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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둥 May 11. 2022

꽃길만 걸으렴


by ㅅㅇㅇ (5세, 2022)

꽃길만 걸으렴

이 말은 쓸쓸하고도 간절한 바람일 뿐

나와 세상 모든 어른들은 이것이 네 인생에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안다

어쩌면 사과를 지고 나르는 그림의 개미처럼

네가 앞으로 짊어질 삶의 무게는 너의 몸 전체를 짓이길 만큼 숨 막힐 정도로 버거울 수도 있을 거야

그렇지만 네가 짊어진 것이 개미의 사과와 같다면

그것을 지고 가는 동안 어여쁜 분홍빛의 설렘과 새콤달콤한 맛의 희망을 종종 떠올릴 수 있겠지

네가 내내 밟아가야 하는 땅은

밋밋한 회색빛 시멘트 바닥이 아닌 돌도 밟히고 뿌리도 밟히고 또 어떨 땐 촉촉하고도 보드라운 갈색 흙바닥이라면

네 발은 힘은 들어도 숨은 쉴 수 있고 걸어가는 길이 온통 지루하고 무료하지만은 않을 거야



네가 걷다가 만나는 장애물은 늘 있을 거고

하나를 넘으면 또 하나가 나타나 어지럽겠지만

가끔은 따뜻하고 훈훈한 분홍꽃을 넘으면 살랑살랑 서늘한 하늘꽃이 기다리고 있다면

다시 넘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할 거야


네 머리부터 등줄기 다리 그리고 발끝까지 온몸을 내리쬐는 것이

태워버릴 듯이 이글거리는 크고 붉은 해가 아니라 둥근달같이 살포시 떠있는 작은 노란 해라면

내내 너를 쬔다 해도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닐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빽빽하게 꽉꽉 들어찬 인생이 아니라

이처럼 여백이 많아 숨 돌릴 공간이 있다면

위를 올려도 보고 사방을 둘러도 볼 여유가 있을 거야


만년 꽃길은 아니더라도 이 모든 것으로 인해

네가 온통 무채색으로 덮어쓴 검은 개미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풀도 닮고 땅도 닮고 꽃도 닮고 하늘도 닮은 따뜻하고도 은은한 색깔 색깔의 인생이 되어

네 작은 얼굴에 옅은 미소를 드리울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참 감사하겠다


by ㅇㄷㅎ (41세,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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