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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쓴이 Mar 22. 2024

학부모 총회를 대하는 생활안전부장의 자세

결국 우리는 하나의 팀이니까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면 교사도, 학부모도 긴장하는 날이 다가온다.

학교 교육활동의 모토를 알리고 공개 수업을 진행하며 담임과의 상담이 이루어지는 날, 바로 학부모 총회이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는 주기적으로 아동의 하루와 교육활동에 대한 피드백이 이루어지지만 초등학교 입학 이후에는 상대적으로 그러한 정기적인 소통이 줄어들고 학생들 역시 학교의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전달하는 귀여움을 상실하기 때문에 학부모 입장에서는 궁금증과 답답함이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학부모 총회에는 꽤 많은 학부모들이 학교를 방문하여 자녀들이 수업 듣는 모습도 보고 담임에게 자녀의 1년을 잘 부탁하곤 한다.


올해 나는 생활안전부장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담임은 맡지 않았다.


그래서 학부모 총회 날 부담이 조금 덜하려나 싶었는데..


아뿔싸, 생활안전부장은 학부모 대상 필수 교육을 진행하고 변경된 학교폭력법 및 교권 보호에 대한 내용을 강당에서 연수하는 중책을 담당하여야 한다.


연수를 준비하기 위해서 PPT를 만들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담임과 소통하고 본인 자녀의 교실이 궁금한 분들에게 강당에서 집합 교육을 길게 한다고 하여 큰 의미가 있을까?'


내가 학부모라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필수 교육에 대한 내용을 최대한 요약하여 전달하고 나머지 시간을 학교에 대한 신뢰 구축의 시간으로 삼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좋아하면 판단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학교를 믿고 좋아하는 분위기, 적어도 학교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학부모들에게 줄 수 있다면 앞으로의 1년이 부드러운 상호 존중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연수 내용에 대한 대략적인 방향성을 관리자와 상의하고 동의를 받은 후 자료를 준비하였다.


학부모 총회 당일,


강당에 놓인 많은 의자가 꽤 채워질 정도로 많은 분들이 방문하셨다.


교장 선생님의 인사 말씀, 교무부장님의 교육과정 설명 등이 끝나고 내가 안내를 진행할 차례가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OO중학교 생활안전부장을 맡고 있는 OOO입니다. 바쁘신 와중에 본교 교육활동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참여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친절한 미소로 단상을 바라보는 시선들을 느끼며 말을 이어갔다.


"이 자리에 계신 학부모님들께서 사실 가장 원하시는 것은 우리 아이들의 생활공간을 살펴보고, 담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필수적인 연수를 간단하게 진행한 후 생활안전부장으로서 부탁드리고 싶은 이야기를 전해드리고 최대한 빨리 마치고자 합니다."


일찍 끝낸다는 말은 학생이든 교사든 학부모든 누구나 좋아할 이야기이다. 간략하게 의무 교육사항을 전달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여기 계신 학부모님들 중에서는 생활안전부라는 부서 명칭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는 분도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나 우리 학부모님들 세대에서는 '학생부'라는 명칭이 조금 더 익숙하지 않을까 싶네요. '학생부'를 떠올리면 사실 긍정적이고 따뜻한 느낌보다는 이런 것들이 먼저 생각나지 않으십니까?“


'학주', '호랑이 선생님' 등의 단어를 차례로 화면에 띄운 후 마침내 '미친개'라는 단어를 본 학부모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네, 양심에 손을 얹고 말씀드리자면 저도 학창 시절 학생부 선생님들을 이렇게 불렀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요. 이제는 학생부가 아니라 생활안전부입니다. 부서의 이름이 생활안전부로 바뀌었다는 것은 지향하는 바 역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PPT를 넘겨 생활안전부의 의미를 풀이한 페이지를 띄웠다.


