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다큐=최정철 칼럼니스트] 서양인들의 열렬한 와인 사랑은 유사 이래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서양인들은 와인 즐기는 방법의 하나로 와인 축제를 열고 있다. 와인에 정서와 역사, 풍속이 더해지는 축제로 꾸미니 그 시대 그 사회를 단면으로 보여주는 문화의 꽃이라 할 만하다.
그런 와인 축제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있다. 와인 문화와는 거리 멀었던 동양도 이제는 서양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와인 사랑을 자랑하면서, 홍콩과 호주 등에서 멋진 와인 축제를 만들어 두각을 보여주고 있다.
하와이 카팔루아 와인 푸드축제 장면. 사진출처=kapaluawineandfoodfestival.com
모든 와인 축제 성격은 결국 마케팅일 수밖에 없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들 축제는 별의별 전략 전술을 구사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미국인이 가장 존중하는 푸드 축제로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하와이의 <카팔루아 와인 푸드 축제>는 매력적인 축제라 할 수 있다.
다른 와인 축제들은 일반인 누구든 참여하게 해서 북적거리는 분위기로 치른다면, 카팔루아 와인 푸드 축제는 일반인들은 철저히 배제한다. 고르고 골라 딱 3천5백 명만 초청해서 시음 시식하도록 하는 형태를 고집한다.
국제 주류 판매업자, 하와이 방문 관광객 중 선발된 일부 사람, 국내외 유명 리조트와 호텔 종사원, 국내외 유명 레스토랑 대표, 정부 관련 부처 관계자, 국영 미디어 경영자 등이 초청 대상이다. 이들 중 민간인은 향후 고객 개발에의 슈퍼 전파자가 되고, 정부 관계자는 정부 차원의 홍보를 보장하는 든든한 채널이 된다.
하와이 카팔루아 와인 푸드축제는 와인과 궁합이 맞는 음식도 엄선한다. 사진출처=kapaluawineandfoodfestival.com
자기가 선택되었다는 것에서 유발된 자긍심은 곧 ‘평생 충성 고객’으로 직결한다. 이런 ‘초슨 피플(chosen people)’ 전술에 덧붙여, 최고 요리사들이 저마다 잘 보관한 와인과 그에 맞는 최적 궁합의 음식을 내놓음으로써 참여자 모두의 심금을 울리는 것이다.
여기에 와인 전문가 육성 프로그램, 아름다운 카팔루아 일대 자연의 홍보 프로그램까지 세심하게 가동한다. 와인 축제라고 해서 그저 먹고 마시는 소모적 잔치판이 아닌, 분명한 철학을 갖춘 품격 높은 축제다.
대한민국 지역 전통주. 사진출처=나무위키
술은 마시면 취하고 술에 취하면 남녀불문 주사(酒邪)가 나오기 마련이다. 중원과 한반도 사람들은 고대부터 향음주례(鄕飮酒禮)라는 유교식 음주 예법을 널리 시행했다. 매년 음력 10월이 되면 향촌의 선비와 유생들이 향교나 서원에 모여 학덕 연륜 높은 원로를 주빈으로 모셔놓은 채 술 마시며 연희를 즐기는 것인데, 이 예식의 목적은 이렇다.
어른 존중, 노인 봉양, 효제 행실 돈독히 하기 등을 내세우지만 실질적인 목적은 곧 주사 잡기다. 처음 술을 대하는 젊은이들이 동기끼리 술자리 갖는 것으로 술을 배우는 것과 품성 좋은 어른에게 음주 행실을 배우는 것, 그 결과는 천양지차다.
만만한 친구들끼리 술 마시다 보면 지나친 기분을 다스리지 못해 끝내 주사를 드러내게 되니 장차의 못난 꼴로 자리 잡히고, 어른 앞에서 얌전하게 앉아 좋은 얘기 들어가며 술을 배우면 인생 공부와 함께 취기에 흐트러지지 않는 습성을 체득하게 됨으로써 장차의 예쁜 품행을 갖게 된다.
대한민국 우리술 대축제 장면. 사진출처=TV 화면 갈무리
술에 취해 저지르는 범죄는 어느 시대이든 심각한 사회문제다. 음주 운전, 시비 끝의 싸움, 성폭행 등등. 최근에는 유명 트로트 가수의 음주 운전 사고가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기도 하다.
음주 범죄행각은 본인도 망하게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폐해도 보통 큰 것 아니다. 그런 만큼 과거의 향음주례 정신은 과연 중요하고도 의미 깊은 것이기에 정신문화 삭막해지는 오늘날, 지금쯤 그 옛 미덕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으리라 보는 것이다.
그런 취지로 훌륭한 술 축제 하나 개발해 내어 널리 전파함으로써 장차 하나의 풍속으로 자리잡히게 한다면 우리의 정신문화도 향기롭게 될 뿐 아니라 술로 일어나는 악행들 또한 그만큼 줄어들 것 아니겠나 싶다.
충북영동와인축제 장면. 사진출처=대한민국와인축제.com
한국에는 해외 유명 와인 축제와 같은 술 축제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다. 대략 20년 전부터 훌륭한 와인을 생산해 내기 시작한 경북 영천과 충북 영동은 와인 축제도 시행하고 있다. 물론 여타 지역축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특산물 판매전’ 성격에 머물지만 앞으로 조율만 잘하면 괜찮은 술 축제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와인 축제만 술 축제랴? 전국에 퍼져있는 다양한 지역 고유 술들 즐비하다. 개막식에 높은 관리들 줄 서서 축사나 길게 하는 전시관에서의 <대한민국 우리 술 대축제>는 축제가 아닌 정부 기관 주최의 술 홍보 전시행사에 불과하니, 거듭나는 길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고대 백제에는 교천(郊天)이라는 축제가 있었다. 해마다 음력 4월이 되면 나라 경계인 하늘과 땅끝을 향해 제사를 올린 후 함께 술을 마시는 것으로 일심동체를 다진 것이 교천이었다. 교천이 갖는 제의적 의미를 대한민국에 붙이고, 프로그램과 운영 방식은 카팔루아 와인 푸드 축제의 품위에 옛 향음주례의 정신을 조화시킨다면 세계적인 술 축제, 이 땅에도 하나 생겨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