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의 Data Analyst 도전기
2020년 6월, 코로나가 변화시킨 많은 것들에 다들 어찌어찌 적응해갈 때쯤 나는 대학교 막학기 수업을 비대면으로 수강하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자소서를 쓰고 면접을 준비하는 시간도 함께 보냈다. 문득 첫 직장으로 스타트업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학술동아리에서 경험했던 IT 프로젝트를 현업 조직에서 전문적으로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필요한 일만 하기보다는, 누구나 좋은 결과를 위한 의견을 자유롭게 내고 열정적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큰 조직의 안정성과 체계를 경험한 지인들의 퇴사를 보면서 더욱 선입견이 생겼던 것 같다. (큰 조직이라고 다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퇴사 이후에 깨달았다)
마지막 수업을 모두 수료한 뒤 7월부터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우선 스타트업만의 장점인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IT 플랫폼 회사의 개발코드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점도 신기했다. 의사결정이 빠르고, 조직에 필요한 Skill을 바로 적용해볼 수 있으며, 같이 입사한 동기들과 합정 맛집 도장깨기 하는 시간도 회사생활 만족도를 많이 올려줬다. (좋은 사람들을 만난 덕분에 지금까지도 같이 재밌는 인생을 보내고 있다. 다양한 분야 -은행, 증권, 게임, VC, 광고, 개발- 의 실무를 귀동냥하는 시간도 재미있다. 멋진 사람들. 게임 기획자가 이리저리 흘러가다 보면 sql을 쓰는 마케터가 되기도 한다�)
회사는 비교적 유니크한 사업 모델과 약간의 호재 덕분에 회원수와 매출이 급격하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주변 가까이에서도 종종 회사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곤 했다. 매주 주간회의에서 투자 소식이나 정부사업에 선정되었다는 이슈를 듣다 보면 외부 포지션이 많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 체감되었다. 이렇게 빠르게 크는 조직 안에 있다 보면 나의 일이 비즈니스 성장에 기여한다는 느낌을 매 순간 받는다. 그렇게 신나서 일하다 보면 결국.. 과로사인 거다
1년 6개월, 500일이 넘는 시간을 보낸 뒤 결국은 퇴사하게 되었다. 크게 보면 업무와 비즈니스 두 이유로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다.
1. 업무 범위와 포지션
입사 초기에는 마케팅팀에 있었다. 당시 퍼포먼스 마케팅은 대행 에이전시가 있었고, 나는 에이전시와 커뮤니케이션하면서 daily, weekly, monthly 실적을 관리했다. 영상과 GDN 배너 콘텐츠를 기획하기도 했다. 내부 마케팅을 위한 프로모션 기획, 유저 분석, 성과 분석도 담당하고 PR을 위한 지표 기준을 만들고 자료도 만들었다. 이 경험으로 목표 성과를 설정하는 법, 콘텐츠에 메시지의 핵심을 담는 법, 플랫폼 유저를 분석하는 법 등을 배울 수 있었다.
잘하고자 하는 노력 덕분인지 CPO에게서 (약간의 연봉 인상과 함께) 새로운 제안이 왔고, 나의 업무는 프로덕트 분석과 비즈니스 분석을 포괄하게 되었다. Active 유저 페이지 도달률을 파악하고, A/B test가 필요하다면 진행하고, 타 부서의 데이터 추출을 담당하고, 지표 대시보드를 만들고, 비즈니스 모델 고도화를 위한 외부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렇게 압축.zip으로 쓰기만 해도 나의 업무 범위에는 울타리가 없었고 그러다 보니 팀의 의사결정자를 모두 거칠 수 없어서 결국은 CEO와 긴밀하게 일하게 되었다.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에서 나는 점점 비즈니스 기여도가 높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다양한 자료를 만들면서 가장 좋은 리포트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자료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자료 제작의 자유도가 굉장히 높았는데, 요청 부서 & 업무 성격에 따라 어떤 형식이 가장 효과적일지 고민하며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SQL, Google Sheet, Tableau만 있으면 웬만한 업무는 충분히 커버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분명 창업을 하거나 팀의 리더가 되는 데 있어서는 훌륭한 경험이라고 생각하지만, 회사를 차리기 위한 수업을 들으러 온 것은 아니었다. 나는 generalist의 성향을 가지면서 특별한 하나를 뾰족하게 잘하는 specialist가 되어, 할 수 있는 일을 작은 범위에서부터 잘 해내고 싶었다. 이렇게 업무를 하다가는 경험만 많은 사람이 될 것 같다고 어느 순간 느꼈다.
