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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후 Jun 16. 2023

자발적 몰입의 두 얼굴

스스로 빠져야 능률이 오른다

자발적 몰입의 두 얼굴



고3이 말이 고팠나 보다. 글쓰기 방으로 예고 없이 들어온다. 반갑게 맞이하는 수행 과제를 먼저 완수한다. 허그 hug를 하는 것이 최근에 우리가 정한 새로운 과제이다.


고3은 신체 접촉이 말보다 잘 스며드는 듯싶다. 한 성깔 하는 녀석이 수제비처럼 노곤노곤하게 풀어져서 온순해진다. 갑작스러운 방문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일 터 눈 맞춤을 하며 기다린다.


고3의 주제는 능동적 몰입이었다. 몰입이라면 요즘 제대로 하는 중이라고 어깨 펴고 말할 수 있다. 스스로와 약속한 게 있다. 매일 글쓰기이다. 오늘까지 그 약속은 깨지지 않았다. 초장에는 한 줄 쓰려고 뇌 주름을 그러모아 쥐어 짜낸 적도 있다. 머릿속이 글 제재를 얻기 위해 늘 소란스럽다. 스스로 빠진 것이기에 재미가 붙기 시작한다. 게다가 심지에 불을 붙이는 이들이 생겨난다.


등단한 작가는 카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되어 있다. 글을 올리고, 댓글을 통해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즐겁게 소통한다. 공통분모인 문학으로 만난 사람들이라서 결이 다른 감성을 표현한 글을 보고 있으면 경이롭다. 예상치 못하는 시상이 갑자기 탄산처럼 톡 쏘기도 한다. 신선하고 갈 길이 멀다. 더 분발해야 한다고 자신을 채찍질한다.


작가마다 다른 색깔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 작가의 시가 떠오른다. 제목부터 생소하고 내용도 생경하다. 이 시상은 뭘까. 색다른 세계는 신비롭게 다가와 뇌리를 강타한다. 알고 싶다는 욕망이 들끓는다. 보고 또 보면 처음과는 다른 장막을 걷어낸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또, 한 사람이 스쳐 간다. 이름마저 참 수려한 댓글이 예사롭지 않다. 이 사람은 정신적 수양을 깊게 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그를 알고 싶다.


사전에 물었더니 제품을 보여준다. CEO인 건가. 밑으로 스크롤 압박을 한참을 가한 후에야 그의 책이 보인다. 빠르게 주문했다. 그의 문학 세계를 느끼고 싶다. 그의 시는 여러 가지 상념이 섞인 혼합물을 머리 위로 끼얹는다. 정신이 번쩍 나지만 어떤 시는 어렵기만 하다. 무신론자인 나에게 불교의 색채가 강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나이가 듦에 따라 종교는 멀리 있지 않음을 체감한다. 아직은 종교에 매이고 싶지 않기에 거리를 두는 나이다.


매일 글쓰기를 실천한 이후, 점점 손이 신이 나는 모양이다. 그동안 얼마나 쓰고 싶었는지 몰라도 산재한 가슴속 재료들을 들쑤시느라 연신 바쁘기만 하다. 처음보다 글쓰기가 힘들지 않다. 제2의 피부 같은 핸드폰은 바빠져서 즐거운 울상이다. 둘째 손가락인 검지만 고생시킨다고 다른 손가락들이 미안해한다.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어 그저 수고한다고 응원과 격려를 얹는다.


고3에게 당당하게 견해를 피력한다. 요즘 글쓰기에 수동이 아닌 능동적 몰입을 하는 중이라고. 꿈을 위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고. 그는 요즘 다양한 시도로 수학을 꿰뚫기 위해서 자발적 몰입을 하는 중이라고 알려준다. 능동적 몰입은 망아지경에 이른다. 시간이 아깝고, 다른 것은 일체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는다. 저도 모르는 사이 부쩍 늘게 되는 것을 실감한다.


얼마 전 한 작가의 댓글이 과거에서 노래를 소환했다. 검지를 압박해 짧은 시간에 생각보다 긴 글을 후다닥 완성할 수 있었다. 부작용이 있었다. 운동할 시간이 줄어들었다. 건강은 무조건 영 순위이다. 대안으로 떠오른 것은 일부러 차를 방치하고 무조건 걷기다. 그대로 실천하려 똑똑한 워치를 장착했다.


합병증이 겹친다. 배가 고픈 줄을 모른다. 먹지 않아도 공백을 느끼지 못한다. 뱃속이 열받아서 밥도 안 주고 부려 먹는다는 항의가 빗발친다. 그제야 끼니를 건너뛰었음을 인지한다. 보다 못한 동생이 촌철살인 한다. 언니는 빠지면 폭 빠져서 문제라고 한다. 한 달만 글 쓸 거냐고 한꺼번에 모든 에너지를 쏟지 말고 길게 가라고 한다. 그녀뿐이 아니다. 고3도 같은 소리를 한다. 둘이 입이라도 맞췄나 뒷조사가 필요하다.


녀석이 가끔은 식겁할 깊이 있는 대화를 할 때면 놀랍기만 하다. 반항할 때도 있었지만 성장하는 모습이 한편 대견하다. 스스로가 대화를 차단했던 시간이 자신도 힘들었다는 소회를 끝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이 든든하다.


고3이 꺼낸 화두인 능동적 몰입, 아끼는 두 사람이 일깨운 에너지 분배로 페이스를 조절하려고 한다. 창작에 불을 붙여 갈 때까지 한번 가 보자 독백을 해본다. 그게 어디든 고지를 향해 뛰어보자. 불끈 주먹이 힘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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