"저희 생활안전부는 학생들의 즐겁고 행복한 학교생활과 안전하고 따뜻한 배움터를 만드는 부서입니다. 요즘에는 어린아이들에게 '너 자꾸 말을 안 들으면 경찰한테 혼난다!'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네게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위험한 상황일 때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해!'라고 가르친다고 하지요. 초두 효과, 즉 경찰에 대한 첫인상을 긍정적이고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규정하여야 아이들이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착안한 교육 방침 같습니다. 저도 첫 수업에 들어가면 학생들에게 어렵고 불편한 점이 있다면 스스로 해결하고자 끙끙거리지 말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들을 찾아오라고, 그것은 일러바치는 것도 아니고 어리광도 아니며 스스로를 구제하기 위한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일러주곤 합니다. 가정에서도 꼭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힘들면 담임 선생님이나 생활안전부 선생님을 찾아가라고 지도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이야기를 이어가며 솔직한 속내도 털어놓았다.


사춘기의 정의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생활안전부는 학교에서 모든 교사들이 기피하는 업무입니다. 그 이유는 다양하지만 흔히 우리가 언론을 통해서 들을 수 있는 여러 시끄러운 이야기들 때문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러한 부서의 부장을 맡게 되었을 때 솔직히 암담하기는 했습니다. '북한이 남침을 못하는 이유가 중2병이 무서워서'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학생들의 사춘기는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시기 같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기왕 제 일이 되었으면 잘하는 것이 중요하니 어떻게 하면 잘 해낼 수 있을지 고민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사춘기'가 그렇게 무섭다는데 그렇다면 '사춘기'란 무엇이지? 2차 성징이 발현하고 정서적으로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대체 왜 사춘기라고 명명했는지부터 규명하고 싶었습니다."


사춘기는 '생각 사, 봄 춘, 기간 기'를 쓴다. 이 어지러운 시기를 생각이 봄처럼 피어나는 시기라고 이름 붙인 우리네 선배 세대들의 작명 센스에 혀를 내둘렀다.


"네, 사춘기는 놀랍게도 생각 사에 봄 춘, 기간 기를 씁니다. 생각이 봄처럼 피어나는 시기, 와.. 이름만 들으면 참 너무도 아름답지 않습니까? 우리 어른들에게 봄이 주는 심상은 따스함과 안온함, 화려함과 포근함 등 긍정적인 이미지가 많습니다. 그런데요. 제가 아이들에게 봄! 하면 뭐가 떠오르니?라고 물어보면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먼저 나오더라고요."


차례로 황사, 미세먼지, 꽃가루 극혐, 알레르기, 꽃샘추위 등의 단어가 화면에 나오자 많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 어른들이 봄이 지닌 속성에 집중한다면 아이들은 봄의 현상에 집중하는, 요즘 말마따나 MBTI가 T에 수렴하는 답을 보여주더라고요. 그런데 또 생각해 보니 틀린 말은 없습니다. 어쩌면 봄은 겨울의 무거움을 깨뜨리며 나오는 탄생의 계절이기에 그 자체로 엄청나게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계절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봄 같은 생각이 만개하며 우리 아이들이 생각할 수도 없는 말,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그것은 어쩌면 봄의 역동성과 참 닮지 않았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한 팀

"그래서 또 고민해 봤습니다. 어떻게 하면 교육의 3 주체 중 2자리를 맡고 있는 학부모, 교사가 잘 어우러져서 이러한 질풍노도의 아이들을 잘 도울 수 있을까?"


나름대로 고민 끝에 정의한 학교와 가정의 상관관계를 화면에 띄웠다.


'학교: 꽃씨 같은 학생들이 안전하게 봄을 지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 주는 내비게이션'


'가정: 꽃샘추위에 얼어붙지 않도록 녹여주는 온실'


"학교는 안전하게 아이들을 돌보며 길을 제시하고 가정은 포근한 보금자리 혹은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것, 이것이 바로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관계입니다. 그래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리가 결국에는 하나의 팀이라는 사실입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애쓰고 있다는 동료의식을 갖고 신뢰를 바탕으로 1년을 잘 보내면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2024년을 기준으로 변경된 생활교육과 관련한 부분도 안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해당 내용도 화면에 띄웠다.


"자.. 방금 전에 우리는 한 팀이야!라고 외쳐 놓고 갑자기 또 법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으려니 죄송스럽습니다만, 필수적으로 안내를 하여야 할 부분이라서 말씀드립니다."


