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India)를 인도하면 생기는 그렇고 그런...

인도 길대장, 그 고단한 직업으로라도 인도를 가고 싶어 떠난 이야기

by 슝이모

“12시까지는 꼭 탑승 장소 앞으로 모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은 빛을 찾아 날아가는 불나방처럼 사방으로 우수수 흩어졌다. 한두 번 비행기를 타봤을 사람들은 아닐 테니 탑승구 문 닫을 시간 정도는 알아서 확인하고 오겠지.

여행팀 인솔을 처음 해보는 나는 면세점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나지 않아 일찌감치 탑승구 앞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비행기를 멀뚱히 보는 것을 면세점 쇼핑 못지않게 좋아하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탑승구 앞 너른 창밖으로 다양한 문양과 색을 옆구리에 두른 비행기들이 창 쪽으로 코를 박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꼬리에 태극무늬를 단 비행기 하나가 끄응 잠에서 깨어나 활주로 위를 슬금슬금 내달리더니 사선을 그으며 하늘을 부양한다. 저 거구의 몸뚱이가 사뿐히 중력을 거스르는 모습은 늘 경이롭다.

베르누이니 양력이니 하는 과학적 원리를 수차례 들었으면서도 저 모습이 내 눈에는 그저 마법이다. 단잠에 빠진 비행기 하나하나를 손가락질하며 녀석들의 국적을 기억해내려 애썼다.


초록색 꼬리의 저 녀석이 광둥어로, 보라색 꼬리를 가진 저 녀석이 아랍어로, 붉은색 꼬리를 가진 요 녀석은 오지(Aussie) 영어로 잠꼬대를 하겠군. 그런데 저 푸르딩딩한 녀석은 어디에서 왔지?


혼자 비행기 국적 맞추기 게임에 흠뻑 빠져있을 때, 면세점 쇼핑을 마치고 온 몇몇 사람들이 “길대장님!”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이 돌아왔다.

그렇다. 나는 여행팀의 길대장이다. 여행가이드가 아닌 길대장.

그 이름이 마음에 들어 선뜻 선택한 직업이었다. 열다섯 명의 길대장이 된 나는 이들을 이끌고 지금 인도로 향해 가는 중이다.


길대장. 생소한가? 여행의 방식이 조금 특별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이 여행팀들은 인도를 한 달간 함께 여행할 예정이지만 정해진 일정이 없다. 그러니 정해진 숙소도 관광지도 없다. 뉴델리에 도착한 후 그다음 여행 장소부터는 팀원들과 논의하여 직접 골라야 한다. 도착한 도시가 마음에 들면 팀원들이 원하는 일정만큼 지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발만 디뎌보고 바로 떠나게 된다. 이때 길대장은 자신이 체험한 인도의 모든 정보를 총동원하여 팀원들에게 알려주고 일정 선택을 도와야 한다. 각양각색의 취향들이 원활한 합의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잘 이끌어야 한다. 도착한 도시의 숙소와 음식점도 팀원들에게 몇 가지 선택 사항을 주고 하나를 정할 수 있게 돕는다. 그렇게 팀원들이 정한 숙소와 음식점을 길대장이 현장에서 발 예약하고 다음 장소로 갈 교통편도 현장에서 바로 예매해야 한다.

글로 쓰다 보니 이 일, 참 고되어 보인다. 그러나 나는 그때 인도 여행에 미쳐있었으므로 다시 인도로 갈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직업, 참으로 복되도다’라고 생각했다.


왜 하필 인도였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 시절 나는 어제와 같은 오늘이 반복되는 그저 그렇고 그런 한국의 직장 생활이 무료해 무언가에 미치고 싶어 미칠 지경이 되어가고 있던 때라고만 기억한다. 그때 우연히 ‘인도’가 눈에 지긋이 밟혔고, 앞뒤 재지도 않고 사표를 던진 후 인도로 떠났다. 기나긴 인도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인도로 떠날 궁리를 하던 차에 ‘인도 여행의 고품격 안내자, 「길대장」을 찾습니다’라는 광고문을 접했다. 길을 안내하는 선구자적인 자질을 요구하는 듯한 직업명의 발상이 마음에 들어 인도 여행사에 문을 두드렸다.


탑승구 앞으로 모인 팀원들 수를 세었다. 세 명이 모자랐다.

“이 세 분, 못 보셨어요?” 물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지만 다급해서 여행 팀원들을 붙잡고 물었다. 서로들 초면이니 아직은 누가 누구인지 알 리가 없다. 명단을 보니 대학생 딸과 딸의 엄마, 딸의 이모다.

이 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탑승구 앞 항공사 직원의 목소리가 공항 이곳저곳에 울려 퍼졌다. 초조해진 나는 탑승구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세 사람을 찾아다녔다. 저 멀리서 두 중년 여성과 앳된 얼굴의 젊은 여성이 쇼핑백을 한가득 안고 느긋하게 걸어온다.

