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까뮈 - 페스트
“오늘날 페스트가 여러분에게 개입하게 된 것은 반성할 시기가 왔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사람들은 조금도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악한 사람들이 떠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주라는 커다란 곳간 속에서 무자비한 재화는 지푸라기와 낟알을 가리기 위해 인류라는 밀을 타작할 것입니다. 낟알보다는 지푸라기가 더 많은 것이며, 선택된 자보다는 부름을 받는 자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불행은 신이 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이 세상은 악과 결부되어 있었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이 세상은 성스러운 자비 위에서 안식하고 있었습니다. 회개하는 것으로 충분했고, 모든 것은 허용되었습니다. 그리고 회개라면 모든 사람이 문제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때가 오면 사람들은 틀림없이 회개를 해야겠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는, 가장 쉬운 길이 되는대로 살아가는 것이요, 남은 것은 신의 자비로 해결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것이 오래 지속될 수는 없었습니다. 참으로 오랫동안 이 도시의 사람들 위에 그 연민의 낯을 보여주시던 하느님도 기다림에 지치고 그 영원의 기대에서 실망 하사, 마침내 외면을 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광명을 잃고 우리는 이제 오랫동안 페스트의 암흑 속에 빠지고야 말았습니다!”
그의 주장의 결론은 여전히 자기는 우리의 도시와 무관한 사람이며, 따라서 자기의 경우는 특별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대체로 그 신문기자가 만나본 사람들은 쾌히 그 점을 인정해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의 경우가 몇몇 사람들의 처지와 같은 성질의 것이며, 그가 상상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특수한 사정은 못 된다는 견해를 피력하기 일쑤였다. 거기에 대해서 랑베르는 그것이 자기주장의 근본을 조금도 변화시킬 수는 없다고 대답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인정해야 할 것은 단호히 인정하고, 결국에는 쓸데없는 공포감을 쫓아버려 적당한 대책을 강구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면 페스트는 멎을 것이다. 왜냐하면 페스트라고 생각되지 않았던 탓이요, 또는 그렇게 생각되었더라도 대책이 없을 테니 말이다. 만약 페스트가 멎는다면―그것은 가장 가능성 있는 일이다―모든 일은 잘될 것이다. 반대의 경우에는 페스트가 어떤 것인지를, 그리고 그것에 먼저 대비하고 그것과 싸워서 이기는 방법이 있는지 없는지를 사람들은 알게 될 것이다.
“당신 같은 사람이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떠세요? 그러나 세상의 질서는 죽음의 법칙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이상 아마 신으로서는 사람들이 자기를 믿어주지 않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자기를, 그렇게 침묵하고 있는 하늘을 우러러볼 것 없이 있는 힘을 다해서 죽음과 싸워주기를 더 바랄지도 모릅니다.”
“네.” 타루가 끄덕거렸다.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말하는 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인 겁니다. 그뿐이죠.”
리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늘 그렇죠. 나도 그걸 알아요. 그러나 그것이 싸움을 멈추어야 할 이유는 못 됩니다.”
“물론 이유는 못 되겠지요. 그러나 그렇다면 이 페스트가 선생님에게는 어떠한 의미인지 상상이 갑니다.”
“알아요.” 리외가 말했다. “끊임없는 패배지요.”
어린애는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고, 그 주변의 환자들까지 흥분했다. 아까부터 줄곧 방의 저 끝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던 그 환자는 앓는 소리의 리듬이 빨라지더니 마침내는 그도 역시 정말 비명을 지르게 되었고, 한편 다른 환자들도 점점 큰 소리로 신음하기 시작했다. 밀물 같은 흐느낌이 방 안으로 흘러들어 파늘루의 기도 소리를 뒤덮어버리고 말았으며, 리외는 침대 모서리에 매달린 채 피로와 혐오에 취한 듯이 두 눈을 감았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타루가 곁에 와 있었다.
“나는 가봐야겠어요” 하고 리외가 말했다.
“더 참을 수 없어요.”
그러나 갑자기 딴 환자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때 의사는 어린애의 비명이 약해진 것을 알아차렸다. 그 비명은 점점 더 약해지더니 급기야는 멎어버렸다. 그러더니 그의 주위에서 비탄의 소리들이 나지막하게, 이제 막 끝난 그 싸움의 머나먼 메아리와도 같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싸움은 끝난 것이었으니 말이다. 카스텔은 침대 저쪽으로 가더니,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고 말했다. 어린애는 입을 벌린 채로, 그러나 말없이 흐트러진 이불의 움푹 들어간 곳에서 몸을 웅크리고 얼굴에는 눈물 자국을 남긴 채로 누워 있었다.…그러나 리외는 이미 방에서 나가고 있었는데, 그 걸음걸이가 이상하게 빠르고, 파늘루 곁을 스쳐 지나갈 때 파늘루가 그를 붙잡으려고 팔을 내밀었을 정도로 심상치 않은 태도였다.
