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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요리 갱생 프로젝트

여보! 냉면이 먹고 싶어요.

도서관에서 승진 공부를 하기 위해 책을 보고 있었다.

"여보. 냉면이 먹고 싶어요"

아이가 수두에 걸리는 바람에 학교에 가지도 못하고, 집안에만 있었는데 그런 아이를 돌보느라 아내도 집안에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틀이나 집에만 있어서 그런지 갑자기 냉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한 겨울에 냉면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우리 집안은 면을 좋아하는 집안인지라 냉면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먹고 싶으면 해 먹는 편이다. 물론 요리는 아내의 전담이므로, 나는 거의 해 준 요리를 먹기만 했다.


아이를 돌보느라 수고했을 아내를 생각하니, 문득 요리를 해주고 싶어졌다. 나는 요리를 잘하지 못하는 똥손이지만 어릴 적 분식점을 운영하셨던 어머니께 배운 면 요리 방법은 조금 알고 있어서 그런대로 할 줄 알았다. 아내에게 냉면을 만들어 주겠노라 약속하고 책을 갈무리하고, 도서관을 나왔다.


종종걸음으로 집 근처 마트에 들러 싱싱한 오이와 무쌈을 샀다. 오이는 냉면의 무미 건조함에 산뜻함을 심어주고, 무쌈은 자칫 심심한 국물에 짭조름한 소금 맛을 곁들어 주어 냉면의 풍미를 보다 풍성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오이와 무쌈은 냉면 요리에 있어서 필수다.


겨울이라 냉면 육수와 메밀면이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매대 안쪽 깊숙한 곳에 아직 남아 있었다. 냉면에 들어갈 계란이나 기타 재료들은 집에 있는 것을 활용하면 되므로 일단 고른 것들만 계산한 후에 집으로 향했다.


"아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엄마와 공부를 하던 아이가 반갑게 맞아줬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반가움이었다. 그것은 비단 아빠의 냉면이 기대되어 그런 것은 아닐 것이었다. 학교를 안 가는 대신 엄마와 공부를 하고 있었다가 아빠가 오니 맞이한다는 핑계로 조금이라도 더 쉬려는 아이의 노림수였을 것이다.


앞치마를 두르고 사 온 육수를 냉동고에 넣어 둔 후 두 팔을 걷어 부쳐 오이를 씻고 손질했다. 껍질을 살짝 남겨야 아삭한 맛이 더 있지만 아내의 입맛은 헐벗은 오이의 내용물을 더 선호하는지라 오이는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은 채 누드가 되어야만 했다.  


쌈무를 냉면 전문집에서 만들어 파는 것처럼 모양을 내 잘라내고, 냄비에 물을 적당량 부어 끓였다. 물이 끓는 동안 냉면 봉지를 뜯어 찬물에 가닥가닥 풀어주어야 하는데 이는 뭉텅이로 끓는 물에 바로 넣을 경우 면이 엉겨 붙어 골고루 익지 않음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두꺼운 손으로 두꺼운 면을 가닥가닥 찢어내고 물로 씻어 에 담가놓았다.

"보글 짝 보글 짝"

차가운 맹물이 금세 끓는점에 도달해 활화산처럼 냄비에서 보글거렸다.

메밀면을 끓는 물에 넣고 40초에서 1분간만 '휘이~휘이"저어 풀어준다. 너무 풀면 면이 불어버리면서 점도를 잃어 쫄깃함이 없어지므로 1분이 적당하다.


냄비를 통째로 들어 찬물에 급히 씻어준다. 마치 어릴 적 빨래터에서 빨래를 주무르던 숙희 어머니의 손빨래질처럼 메밀면을 때론 우악스럽게 때론 보드랍게 만져주어 쫄깃함을 불어넣어준다.


약 2분간의 헹굼을 끝내고, 미리 준비한 그릇에 냉면을 식구들의 양에 따라 배분해 넣어준다. 아이는 조금, 아내는 보통, 나는 특대로 알맞게 배분하고 난 후 미리 냉동고에 넣어놓았던 육수를 부어준다.


이제 요리의 마무리 단계로 준비해 놓았던 오이와 무쌈 그리고 집에 있는 들깨를 한 홉씩 꼬집어 냉면의 머리 위에 흑채를 뿌리듯 가볍게 뿌려주면 90% 완성이다. 나머지 10%는 냉면 요리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계란인데 마침 냉장고에 구운 계란이 있어 한 알을 꺼내 반 알은 아내의 그릇에 반 알은 내 그릇에 넣었다.


칼칼함을 좋아하는 아내는 다소 밋밋할 수 있는 냉면에 열무김치 몇 가닥을 올려놓았다. 오이의 푸른색과 무쌈의 흰색, 메밀면의 갈색 그리고 열무김치의 초록이 한 그릇에 옹기종기 모여 불균형 속의 균형을 이루었는지라 왠지 보기에 좋았다.


"시식의 시간" 아내와 아이는 첫 젓가락질에 맛있다고 치켜세워 주었다. 똥손 아빠의 요리가 무에 그리 맛있다고 그리도 맛있다고 해주는지 아이의 리액션에 기쁜 마음과 함께 행복감이 충만했다.

아내도 연신 맛있다며 요리를 칭찬해 주었다. 이런 것이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라. 돈도 없고, 명예도 높지 않은 부족한 아빠의 손 끝에서 나온 요리지만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이 있으니 내가 더 이상 무엇을 바라랴.

그저 이 온전한 행복이 오래가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다짐했다.

"여보! 내가 앞으로 매주 수요일 새로운 레시피로 당신과 아이에게 요리를 만들어 줄게요" 나의 프라미스!

이렇게 똥손 아빠의 요리갱생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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