“12시까지는 오셨어야죠.”

“웬 호들갑이에요. 아직 비행기 안 떠났잖아요.”

“선생님, 그래도 방송에서 이름을 부르기까지 하는데….”

“어머, 내가 왜 아가씨 선생님이야? 그냥 여사님이라고 하세요.”

한 달짜리 여행을 선택한 사람들은 대부분 겨울방학을 맞이한 학교 교사들이었다. 그러니 나는 팀원들 호칭을 선생님으로 통일하기로 했던 터였다.

그런데 여사님? 그러는 당신은 왜 내 여사님인데 라는 말은 그저 입안에만 머금고 그녀들을 탑승구로 앞세웠다. 중년 여성은 여권과 항공권을 탑승구 직원에게 거만하게 꺼내 보였고, 그 뒤로 미스트를 연신 얼굴에 뿌려대는 그녀의 동생과 이미 지쳐 보이는 대학생 딸이 줄지어 들어갔다.

나는 항공사 직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거듭하고는 그녀들을 뒤따라 비행기 안으로 들어갔다.


이 사람들과 인도에서 한 달을 여행해야 한다니. 눈앞이 아찔했다.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하면 안 된다는 인생 선배들의 말을 나는 도대체 어느 귓구멍으로 듣고 흘린 건가. 자책이 밀려와 애꿎은 비행기 좌석 벨트에 “얘는 왜 이렇게 뻑뻑해.” 화풀이하며 힘껏 잡아당겼다.


비행기가 이륙한다. 나는 착륙할 때의 안정감보다 이륙할 때의 설렘이 더 좋다. 비행기가 뒤로 뒤로 힘겹게 밀어내는 창밖 풍경을 보며 내가 이륙을, 떠남의 능동적 행위를 좋아하는 그 근원을 찾아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 본다.

호모 사피엔스의 장대한 역사의 시작은 ‘떠남’이었다. 위에서 아래로, 추운 곳에서 따뜻한 곳으로, 사막에서 물가로 떠나면서 인류는 문명을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그들에게 떠남은 무모한 시도였다.

떠났던 이들은 무모했기에 길 위에서 동물에 물려 죽고 추위에 얼어 죽고 절벽에서 떨어져 명보다 일찍 죽어 나갔다. 하지만 떠나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들의 무모함이 한땀 한땀 이어간 길을 따라 문명은 교환되고 섞였고 인류 발전의 대서사를 써 내려갔다.

고난의 행로가 뻔했을 선조들의 떠남은 대의를 위한 희생이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떠나지 않을 수 없는 혹은 떠나야만 하는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을 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식으로 말하자면 멀리서 들려오는 ‘먼 북소리’가 심장을 두드리며 떠남을 부추기니 감히 떠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던 거다. 심지어 성경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을 떠남으로, 불교와 힌두교는 시작과 끝이 없는 떠남의 연속으로, 우리네 민족은 하늘을 떠난 신 환웅에서 인류의 뿌리를 설명하지 않는가. 그러니 내가 이륙을, 떠남을 좋아하는 것도 다 유전자에 각인된 방랑에 기원을 두고 있는 걸 수도….


“저, 아가씨, 비즈니스석으로 우리 좀 보내 달라 해 줘봐요. 아까 슬쩍 보니까 거기 자리가 좀 비어 있던 것 같던데.”

또 그 대학생 딸아이의 엄마, 여사님이다.

“제, 제, 제가요?” 기도 안 차서 말을 더듬었다.

“아니, 그럼 내가 해요? 아가씨가 그런 일 하는 사람 아니었어요?”

울며 겨자 먹기로 지나가는 승무원을 잡아 물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자리를 바꿔 드리면 다른 분들도 다들 바꿔달라 하실 수도 있고 해서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여사님은 투덜거렸지만 나는 내심 고소해했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인도로 가기 전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서 3시간여 환승을 해야 했다. 창이 공항이라. 나는 넓고 세련된 창이 공항의 화려한 면세점을 구경하기 좋아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그 큰 이국의 공항 안에서 팀원들이 면세품에 정신을 팔려 비행기 시간을 놓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비행기에서 나오자마자 흩어지려는 사람들을 붙잡고 수도 없이 탑승구 장소와 탑승 시간을 세뇌시켰고, 요주의 인물이 된 대학생 딸과 엄마, 이모 팀 뒤를 아예 따라다녔다. 탑승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화장품과 향수, 술과 초콜릿 사이에서 뭉그적대며 걸어 다니는 세 사람을 어르고 달래 이번에는 제시간에 맞춰 비행기에 올랐다.

