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경, 시베리와 호수의 만남
중간에 옴스크에 머무른 것 포함 5일이 걸려 이르쿠츠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모스크바와 이르쿠츠크 간의 시차는 5시간인데 대략 하루 이동 할 때마다 (하루는 쉬었지만) 시간대가 한 시간씩 빨라졌다. 아직도 그리운 한국과는 아주 먼 거리에 있었지만 시간대는 고작 한 시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시베리아라는 말에서부터 바로 한기가 올라오는 듯하지만 이르쿠츠크의 날씨는 약 영하 5에서 10도로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이르쿠츠크는 숙박업소를 비롯하여 주민들이 거주하는 생활지역과 시내 또는 시가지로 볼 수 있는 곳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워낙 작은 동네라 택시를 타면 5분 안에 도착하는 거리들이었다. 필자의 일행이 숙소를 잡은 곳은 생활지역이기에 여러 식당들과 공원들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다행히 숙소 주인이 이른 체크인을 허락해주어서 아늑한 건물에서 기차 여행으로부터 쌓인 피로를 풀 수 있었다. 부킹닷컴에서 예약했지만 마치 에어비엔비에서 예약한 것처럼 가정집을 렌트해준 형식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 껏 낸 것과 집에 고양이가 돌아가니는게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따뜻한 물은 온수통에서 나오고 그 온수통을 데우는데 시간이 걸려서 누군가 샤워를 한 뒤에는 조금 기다렸다가 가야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쓰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었다. 낮잠도 거하게 자고 나니 차로 약 30분 정도 이동해야 하는 바이칼 호수에 가기보단 이르쿠츠크 시내 구경을 나가기로 했다. 당시가 1월 5일이라 아직 새해의 즐거움이 가시지 않았고, 새해부터 러시아의 크리스마스인 1월 7일까지는 거의 공식적인 휴일이기에 시내에서는 조금 더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얼음으로 만든 "2015" 숫자 조각상과 큰 늑대상 등 여러 조형물들이 시내의 광장에 있었고 주위로 여러 식당들과 놀거리들이 있어서 겨울 축제 분위기를 한껏 즐기고 왔다. 숙소가 있는 생활지역 근처에선 큰 공원을 발견했는데, 얼음으로 만든 것들이 많았다. 얼음성, 얼음미로, 얼음 미끄럼틀 등등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간 듯 어른이들 다섯이 그렇게 얼음의 도시, 이르쿠츠크에서 하루를 보냈다.
이르쿠츠크에서 마르슈르트카라는 러시아식 버스를 타고 약 30-40분 정도 이동을 하면 리스트비얀카라는 바이칼 호수 근처 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아쉽게도 아직 호수가 얼지 않아서 꽝꽝 언 호수 위에서 드리프트(차도 안 빌렸지만)를 해볼 기회는 없었지만 그래도 꽤나 할 것들이 많았다.
1. 바이칼 호수 박물관
일단 바이칼 호수 박물관이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담수를 품고 있는 바이칼 호수의 역사와 바이칼 호수에서 사는 생물들, 오직 바이칼 호수에만 사는 생물들 등 여러 가지를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크기가 크지는 않았지만 바이칼 호수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들을 알 수 있어서 본격적인 구경을 나가기 전에 들르면 좋을 곳으로 생각된다.
2. 리스트비얀카 마을 구경
바이칼 호수변을 따라서 리스트비얀카 마을을 걸어보는 것도 좋으리라. 호수변 뒤쪽으로 조그만 마을들이 형성되어 있는데, 상인들이 물고기 훈제를 팔고 있었다. 바이칼에서만 서식한다는 오물이라는 연어과의 물고기인데 가격도 비싸지 않았고 무엇보다 맛이 괜찮았다. 제대로 된 식기가 없어서 봉지로 받은 훈제물고기를 봉지채로 뜯거나 아쉬울 땐 장갑이라도 썼는데 장갑에서 비린내가 쉽게 가시진 않았다. 바이칼 호수를 간다면 식당에서 주문해서 먹는 것도 좋지만 거리에서 사 먹어보는 것도 아주 진귀한 경험이 되리라 생각한다.
3. 개썰매
시베리아 하면 넓은 대지를 달리는 허스키와 개썰매를 떠올리기 쉽다. 숙소 주인에게서 바이칼 호수 주변에서 개썰매를 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찾아 나섰다. 막상 도착하고 나니 통통하고 털이 북슬북슬할 거라 생각했던 개들이 실상은 털도 그렇게 많지 않았고 무엇보다 아주 말라 있었다. 대략 8마리 정도 되는 개들이 썰매 하나를 끄는데, 손님과 운전을 해줄 견부(?)까지 두 사람을 태운다. 물론 속도가 일정하지도 빠르지도 않았지만 시베리아에서 개썰매를 타봤다는 것만큼 좋은 이야기 소재도 없을 듯하다.
4. 스키장
겨울 바이칼 호수에서 꼭 즐겨야 할 것 중에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 스키장이다. 슬로프에 길이는 그렇게 길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스키장이 산 중에 있어서 산맥과 산능선을 구경할 수 있지만 바이칼 호수에서 스키/스노보드를 탄다면 호수를 마주 보면서 즐길 수가 있다. 설령 넘어진다 하더라도 한민족의 뿌리라는 넓은 바이칼 호수 한 번 더 바라보면 되니 그 풍경은 아직까지도 필자의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는 듯하다.
횡단열차를 타고 온 바이칼 호수의 여정은 아주 빠르게 지나갔다. 돌아갈 때는 비행기를 타고 갔는데 6시간 정도 걸렸지만 시차가 5시간이라 출발시간과 거의 비슷한 시간에 도착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하루가 약 30시간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러시아의 겨울방학은 약 3주 정도로 2주 정도를 여행에서 시간을 보냈으니 남은 시간은 다음 학기를 준비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