생기기도 했다.


  어머니에게도, 표면적으로는 어머니의 말에 다 따르는 척했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철저하게 아버지는 가부장적이었다. 어머니에게 가정사, 아이 양육을 다 떠맡기고 집안에서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밥상을 어머니가 다 차릴 때까지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명절 때 되면 하루 전날 음식을 하러 내려가는 어머니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자식들의 인생에 힘들 일이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아버지는 없었다. 내가 정신적으로 병이 생겼을 시절에도 오롯이 곁에 있었던 것은 어머니였고 자식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것도 어머니였다. 하지만 언제나 자식들에게 지독한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버지였다. 자신의 자식들을 단 한 번도 애정 어리게 본 적 없도 없으면서 자식을 보는 시선은 한없이 부정적이었다.


  아버지는 반면 자신의 형제들은 눈물겹게도 챙겼다. 돈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서는 돈 한 푼도 안 썼다. 어머니에게 생활비를 가져다주기는 했으나 자신의 카드도 제대로 못 쓰게 했고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비싼 음식을 시켜 먹으면 불 같이 화를 내며 구시렁거렸다. 가족을 위해 퇴근길 통닭 한번 안 사 오던 아버지였기에 그런 아버지가 가족들은 못내 서운하고 모질다 느껴졌다. 아버지에게 돈이란 가족을 깎아서라도 아껴야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자식들 평생 비관적으로 바라봤다. 경계선 지능인 딸과, 3년간 취업을 못하고 백수 노릇을 한 아들은 당신의 수치였다. 자신의 형제들의 잘난 자식들과 비교하며 자식들을 비난했다. 못 나도 내 자식이라 여기며 부족한 자식이지만 최고다 여기며 사랑으로 품는 어머니와는 달랐다. 아버지는 자식을 사랑으로 품을 줄 몰랐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버지에게 잘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땄을 때도, 복지관 카페에서 잘한다는 신임을 얻고 일을 할 때도 아버지는 그것을 축소하고 깎아내리기 바빴다. 자격증을 준비할 당시에는 내가 부산스럽게 군다고 훼방을 놓는가 하면 자격증을 딴 뒤에는 돈벌이가 안 된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숨기지 않았다. 내가 친척들에게 카페 일을 한다고 공공연히 얘기했을 때도, 돈도 못 버는 데 무슨 일을 한다고 했느냐고 되레 역정을 냈다. 친척들 보기 창피하다는 게 이유였다. 아버지는 내가 하는 일을 단 한순간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버지가 가장 수치스러워하고 가장 눈엣가시로 보는 자식인 나는 아버지와 가장 닮아있는 자식이었다. 가장 싫어하고 미워하는 존재인 아버지의 핏줄을 가장 강하게 받은 것 역시 비극적 이게도 나였다. 경계선 지능인 내 머리는 누구를 닮았는가 하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자신의 가게 영업일 외에는 모든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드라마를 봐도 서사를 이해하지 못했고 책 한 자를 읽을 줄 몰랐다. 어머니가 실컷 말해도 또다시 묻는 동문서답을 반복했다.  

  어머니에 비해 머리도 둔하고 운동신경도 없고 외모도 별 볼 일 없는 것 모두 나는 아버지를 빼다 박아있었다. 심지어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며 걱정 근심 많은 성격도 아버지를 닮았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를 닮았다는 사실에 치를 떨어했다. 그토록 자신이 싫어하는 인물을 닮는다는 건 견딜 수 없이 부정하고 싶은 사실이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쌍욕을 듣고 자라고 많이도 맞았기에, 어린 시절부터 나는 내 아비가 싫었다. 그런데 그런 내게 아버지와 유사한 면모가 보인다는 건 내겐 지워내고 싶은 태생이었다.


