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결국 내가 선택한 일이다
주변에서 어떻게 그 많은 일을 다 하냐고 묻는다면 내 머릿속을 이렇게 설명하고 싶다. 내 뇌에는 여러 개의 파티션이 쳐져 있다고. 1번 파티션에서는 회사 업무 관련 생각을 하고, 2번 파티션에서는 식재료 시세를 확인하며, 3번 파티션에서는 대학원 발제문을 띄워놓는 식이다. 우아한 동시 작업 같은 건 없다. 그저 상황에 맞춰 알트 탭을 미친 듯이 누르며 뇌를 버벅거리게 전환할 뿐이다. 이런 게 멀티태스킹일까?
한때 멀티태스킹이 각광받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그게 진짜 가능하던가. 뇌과학적으로 인간은 한 번에 하나만 생각할 수 있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멀티태스킹이란 그저 뇌의 전환 속도가 빠를 뿐이며 오히려 잦은 화면 전환은 일의 효율성을 뚝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N잡러들은 생각 전환의 고수가 아닐까. 나에게 원씽이나 몰입 같은 단어는 늘 선망의 대상이다.
나같이 평범하고 뇌 용량이 한정된 사람에게 진짜 필요한 역량은 혼자 다 해내는 초인적인 힘이 아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노력한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기보다는 성과를 내기 위한 최적의 효율을 찾아가는 과정이랄까.
N잡러인 내 일정표는 겉보기엔 완벽하게 통제된 시간표 같다. 소위 갓생의 표본. 하지만 실상은 아슬아슬한 젠가 게임에 가깝다. 블록 하나만 잘못 건드려도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순간들이 널려 있다. 그래서 그 틈바구니 사이사이에 충격을 흡수해 줄 느슨한 쿠션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멘탈이 바닥을 치는 순간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
평일 본업에서 중요한 프로젝트 마감에 치여 영혼까지 갈아 넣은 금요일 밤. 주말엔 샐러드 가게에 나가 쉴 틈 없이 채소를 다듬어야 하고 당장 일요일 저녁까지 제출해야 하는 대학원 과제까지 밀려 있는 숨 막히는 일정. 이렇게 활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진 상태일 때는 아주 작은 변수 하나에도 이성이 툭 끊어진다.
갑자기 가게 냉장고 온도가 미친 듯이 올라가 있다거나 배달 주문이 폭주하는데 하필 포장 용기가 똑떨어졌다거나 주말 파트타이머가 당일 아침에 잠수라도 타는 날이면 멘탈은 그야말로 와장창 깨져버린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고생을 사서 하나."
도마 앞에 주저앉아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턱끝까지 차오르지만 엉엉 울 시간조차 없다. 당장 눈앞에 닥친 수습이 먼저니까. 일단 멘탈의 파편들을 마음속 빗자루로 대충 쓸어 담고 다시 주어진 일들을 해나간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늘 나를 짓눌렀다.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직장 생활만 할 때는 작은 실수 하나가 내 커리어의 치명적인 오점처럼 느껴졌다. 보고서의 오타 하나에 자책하고 상사의 날 선 피드백 한마디에 세상이 무너진 듯 굴었다. 하지만 야생의 자영업 세계와 여러 직업을 오가며 배운 가장 큰 교훈은 다름 아닌 '맷집'이다.
시스템의 오류건 사람의 실수건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변수는 언제나 존재한다. 직업이 N개라는 건 곧 사고가 터질 지뢰밭도 N개라는 뜻이다. 중요한 건 절대 깨지지 않는 강철 멘탈을 갖는 게 아니다. 산산조각 난 멘탈을 대수롭지 않게 주워 담으며 뭐 어때 엎질러졌으면 다시 담으면 되지 라며 툴툴 털고 일어나는 회복 탄력성이다.
샐러드 주문이 잘못 나갔으면 정중히 사과하고 다시 만들어 보내면 된다. 재료가 떨어지면 근처 마트로 땀나게 달려가 사 오면 되고 오늘 하루 장사를 시원하게 망쳤으면 내일 다시 문을 열면 그만이다. 완벽주의를 버리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단단해졌다. 그래서 나는 이제 모든 일을 백 퍼센트 완벽하게 해내려 끙끙대지 않는다. 그저 목표한 성과를 내기 위해 어느 지점에서 최소한의 노력을 투입할지 퍼즐 조각을 맞추듯 요령껏 살아간다.
물론 여전히 숨이 턱턱 막히게 버거울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마법의 문장이 하나 있다.
"이것도 결국 내가 선택한 일이다."
누가 억지로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혹은 내가 하고 싶어서 선택했다는 명백한 사실. 나는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오늘 하루가 엉망진창이었어도 내일의 해는 다시 뜬다.
양파를 썰다 손을 살짝 베여도 밴드 하나 꾹 붙이고 다시 칼을 쥐는 것처럼. 우리의 삶은 그리고 나의 삶은 그렇게 조금 엉성하더라도 끈질기게 굴러가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