그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깊게 고민하게 되었다. 지금처럼 비즈니스 성장에 즉각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일이어야 했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서비스에 대한 관심과 경험으로 그 문제를 풀 수 있고, 실패를 반복하면서 팀 전체가 더 나은 과정을 위해 함께 나아갈 수 있는 환경에 있고 싶었다. 그래서 데이터 분석가가 되고자 했고, 그동안의 경험과도 연관이 있어 더욱 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수학을 전공해서인지 일에 있어서는 논리적인 것이 가장 좋다)
2. 비즈니스 NEXT에 대한 고민
비즈니스의 성격이 유니크했기 때문에 시장 내 경쟁자 수가 많지 않았고 후발주자의 진입장벽이 높은 산업군이었다. 그렇기에 더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경쟁자가 쉽게 진입할 수 있었다면 이 회사가 첫 번째일 수 있었는지 의문이 생겼다. 회사가 목표하는 성과는 뚜렷했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한 OMTM이나 성장지표가 명확하지 않았다. 또, 이를 찾기 위한 임원진의 의지가 상당히 낮았다. 미국 법인 설립이나 투자 등 해결해야 할 경영 이슈가 이미 포화였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두 가지 이유로 이 회사에서의 나의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았고, 내가 원하는 포지션은 데이터 분석가라는 것이 명확해진 순간 퇴사!를 외치게 되었다. 물론 담당 업무가 많아서 그마저도 쉽지는 않았다. 하하
그래도 매 순간 열심히 일한 덕분에 떠나는 순간까지도 많은 분들에게 따스한 애정과 응원을 받았고 나도 후회 없이 떠날 수 있었다. 앞으로 어디에서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임하자는 의지가 생겼다.
바로 제주 여행을 떠났다. 날씨 뽑기는 실패했지만 서울보다는 따뜻한 남쪽에서 연말을 보내고 본가에서 또 일주일을 보냈다. 일에 지친 몸과 마음을 돌본다는 명목으로 잔뜩 쉬었다.
2022년이 시작되고 두 달간은 <데이터리안> 커뮤니티에 참여했다. 다양한 분야의 데이터 분석가 현직자에게서 실무를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매주 마지막 주 화요일에 열리는 웨비나에 참여하면서 나는 어떤 분석가가 되어야 하는지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 데이터리안에서 만난 사람들을 모아 <LEAN ANALYTICS> 스터디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 사이 데이터 분석가 면접을 봤다. 나는 면접 마지막 질문을 항상 ‘데이터 분석가가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역량은 무엇이고, 어떤 사람이 좋은 분석가라고 생각하는지’ 에 대한 질문을 드리곤 했는데, 매번 진심으로 고민하고 답변 주시는 모습에 감동받곤 했다. (조금 당찬 질문인가 싶었지만 다행히 모두 합격 소식을 받았다) 고민 끝에 지금은 네이버 웹툰의 Data Insight 팀에서 Data Analyst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다.
데이터의 중요성은 많은 산업군에서 대두되고 있지만 여전히 모든 회사에 필요한 직군은 아니다. 일부 회사에서는 분석가의 R&R에 대해 잘 정의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리고 데이터 분석가의 실무환경이 구성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데이터가 필요하다. (시작부터 꽤 힘든 과정이다) 분석을 위한 데이터를 정확히 수집해야 하는데, 예상하지 못한 많은 이유로 정합성에 이슈가 발생하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데이터가 잘 쌓여있고 분석가의 역할도 명확한 환경에 속하는 것도 중요하다. 앞으로는 내가 데이터 분석가를 준비하며 느낀 점, 공부한 것들, 외부 아티클을 정리한 인사이트를 하나씩 정리해서 올려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