작년 말 생활지도 고시안이 내려와서 학생생활 규정을 개정되었다. 주요 내용은 수업 방해 행위 학생에 대한 분리 조치 및 수업 방해 물품에 대한 주의 후 분리 조치다.


또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도 일부 개정되어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제 및 학교폭력 제로 센터가 운영되고 교권 침해 사안에 대한 교권보호위원회도 단위 학교가 아닌 교육지원청별로 운영되는 지역 교권보호위원회가 신설되었다. 이러한 내용을 연수한 뒤 말을 이었다.


"방금 말씀드렸던 내용이 다소 무겁게 들릴 수 있지만 이는 소수의 그릇된 행동으로 인해 다수의 학습권과 수업권이 침해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임을 널리 양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개학 후 학생들에게도 해당 내용을 안내하고 교육했는데요. 학생들의 반응은.. '아~ 그렇구나' 정도였습니다. 사실 대다수의 학생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내용이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평소 행실이 바르고 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부르지요. 대체로 우리 학생들은 교칙이 없어진다손 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존재들입니다."


학부모 앞이라서 입에 바른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학생들은 예의 바르고 착실한 학생들이 대부분이어서 생활 지도에 큰 어려움을 느끼고 있지는 않았다.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제가 얼마나 지치고 괴로우냐가 우리 학교가 위기인지 아닌지의 척도라는 점입니다. 착실한 우리 문창중학교 학생들 덕분에 아마 저는 나태한 1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1년 간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성을 안내하였다.


그런데 너는 사랑해

"학생들을 지도할 때 항상 마음에 새기는 것이 있습니다. '네 행동은 정말 잘못되었어! 하지만 너는 정말 사랑해'라는 생각입니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 짚어주는 것은 교육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사회화 기관인 학교의 존립 목적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 행동을 교정하면서 '우리 함께 가자'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지도도 응보적 정의의 측면에서만, 벌을 주고 따끔하게 혼내는 것에서만 끝나면 결국 전인적인 성장을 이루기 어렵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따라서 낙인찍기가 아닌 본인의 행동을 스스로 바꿀 동력인 관심과 사랑까지 전달해 주는 것이 참된 교육이라 봅니다."


'참을 인'이 쓰인 화면을 띄운 뒤 설명을 이어갔다.


"'참을 인'이라는 한자는 마음 심 위에 칼날 인이 얹어진 한자입니다. 분노하는 마음과 감정을 바탕으로 참지 못하는 행동을 하였을 때 가장 괴롭고 아프게 찔리는 것은 역설적으로 본인 자신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철학적인 한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잠시의 여유를 갖지 못하고 조급함에 밀려 본인과 주변을 불편하게 만들고 후회하는 상황이 최대한 발생하지 않도록 성심껏 지도하고 보듬겠습니다. 가정에도 이 질풍노도의 아이들이 한 템포 쉬는 마음을 바탕으로 문제를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함께 지도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면서 항상 마음에 담고 있는 것을 전달함으로써 연수를 마무리하였다.


"최근에 학생들에게 한 번 물어봤습니다. 부모님이 너희를 왜 낳으셨을까? 네, 역시 냉철한 우리 학생들 이런 대답을 하더군요. '생겨서요.', '결혼했으니까?' 물론 정직하고 과학적인 정답입니다. 다만 아이들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촉촉하여 지기를 바라며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아냐, 너희 부모님 너네 사랑하려고 낳으셨어.' 사랑하고자 낳으신 자녀들, 사랑으로 키우시느라 고생이 참 많으십니다. 여러 학부모님들께서 사랑하고자 자녀를 낳으셨듯, 우리 학교에서도 이 꽃씨 같은 아이들이 좋은 땅에서 활짝 피어나도록 정성껏 사랑하고 보살피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부족함을 느끼실 수도 있고, 서운한 부분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다만 항상 같은 곳을 바라보는 한 팀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서로 응원하고 지지하는 1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1년, 하나의 팀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부족한 사람의 어설픈 이야기였지만 그 안의 진심을 바라봐주신 학부모 및 동료 교사들의 박수와 칭찬, 환호 덕분에 오히려 내가 더 열심히 일할 동력을 얻게 되는 시간이었다.


이 무거운 생활안전부장의 자리, 게으르고 할 일 없는 1년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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