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에 책을 올리며
<연분홍>
11월의 산길에는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앉아 사그락거리는 낙엽을 따스히 감싸고 있었다. 발밑에서 부서지는 낙엽 소리는 해마다 같아도 그 소리를 밟는 발걸음의 무게는 해가 거듭될수록 무거워진다. 연로하신 엄마는 김장 준비로 한 달 전부터 무리했을 몸을 잠시 쉬게 하고서 우리들만 조용히 산소로 핸들을 돌렸다.
산소로 향하는 읍내를 지나며 낯선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허허벌판이던 자리에 편의점이 들어서고 오래된 슈퍼마켓은 간판도 화려한 체인 카페로 바뀌었다. 풍경은 기억보다 빨리 낯설어진다. 우리가 기억하는 속도보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더 빠른 탓일까. 한 해 한 해가 우리의 익숙함은 조금씩 걷어내고 그 자리에 낯섦을 들어앉힌다. 나는 차창밖을 바라보며 변하지 않는 것은 산의 능선뿐이라는 생각이 설핏 들었다.
먼저 할머니와 할아버지 산소 앞에 섰다. 트렁크에서 꺼낸 돗자리를 펼치고 그 위에 과일과 포를 차례로 놓았다. 청주 한 잔을 따라 올리는데 투명한 술이 잔을 채우는 소리가 고요한 산중에 유독 또렷했다. 이번에 출간한 책 한 권을 조용히 할머니 묘비 옆에 올렸다. 할머니가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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