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I Travel Jan 06. 2023

시베리아 횡단열차, 그리고 바이칼(1부)

새해에 횡단열차 타보기

러시아에 공부를 하러 와서 사실 제일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보는 것이었다. 한국 사람 중에도 이미 다녀온 사람들도 꽤 있고, 관련 책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무작정 떠나보는 것도 좋을 거라 생각을 했다. 러시아의 장거리 열차는 보통 플라츠캇, 쿠페, 룩스로 구분이 되는데 쉽게 3등석, 2등석, 1등석으로 봐도 무방하다. 3등석은 직육면체로 된 한 공간에 6명이 타게 된다. 장거리 열차이기에 모든 자리는 침대로 되어 있고 복도로 구분된 한쪽에는 아래위로 두 사람이 반대편에는 양쪽으로 두 명씩 네 명이 머무르게 된다. 테이블은 1층에만 있기에 만약 2층 침대를 쓰게 되었다면 뭔가를 먹을 땐 아래로 내려와 1층 침대를 쓰는 사람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 당연히 가격도 제일 싸고 항공편과 비교하면 절반 정도 되는 가격에 탈 수 있었다.

플라츠캇 열차칸, 매운맛 러시아를 느끼고 싶다면 강력 추천한다.

룩스는 같은 공간을 두 명이서 쓰는 열차인데 가격이 항공편보다 비싸서 러시아에서 머무는 동안 타본 적이 없다. 쿠페의 경우는 네 명이 사용하고 가격은 항공편과 비슷, 플라츠캇과 구별되는 점으로 복도와 머무는 공간 사이에 열고 닫을 수 문이 있어서 밖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음을 피할 수도 있고 생각보다 안락하게 머무를 수 있다. 필자와 아내 그리고 기숙사에서 만난 두 동생과 마음이 맞아 쿠페 한 칸을 네 명이서 같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래도 문이 있다지만 모르는 사람과 함께 이동하는 게 불편하기도 하고 소매치기가 많아 귀중품은 품에 꼭 껴안고 자야 한다는 말들을 들었기에 너무 다행이라 생각했다.

쿠페 열차칸, 일행 네 명을 모을 수 있다면 너무 좋다.

대략적인 일정은 모스크바를 발하여 이틀간 이동, 옴스크라는 도시에서 하루 쉬고, 이틀 더 이동하여 바이칼호수가 있는 이르쿠츠크까지 가는 것이었다. 이르쿠츠크에서 4일 정도 머물고 돌아올 땐 비행기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일정을 짜고 있는데, 필자와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타이완에서 온 친구가 자기도 같이 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예의상 가고 싶으면 같이 가고 싶어도 된다고 이야기는 했지만 이미 우리 일행은 여행 경비를 모아서 지불하기로 했고, 쿠페도 우리 네 명이 한 칸에 타기에 그 친구는 다른 칸에 타야 했고, 우리와 다른 여행 스타일 또는 취향이 있어서 섞이기 힘들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완강히 가겠다는 말에 차마 거절은 못하였고, 이에 다섯 명이서 12월 31일 모스크바를 출발, 첫 목적지인 "옴스크"로 향했다.


1층 침대 아래에는 짐을 보관하였고 먹을 것들을 미리 빼두었다. 각 열차칸에는 화장실이 있고 뜨거운 물이 나오는 곳이 있어서 컵라면이나 감자퓨레(뜨거운 물을 넣고 조금 기다리면 마치 삶은 감자 으깬 것처럼 되는 파우더 형식의 인스턴트 식품), 차나 커피 등을 먹고 마실 수 있었다. 한국에선 보기 힘든 도시락이라는 컵라면이 러시아에선 매우 인기가 있는 제품 중에 하나인데 (맛의 종류도 한국에서 보다 많고 현지화가 잘 되어 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용기가 네모나게 생겨서 기차여행 중 먹어도 잘 엎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기차 안 공간은 여유가 있는 편이었지만 침대는 조금 작은 편이다. 필자도 한국에서는 꽤나 키가 큰 편에 속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평균적으로 큰 러시아인들에게 침대 길이는 많이 아쉬운 편이다. 침대 길이는 약 180cm 정도 되어 보이는데 베개도 놓고 하면 조금 길이가 더 줄어들고 다리를 쭉 펴기에 살짝 길이가 모자라서 자세를 살짝 대각선으로 하여 (폭이 좁기에 이도 만만치 않다) 다리를 펴거나 옆으로 돌아누워 잘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러시아 친구에게 왜 이렇게 침대 길이가 짧은지 물어보니 러시아에선 죽은 사람만 사지를 펴고 잔다는 이상한 말을 하기에 무시했다. 


기차가 모스크바를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캄캄한 어둠 속을 뚫고 달리는 우리는 새해를 맞았다. 새해라고 해야 특별한 것도 휴대폰은 기차가 가는 중에는 인터넷이 안 되는 지역이 많이 없어 특별히 할 것도 없었다. 창문 밖을 바라본다 한들 어두운 밤하늘과 가끔씩 어둠에 보이는 작은 마을들 뿐이었다.


낮에는 기차 안에서 심심한 시간들을 화투를 치면서 보냈다. 기차는 중간중간 여러 역에 정차를 하면서 사람들을 내리고 또 태우는데 대부분의 역들은 작은 역들이고 가끔 큰 도시에서는 30분 이상 정차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기차가 정차하면 작은 마을이라도 있다는 뜻이라 핸드폰에 인터넷이 되기도 했고, 작은 역에서는 도시락을 파는 할머니들이 있는데 가격도 나쁘지 않고 고기와 감자 정도의 구성이지만 기차 안에서 먹기에는 훌륭했다. 그리고 승객칸 외에도 식당칸이 있었는데 직접 가서 먹을 걸 사 올 수도 있었고 주기적으로 승무원이 트레이를 끌고 먹을거리를 팔기도 한다. 이용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한화로 약 2000원 정도면 샤워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칸도 따로 있었다. 


이름은 기억 안나는 작은 마을에 정차했을 때 열차가 연료를 보충하는 건지 꽤 오랜 시간 정차하기에 나가서 슈퍼마켓을 찾아 필요한 것들을 더 사 오고 한겨울 미친척하고 옷을 벗고 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예카테린부르크라는 큰 도시에 또다시 긴 시간 정차하였을 땐 KFC치킨을 사 와서 열차가 출발하고 먹었는데 아주 기가 막혔다. 아마 사러 가는 길에 주위를 잘 살피지 않아 일행이 사고를 당할 뻔했는데 아마 다행히 불상사 없이 치킨을 잘 배달해온 것도 한몫했으리라.

눈 오는 날 시원하게 한 장

이틀이란 시간이 생각보다 금방 지나갔고, 옴스크라는 생각보다 큰 도시(러시아의 5번째 큰 도시, 그래봐야 별거 없었지만)에 잠깐 멈춰서 시내도 구경하고 식당에서 제대로 된 식사도 하고 숙소에서 따뜻한 물로 씻고 다시 이틀을 더 달려하는 기차에 올랐다. 두 번째 기차이동에선 더욱 시간이 빨리 갔고 1월 5일 새벽, 바이칼 호수 근처의 도시, 이르쿠츠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러시아의 이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