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대한 철학과 공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내 대답은 늘 한결같다.
"안 돌아가."
이유는 단순하다. 다시 공부하는 게 싫어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정답이 정해진 시험을 또 치르는 게 끔찍하게 싫다. 그렇다고 학창 시절이 우울했거나 겉돌았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교우 관계도 원만했고 학교생활도 즐겼으며 심지어 공부도 꽤 열심히 했다. 하지만 굳이 학교와 직장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직장이 더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나는 일하는 게 즐겁다.
요즘은 일한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나의 시간과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과정으로만 여기는 시선이 팽배하다. 물론 부조리한 현실도 있겠지만 일의 본질 자체를 오해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인간은 본디 일하는 존재다. 내가 쏟은 에너지가 세상에 유의미한 결과물로 나오고, 그 안에서 쓰임새를 확인하며 자아실현을 해나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믿는다. 이는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은 공동체에 유익을 준다는 '공헌감'에서 온다"고 말한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의 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일터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일 자체가 나빠서가 아니다. 그저 이 퍽퍽한 세상에서 먹고사는 모습이 너무 고단하고 여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일하는 게 이토록 좋은데 지긋지긋하다던 공부를 다시 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다. 내가 현장에서 하고 있는 일, 그리고 앞으로 더 기여하고 싶은 일의 본질을 더 깊이 알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과거 학생 시절의 공부가 그토록 싫었던 건 그것이 내가 온전히 선택한 앎이 아니라 사회가 정해준 해야만 하는 의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른이 훌쩍 넘어 대학원 입학 원서를 쓰며 결심한 이번 공부는 오직 내가 원해서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퇴근 후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밤의 캠퍼스로 향하는 발걸음은 솔직히 무겁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강의실 문을 열고 앉으면 몸은 천근만근이어도 머릿속은 탁 트이듯 리프레시되는 기분을 느낀다.
하루 종일 평일의 회사에서, 그리고 주말의 샐러드 가게에서 끊임없이 내 안의 에너지를 바깥으로 끄집어내어 소비(Output)하기만 했다면 대학원의 밤은 내 속을 다시 단단한 지식과 통찰로 채우는(Input) 시간이다.
나이도, 직업도 다르지만 비슷한 결의 고민을 안고 모인 좋은 사람들과 식견을 나누며 시야를 넓히는 일.
사장님의 아침이 땀 흘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치열한 발산의 시간이라면 대학원생의 밤은 텅 빈 나를 다시 밀도 있게 채워 넣는 조용하고 묵직한 충전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