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는 백년손님 - 프롤로그]
아내는 나의 부모님, 즉 시부모를 찾아뵙지 않습니다. 연락도 드리지 않습니다. 셀프 효도 13년 차라 이제는 그럭저럭 이런 관계에 익숙해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대학교에 입학한 아들에게 사귀는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연예 소식을 듣고는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시부모가 될 날이 곧 온다는 사실을 말이죠. 물론 아들이 결혼하기엔 아직 이른 나이지만 확신할 수도 없었습니다. 미리미리 준비하는 수밖에요. 과연 이런 상황에서 며느리가 들어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아니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며느리 입장에서 쓴 책과 인터넷에 올라온 고부갈등에 대한 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부간의 갈등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인간관계의 문제’라는 것을 말이죠. 어떤 며느리는 오히려 처가보다 시가가 더 편하다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냐고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사람에게 더 끌리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과 사람, 즉 관계의 문제이지 시월드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한 가정에서 고부갈등이 생겼다면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아들이 쥐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들이 없어도 시부모와 며느리 사이에 상호 인정과 존중이 있다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어느 한쪽이라도 그렇지 않다면 아들이 중간에서 교류를 제한해야 합니다. 결국 저희 집도 제가 셀프 효도를 시작한 후부터 불필요한 스트레스의 교환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아들 입장에서도 부모 눈치에 이 같은 결정을 하기까지 망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안 좋은 일을 모두 겪은 뒤에야 결론을 내렸으니까요. 그렇다면 고부갈등에 지친 며느리가 시댁에 안 가는 것보다 오히려 연장자인 시부모가 오지 말라고 하면 어떨까요. 시부모도 오히려 덜 서운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아들에게 바라는 건 무엇인가요, 행복 아닐까요? 며느리의 부모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둘째가 딸이거든요.
저희 집에서의 고부갈등은 저희 부모님의 말과 행동이 원인이 되었습니다. 저로서는 답답하지만, 결코 바꿀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행복이라는 단단한 모래성이 말라가면서 스멀스멀 무너지고 있었지만, 부모님은 전혀 이해하시거나 받아들이시지 못했습니다. 이해합니다. 평생을 그렇게 사셨으니까요. 그래서 두 분도 숱하게 싸우셨고, 서운할까 싶어 빼놓지 않고 자식들과도 싸우셨으니까요. 그런 분들이 남의 자식과 아무런 문제 없이 지낼 리 만무하죠. 저는 자식이니까, 내 부모니까 받아들이고 살 수 있다 해도 남의 자식인 며느리는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두 분이 예전보다 덜 싸우십니다. 아버지께서 예전보다는 어머니를 이해하기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상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다툼은 적어지게 마련이니까요.
이 글은 저희 부모님과 제 아내를 험담하려고 쓴 게 아닙니다. 읽으시는 분들의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이 모든 상황의 중심에는 제가 있습니다. 결국 누워서 침 뱉기입니다. 그럼에도 한여름 갑작스러운 소나기처럼 ‘고부갈등’이라는 비를 흠뻑 맞고 나니 번쩍 드는 생각들이 있어 많은 독자와 나누기로 했습니다. 의외로 좋은 시부모가 되는 가이드나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더군요. 인터넷 게시판과 방송, 유튜브에 나온 사례들은 단편적이었고 이야기의 주인공은 대부분 약자인 며느리 쪽이었습니다. 보통 이야기의 결말은 “이혼하려고요” 또는 “더 이상 시댁에 가지 않아요”로 정리되었습니다. 며느리의 고민에 남겨 놓은 댓글도 ‘시어머니가 이렇게 해 주시면 좋을 텐데, 그렇게 안 하시면 좋을 텐데’ 이렇게 며느리끼리 주고받는 얘기들이 많았고 시댁의 입장에서 먼저 해법을 제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 대부분의 시부모는 준비 없이 며느리를 맞이합니다. 집안을 정돈하는 준비가 아닌 마음의 준비 말이죠.
돌이켜보면 우리도 나름 튀는 세대였지만 다음 세대는 더하면 더합니다. 오히려 결혼과 관련해서는 비혼과 동거, 동성의 결혼, 딩크족 등 결혼 외 다양한 가족 관계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우리의 굳센 벽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어떤 흐름은 처음엔 기존 세대에게 거부당하지만 다음 세대의 사명처럼 결국 이루어지는 게 역사입니다. 이 기회에 우리 세대의 생각에 다음 세대를 가두지 않는 어른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저희는 고부갈등의 ‘피해자’였습니다. 그러다 어느새 시부모가 되어 일종의 권력을 가지게 될 입장에 서기 직전입니다. 권력을 가졌다고 ‘이때다’ 하고 똑같은 가해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2020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음악과 춤이 있었습니다. 바로 ‘범 내려온다’입니다. “전통을 너무 이상하게 만든 거 아니냐?”라는 평도 있지만, 대체로 “멋지다, 신선하다, 천재적이다” 이런 평이 다수였습니다. 이처럼 전통을 바꿔도 사람들이 좋다 하는데 악습을 바꾸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지금 세대는 문화적 감성이 다릅니다. 그에 맞게 변화하지 않으면 고리타분하고 구식이라고 관심조차 주지 않습니다. 결혼에 관심을 갖지 않는 세대를 탓하기 전에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부모가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합니다. 제 생각도 더 이상 갇힌 공간에 두지 않으려 합니다. 저는 커튼을 제치고 생각의 창문을 활짝 열어 보려 합니다. 신선한 공기와 따스한 햇살을 집안에 한껏 들여 새봄을 맞이하고자 합니다.
이 글은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시부모상에 대한 가이드가 없어서 썼습니다. 저희처럼 상처받는 부부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제 부모님께는 더 이상 권해도 소용없는 글일 수 있지만, 고부갈등의 을에서 다음 세대의 갑이 될 예비 시부모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 행복하게 꾸려갈 다음 세대에게 응원과 격려를 보내줄 수 있는 시부모가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