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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쓴이 Feb 22. 2023

아이고 좋은 시절 다 갔다

아니 좋은 시절 또 왔다


6세 아들은 요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물론 6세가 말을 너무 잘 들으면 그것은 또 그것대로 큰 문제이지만.


‘6세가 이 정도면 훌륭하다’ 생각하며 살지만 부모에 ‘등극’ 한다는 것이 곧 내 인격의 신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닌지라 이따금씩 육아로부터 느끼는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배출해 내는 것이 쉽지가 않다.


작년에 둘째가 태어난 이후 아들은 동생을 살뜰하게 챙기며 예뻐하는 멋진 오빠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본인도 모르게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할 것이다.


내게 찾아온 소중한 아이들을 귀한 손님으로 생각하며 극진하게 대한다고 자부하지만 늘 그렇듯 대우의 정도는 받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이니 나의 최선이 아들에게 최고로 닿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조금 나으려나'


'둘째가 조금 더 크면 괜찮으려나'


마르고 무의미한 기대를 통해 힘든 현재로부터의 도피를 시도하곤 한다.




문득 첫째가 태어난 후 직장에서 선배 교사들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이 선생님 아들 태어나니까 기분이 어때요?'


'아직 얼떨떨한 마음이지만 그저 좋습니다.'


'아이고 그렇지. 막 태어났을 때가 좋을 때야. 지금은 그저 이쁘지. 그때가 제일 좋을 때야.'


-


'이 선생님 아이가 몇 개월이죠?'


‘이제 100일 지났습니다. 뒤집기도 하고 웃기도 하니까 정말 예쁘네요.'


'아이고 벌써 뒤집었구나! 이제 좋은 시절 다 갔네~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


'이 선생님 아이 태어난 지 얼마나 됐어요?'


'이제 9개월 되어갑니다. 잡고 일어나는 것을 보니 걷고 싶은가 봐요.'


'아이고 고놈 성격도 급하네~ 걷기 시작하면 이제 좋은 시절 다 끝나~ 따라다니느라 정신 하나도 없어~'


-


'이 선생님 아들이 이제 몇 살이죠?'


'이제 한국 나이로 네 살 되네요.'


'아이고 평생 효도는 세 살까지 다 한다는 말 알죠? 앞으로 큰일 났구먼~ 이제 미운 네 살 시작이네!'


-


그렇게 옹알이를 하고, 뒤집고, 배밀이를 하고, 앉고, 기어 다니고, 잡고 서고, 걸음마를 하고, 걷고, 말을 하고, 이앓이를 하고.. 아이가 점차 성장함에 따라 나는 수많은 좋은 시절들을 잃었다.


내게 '좋은 시절 다 갔네~'라고 말씀하시던 분들이 나를 미워하거나 내 가족에게 저주를 퍼붓고자 작정한 분들이 결코 아니었음을 나는 안다.


내 어머니 또래의 선배 교사들, 이미 나만한 자녀를 키워낸 분들이 내게 던지는 일종의 변화구 위로였음을 느낀다.




가만히 앉아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생각해보니 나는 끝없는 좋은 시절을 겪고 있었다.


'좋은 시절이 다 갔다'라는 말이 지속적으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선행하는 좋은 시절들이 있어야 만한다.


이 말장난 같은 생각을 혼자 곱씹고 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원 후 옷을 벗고 샤워를 하기까지 내내 짜증을 부리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무엇인가를 스스로 해내는 것에 대한 뿌듯함과 스스로 해내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충돌하며 일어난 파열음이 마음을 뚫고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아 이번 좋은 시절의 미션은 우리 아들이 불편한 감정의 정체를 이해하도록 돕는 것인가 보다.'


아이를 다독이고 진정시킨 후 꼭 안아주었다.


아이를 재운 뒤 소파에 풀썩 앉으며 약간의 한숨과 함께 외쳤다.


'하이고~ 좋은 시절 또~ 왔다!'


아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보통 좋은 시절 다 갔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아요?'


'그렇죠. 근데 내가 찬찬히 생각해 보니까. 어른들이 항상 그때가 좋을 때야~ 좋은 시절 다 갔다~ 그러잖아. 이걸 종합해 보면 우리는 매 순간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는 거야. 우리한테 또 다른 좋은 시절이 찾아온거죠.'


아내는 웃으며 그거 말 된다며 좋은 생각이라 수긍했다.


어쩌면 저 짜증도 자아가 영글어가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이제 혀 끝에 '좋은 시절이 왔음'을 얹을 수 있다.

나의 사랑, 나의 좋은 날, 언제 이리도 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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