“여보세요, 선생님” 하고 그가 말했다.
리외는 여전히 골이 난 태도로 몸을 돌리더니 격렬한 어조로 내뱉었다.
“허, 그 애는, 적어도 아무 죄가 없습니다. 당신도 그것은 알고 계실 거예요!”
그때 나는 그야말로 내가 온 힘과 정신을 기울여 페스트와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던 그 오랜 세월 동안 내가 페스트에 걸리지 않은 적은 결코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내가 간접적으로 몇천 명 인간의 죽음에 동의했다는 것, 숙명적으로 그러한 죽음을 가져오게 한 그런 행위나 원칙들을 선(善)이라고 인정함으로써 그러한 죽음을 야기하기조차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딴 사람들은 그런 것으로 속을 썩이는 것 같지 않았고, 적어도 자발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결코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목구멍이 착 달라붙는 것처럼 괴로웠어요. 나는 그들과 같이 있으면서도 외로웠어요. 내가 나의 불안감을 표시할라치면 그들은 나에게 지금이 어떤 시기인가 잘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고, 흔히 감동적인 이유들을 내세워 아무리 해도 소화되지 않는 것을 나로 하여금 삼켜버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저 거물급의 페스트 환자들, 붉은 제복을 입은 사람들 역시 나름대로의 그럴듯한 이유가 있고, 만약 내가 불가항력이라는 이유로 군소 페스트 환자들이 주장하는 요구를 용인한다면 거물급들의 요구도 물리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붉은 제복이 옳음을 인정하는 태도는 곧 그들에게 사형선고를 일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한 번만 양보한다면 멈출 필요가 없다고요.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그렇습니다, 리외, 아시다시피 나는 인생 만사를 알고 있지요)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늘 스스로를 살피고 있어야지, 자칫 방심하다간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주고 맙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그 밖의 것, 즉 건강, 완전함,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훌륭한 사람, 즉 거의 누구에게도 병독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의 긴장을 풀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결코 긴장을 풀지 않기 위해선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그렇다, 인간이 이른바 영웅이라는 것의 전례와 본보기를 세워 놓고 싶어 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이 이야기 속에 한 사람 그런 존재가 꼭 필요하다면, 필자는 바로 이 미미하고 보잘것없는 영웅, 몸에 지닌 것이라고는 다소의 선량한 마음과 약간의 고운 마음씨와 표면적으로는 우스꽝스러운 이상밖에 없는 그 영웅을 여기에 내놓는 바이다. 이로써 진리는 그 진리 본연의 자리를, 둘에 둘을 보태면 넷이라는 합계를, 그리고 영웅주의는 제2위라는 본래의 자기 위치, 즉 행복에 대한 강한 욕구 바로 다음에 놓이되 결코 그 앞에 놓일 수 없는 그의 위치를 찾게 될 것이다. 또 그렇게 하면 이 기록도 자기의 성격, 즉 선량한 감정, 말하자면 두드러지게 악하지도 않고 또 흥행물처럼 야비하게 선정적이지도 않은 감정을 가지고 이루어진 기록으로서의 성격을 갖게 될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한때는 경험했던 저 얼빠진 세계, 사람 하나 죽이는 일쯤은 파리 한 마리의 죽음 정도로 여겼던 그 무지한 세계, 저 뚜렷이 규정받은 야만성, 온갖 미치광이 짓, 현재의 일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해 가졌던 무시무시한 자유의 감금 상태, 제풀에 죽어 넘어지지 않는 모든 자를 아연실색하게 하던 저 죽음의 냄새 등을 침착하게 부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매일매일 어떤 사람들은 화장터의 아궁이에 켜켜이 쌓여서 이글거리는 연기가 되어서 증발해버리고, 한편 나머지 사람들은 무력함과 공포의 쇠사슬에 묶여 자기 차례를 기다리던 그 어리벙벙한 민중이었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었다.
잠시 후에 노인이 말했다. “언제나 제일 좋은 사람들이 가버리는군요. 그게 인생이죠. 하지만 그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알고 있었죠.”…“괜히 그러죠. 그분은 그저 무의미한 말은 하지 않으셨어요. 어쨌든 나는 그분이 좋았어요. 그런데 이제 이 모양이 되었죠. 딴 사람들은 ‘페스트입니다. 페스트를 이겨냈습니다’ 하고 난리를 치죠. 좀더 봐주다간 훈장이라도 달라고 할 판이죠. 그러나 페스트가 대체 뭡니까? 인생이에요. 그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