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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진 Mar 20. 2024

선을 노래하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영화가 여러 종류의 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영화에서 전면으로 내세우는 첫 번째 선은 국경선, 즉 국적이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에게 국적이란 단순한 배경 설정이 아니다. 문화, 제도, 언어 등이 결합된, 쉽게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을 듯 보이는 견고한 무언가이다.


감독은 시위대나 관광객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입을 빌려 국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보여준다. 조선족 시위 장면부터 유창한 중국어를 사용하는 윤영에게 중국인인지 물어보는 관광객과의 대화 장면 등, 정말 다양한 장면이 있다.


 그러나 영화는 이것이 얄팍한 분류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고 느꼈다. 재일교포인 군산의 민박집 사장은 일본풍 민박집을 운영하고 일본어와 한국어를 모두 사용한다. 송현의 할아버지가 한국으로 오지 않았다면, 송현도 조선족이라 불렸을 것이다. 윤영은 한국인이지만, 화교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중국어로 의사소통도 가능하다. 윤영네의 도우미는 조선족이지만, 한국의 대표 시인인 윤동주 시인의 먼 친척이다. 무엇 하나 딱 잘라 나눌 수 없는 국적성이다. 국적이 허망하게까지도 느껴지는 설정이 눈에 띈다.


 이에 대해 말하기 위한 영화의 서순 또한 눈에 띄었다. 초중반부까지는 군산에서의 이야기와 서울로 돌아온 윤영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갑자기 제목이 뜬 이후, 영화는 과거로 돌아간다. 그 이후에는 윤영과 송현이 다시 만나 군산으로 떠날 때까지의 일들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비교적 반감이 없는 재일교포를 등장시켜 국적을 통한 분류의 무의미를 말한 후, 조선족과 중국에 관한 담론을 풀어내기 위해 역순 전개를 선택한 보인다.


 물론 이러한 스토리 배치에는, 다소 의문스러워 보이는 초중반부에서의 주인공들의 행동 전말을 후반부에서 설명해 흥미를 올리기 위한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눈에 띈 두 번째 선은 사람 사이의 선, 혹은 예의이다. 누군가 무례한 행동을 하면 사람들은 흔히 선을 넘었다고 한다. 영화 초반을 볼 때, 주인공들이 이러한 선을 지키지 않는 행동을 불편할 정도로 많이 한다고 느꼈다. 송현은 아내의 사망 원인을 민박집 사장에게 묻는 등, 자꾸만 선을 넘는 질문이나 행동을 한다. 윤영은 담장을 넘어 무단침입을 하거나 다른 방에 함부로 들어가는 등 물리적 공간을 침범한다.


 비록 주인공들의 대다수 행동이 암묵적으로 사후 승낙을 받게 되긴 하나, 여전히 그들의 행동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선이 건드려질 때는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송현의 태도가 더욱 불쾌감을 키웠다. 영화 후반부에서 국적 담론이 두드러지기 전까지는 선을 넘는 행동들이 스토리의 주요 소재였기에 보면서 계속 괴로웠다.


 선을 넘는 행동은 주인공들에 한정되지 않는다. 조선족 도우미 앞에서 조선족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 윤영의 아버지도 그렇게 행동하는 인물들 중 한 명이다. 인간관계의 선은 손쉽게 오가는 인물들이 국적의 선은 쉽게 넘지 못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이러한 와중 민박집의 딸인 주은은 두 면 모두에서 다른 인물들과 구별된다. 자폐가 있는 주은은 타인과의 교류에 어려움을 겪는다. 재일교포면서 한국에서 거주 중이기에 국적성 면에서도 애매한 위치를 가진다. 그러한 주은이 윤영의 손에 이끌려 사진에 찍혀 있던 섬으로 가고, 타인에게 말을 걸게 되는 모습은 국경을 넘어선 인간 대 인간과의 교류를 떠올리게 한다.


+) 영화 보기 전에 술을 준비하라는 추천사의 말에 절절히 공감했다. 등장인물들이 술을 자꾸 마셔서 그런지, 영화 분위기 때문인지 술 생각이 났다. 비록 마시면서 보면 졸 거 같아서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으나, 재관람한다면 고량주랑 짬뽕을 가져다 두고 보고 싶다.


영화 전체에 배경음악이 거의 나오지 않는 게 인상 깊었다. 무단침입 장면 등 다소 기묘하게 느껴지는 씬도 몇 개 있었는데, 그런 씬에 음악 깔렸으면 공포영화 장면 몇 개가 뚝딱 나왔겠다.


해석하면서 보는 게 아니더라도 스토리 자체만으로 꽤 재밌었다. 윤영과 송현의 가망 없는 관계를 보는 게 재밌었다. 그렇지만 이걸 로맨스라고 말해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서울 분량이 꽤 돼서 놀랐다. 윤동주 문학관이나 연대 정문 근처, 안국역 등 아는 공간이 자주 나오거나 언급돼서 반가워하며 봤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한 줄 요약: 선과 선에 관한 이야기


별점: ★★★ (3/5)


재관람 의사: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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