  내가 자존감이 많이 낮은 것도 심리적 기저를 따지고 보면 아버지 때문이다. 내가 태어나 유일하게 처음 본 남자이자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남자인 아버지와의 관계 때문에, 나는 남자친구에게 아무리 사랑을 받아도 내 정서 밑바닥의 사랑은 채워지지 않았다. 남자친구에게 기껏 사랑받고 와도 내 태생의 남자인 아버지에게는 독살스런 말을 들어야 했으니까. 심리적 용어로 아버지는 내게 원가족이었는데 원가족의 사랑이 결여되면 선천적으로 애정이 결핍되는 모양이라는 걸 나는 몸소 느끼고 있다. 여자아이인 딸에게 원류인 아버지의 사랑의 부족은 이렇게 내 사랑의 그릇에 영향을 미친다.


  나는 아버지와 같은 남자는 만나지 않겠다고 아주 어려서부터 다짐했다. 그 다짐은 지금도, 죽을 때까지도 유효하다.

 

  아버지와 나와의 갈등은 내가 죽어도 풀리지 않을 것이다. 뿌리 깊게 곯고 곯은 데다 썩어버린 관계는 회복할 수 없다. 아버지는 내가 서른으로 자라면서 그 숱한 세월 동안 당신의 성정을 고수했고 대화는 불통으로 일관했다. 자식들에게는 폭압적일 만큼 일방적이었다. 당신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고수해 온 낡고 그릇된 신념을 자식들에게 강요했고 그 신념을 고치지 않았다. 사람은 고쳐 쓰는 물건이 아니라는데 아버지는 고칠 수 없는 인간이었다.


   내 아버지의 나이는 이제 칠순을 바라본다. 그 나이대가 되면, 태도와 행동 양식은 평생을 지속시킨 본인의 본질이라 바뀔 가능성이 없다. 아버지는 나이가 들면서, 시야는 더 편협하고 왜소해질 것이고, 자신의 한평생의 인생관과 태도를 지키기 위해 더더욱 고집을 강화할 것이다. 어머니는 평생을 저리 살아오신 양반이니 내가 포기하라고 한다. 관계에서 포기란 단절을 의미한다. 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서로 평행선만 그린 채 유리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나와 당신은 이제 죽을 때까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서로를 이해 못 한 채 서로를 오해하고 불화는 풀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관계 회복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지만 둘 이상의 관계가 회복되려면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안된다. 아버지가 바뀌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을 극복이다. 그렇다고 내가 일방적으로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희생하고 싶지는 않다. 이미 시달릴 데로 시달렸으므로 아버지를 참아 줄 수 없다. 아무리 자식이라도 부모에게 시달리면서까지 부모를 참을 수는 없다. 특히 자식을 위해 애정 한번 보인 적 없는 부모라면 더더욱 그렇다.

  

부녀사이는 이미 회복할 기회를 놓쳤다.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조금만 다정했더라면 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아버지와 화해를 했더라면, 관계는 어떤 방향으로 흘렀을까. 나는 아버지를 사랑했을까. 아버지는 자식들을 사랑하는가.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한 말이 있다. 어머니가 자식과 아버지를 두고 집을 나가버릴 거라고 얘기했을 당시였다.

  나는 당신처럼 자식들한테 못 한다.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는 당신 자식들이 아니냐고 했는데 아버지가 한 말은 분명했다. 당신 나가면 난 자식들 키워. 

  평생을 자식들을 키워보지도 않은 아버지 입에서 야속하다 해야 할 말일까. 나 역시도 어머니처럼 아버지를 보살필 수가 없으니 마찬가지라 봐야 할까. 서로에 대한 애틋한 헌신이 없는 건 같으므로 부녀지간은 이미 무늬뿐이었다.


  우리 가족을 잇는 건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가족을 이어주는 어머니가 없다면 곤란해질 관계인 아버지와 나 사이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따질 수도 없다. 우리는 이미 이런 관계로 살아왔으므로. 아버지를 바꿀 수도 딸을 바꿀 수도 없다. 모두는 그저 살아가는 것이다.


  내 남은 생 동안, 아버지의 여생 동안, 서로의 관계는 정말 회복할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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