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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날 May 04. 2022

잘해 주는데, 왜 불편해할까요?

[며느리는 백년손님 PART 2] 시부모가 처음인 ‘시린이’를 위한 조언

며느리는 원하지 않는데 그래도 포기 안 하고 잘 해주시려는 시어머니가 많습니다. 그런데 정작 며느리는 불편합니다. 그 이유는 시어머니 기준에서 잘 해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결국 배려의 문제입니다. 배려가 없기 때문에 불편한 것입니다. ‘잘 해준다’는 표현도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 판단입니다.


언젠가 장모님께서 제 생일에 어떤 것을 받고 싶냐고 물어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평소에 눈여겨보던 특정 브랜드의 시계를 말씀드렸습니다. 가격은 10만 원대였습니다. 장모님께서 직접 사지는 못하셨지만, 아내를 통해 제가 원하는 시계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했고 고장이 날 때까지 주구장창 차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만약 100만 원짜리 시계를 해주셨다면 어땠을까요? 비싼 거라서 좋아했을까요? 장모님은 비싼 걸 선물로 주셨다고 스스로 만족하셨을까요? 장모님 생각은 몰라도 저는 100만 원짜리 시계를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 확실합니다. 그것은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무조건 비싼 걸 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시계와 같은 액세서리나 옷, 신발, 지갑, 스카프 등은 취향과 선호가 중요한 구매 포인트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결혼 예복으로 비싸게 맞춘 정장을 저는 딱 하루, 그것도 억지로 입었습니다. 아내가 원해서 산 모델이었고 제가 평소에 즐겨 입는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시부모는 더 잘 해줬는데 속상하다고 합니다.


“너는 도대체 왜 그러냐. 더 좋은 걸 해줘도 싫다 하고. 너도 참 별나다.”


며느리는 속으로 그건 자기가 원하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오해가 있을 수 있겠네요. 제 아내는 착한 사람입니다. 저희 부모님 역시 착하신 분들입니다. 다만, 이 사태를 겪고 나서 느낀 점은 저희 부모님도 의도와 다르게 며느리에게 상처를 주셨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잘 해준다고, 신경 써 준다고 했던 것들이 오히려 부담되고 상처가 된다는 것을 모르셨던 거죠. 아직도 저희 부모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아들아, 우리가 며느리에게 뭘 그렇게 잘못했다 그러니.”

“너희는 뭘 그렇게 복잡하게 따지니.”


물론 몰랐다고 해서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관계에서는 핑계를 댈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결과가 좋으면 그 사람의 ‘능력’이고 ‘덕분’이지만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사람 ‘탓’이 됩니다. 이렇듯 결과에 따라 자신의 의도는 전혀 다르게 평가되니까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관계의 실력을 키우고 좋은 결과를 내야 합니다. 나의 의도가 오해받지 않으려면 말이죠.


영화 <미 비포 유>에서 여주인공은 생일날 선물을 받습니다. 남자친구의 선물은 남자친구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하트모양 목걸이였습니다. 그리고 생계를 위해 병간호하고 있던 ‘남자환자’에게 받은 선물은 노랑에 검은 줄무늬 꿀벌 양말이었습니다. 여주인공은 남자친구의 선물에는 그저 그런 반응이었지만 꿀벌 무늬 양말을 보고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왜냐고요? 그 양말을 어렸을 때 너무 좋아했는데 이제는 작아져서 더는 신을 수 없게 돼서 속상했거든요. 어른이 된 자신이 신을 수 있을 만큼 큰 꿀벌 양말이라니 얼마나 기뻤을까요. 선물은 주는 사람이 원하는 게 아니라 받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줘야 합니다. 그래야 주는 기쁨만큼 받는 기쁨도 함께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가족끼리도 배려가 필요합니다. 상대가 목마르다고 했을 때 물을 마시라면서 씻지도 않은 두 손에 담아주려고 한다면? 좋은 관계는 배려라는 깨끗한 컵에 물을 담아서 주는 것과 같습니다. 물을 건네는 마음은 감사하지만,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그것은 스트레스입니다. 여기서 서로의 합의점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연 시어머니 자신은 지금 자신이 한 행동을 당신의 시어머니가 그대로 했다면 어땠을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이 받고 싶은 대접이 아니면 그것은 며느리도 마찬가지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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