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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 Jan 15. 2024

꽤 괜찮은 시간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연다

하루종일 갇혀있던 익숙한 냄새들이

고스란히 코끝으로 만져졌다

보조등이 다행히 어두움을 막아준다

손을 더듬어 스위치를 누른다

찰나의 순간 눈앞에 펼쳐진

텅 빈 공허를 마주한다.


 아무도 없네


하루종일 수많은 사람들과 말을 건네던

뒤섞인 언어의 조각들이 빠르게  스쳐간다

꾹 닫혀진 입. 무표정한 얼굴.

한숨을 잠시 크게 내쉰다


좋아하는 음악을 빠르게 골라서 크게 틀어 놓는다

집안 전체에 아름다운  소리들이 채워진다

입꼬리가 조금 올라간다

어느 순간 마음이 평온해진다.  

참 단순하고 또 단순한 나다


고프지 않은 배고픔에

주섬주섬 예쁜 그릇을 꺼낸다

곱게 나를 위한 한 상을 차려본다

고요한 식사 시간은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런 거지 뭐


적당한 서글픔과  

적당한 쓸쓸함이

치솟아 오를 때

혼자 중얼거리며 말한다


혼자도 아니고  

함께도 아닌  우리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두렵진 않다


마음의 조절기능 버튼을  작동하여

연약한 마음의 안정적인 지점을 맞춘다

태연하게  마음이 다시 한번 평온해진다


노트북을 꺼내든다

향이 좋은 커피를 내린다

다시 좋아하는  음악을  선곡한다

무겁게 내려앉아있던 공기들에  

미지근한 생기가 깃든다


좋다

그럼 된 거지


지금 이 순간  꽤 괜찮은 시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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