인도에 도착하기도 전에 나는 이미 주먹을 불끈 쥐고 다짐했다. 길대장, 이름에만 겉멋들은 허울 좋은 이 일은 이번이 마지막이 되리라.


한나절 꼬박 걸린 비행을 마치고 드디어 뉴델리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훅 후각을 건드리는 마살라 향이 초면인 열다섯 명과 구면인 나를 격하게 반겼다. 아, 이 반가운 향! 내 이 향을 맡으러 고생 고생해서 왔도다. 아니지, 고생은 이제 시작이겠지.


입국 심사를 팀원들이 잘 마치는지 일일이 확인하고는 모두를 이끌고 수화물을 찾으러 갔다. 컨베이어 벨트의 입구가 거칠게 토해내는 짐들을 하나씩 뚫어지게 쳐다보며 각자 짐을 기다렸다. 이상했다. 시간이 얼추 지나 다른 승객들은 모두 자기 짐을 찾아들고 입국장으로 떠났는데 유독 우리 팀 짐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컨베이어 벨트가 텅 빈 채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 이거 좀 이상한데요, 길대장님?” 사람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이봐요, 아가씨. 뭐해요, 빨리 가서 안 물어보고!”

대학생 딸 엄마의 성화도 있었지만 나도 걱정되어 우리가 타고 온 싱가포르 항공 카운터로 가서 이 상황을 하소연했다. 이곳저곳에 전화하고 모니터 들여다보기를 수차례 반복하던 카운터 직원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환승 시 창이 공항에서 착오가 있었나 봐요. 고객님의 짐들은 지금 두바이로 가고 있다고 하네요. 이틀 후에나 이곳으로 오게 될 것 같아요.”

“네? 두바이요?”

인도 특유의 영어 발음을 바로 못 알아들었나 싶어서 재차 물었다.

“네, 두바이요.”


여행을 자주 하다 보면 짐이 환승구간에서 엄한 곳으로 가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나도 이미 그 정도의 경험은 있으니 크게 당황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번엔 경우가 다르다. 내 짐만이 아니라 내 뒤에서 나만 멀뚱히 쳐다보는 열다섯 명의 짐까지 모두 두바이로 가고 있는 거다.

이 사실을 알리자 사람들은 이 현실을 처음에는 부정했다. 그리고 절망했고, 항공사를 원망했다. 길대장인 나는 이들을 대신해 우리들의 절망과 원망을 항공사에 알릴 의무가 있었다. 나는 단호한 어조로 항공사 직원에게 우리가 직면한 피해를 요목조목 따져 말했다. 지금쯤 두바이에 있을 세면도구와 화장품, 갈아입을 옷 등등을 당장 사야 하는 문제와 다음날 다른 도시로 떠나지 못하니 숙소가 가장 비싼 뉴델리에서 예상외로 더 머물러야 하는 금전적 피해를 특히 강조했다. 항공사 직원들은 자기네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회의한 끝에 우리에게 일 인당 십여만 원에 달하는 인도 루피를 보상금으로 주기로 결정했다. 돈 뭉텅이를 두 손 가득 받아들고 돌아오는 나를 본 사람들은 환호했다. 누군가는 고생했다며 내 등을 두드렸고 누군가는 오히려 더 잘된 것 같다며 상냥하게 나를 안아주었다. 물론 한 사람만 빼고. 그 여사님은 보상금치고 금액이 너무 적은 거 아니냐며 짜증이 잔뜩 들러붙은 목소리로 내게 따졌다.

“그냥 무시하세요.” 팀원들 몇몇이 내게 슬쩍 말을 건넸다. 여행 팀원들은 대부분 다양한 학생들의 성질을 다뤄본 학교 교사들인 까닭인지 이해심도 아량도 넓었다. 그들의 위안이 아니었으면 팀이고 뭐고 나혼자 후딱 한국으로 가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와 부리나케 숙소를 잡고는 근처 식당에서 인도식 첫 만찬을 즐겼다. 내 옆에 여사님의 대학생 딸이 앉았다.

“어느 학교에 다녀요?”

“00대에 다니고 있어요.”

“00대? 내 후배구나!”

“우와 신기하다! 저는 사회 생활하시는 선배님은 처음 뵈어요. 이번 여행 잘 부탁드립니다!”

엄마와 달리 딸은 참 싹싹했다.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여사님의 얼굴이 순식간에 누그러졌다.

“우리 딸 대학 선배님이세요? 어유, 몰라뵀네.”

고국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학연이 먼 이국땅에서 까다로운 상황을 순조롭게 만들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 후로 나는 더이상 그 여.사.님.에게 ‘아가씨’도 ‘이봐요’도 아닌 ‘선배님’으로 깍듯이 불리며 한 달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뉴델리 도착 이틀째 아침, 공항에서 보내주겠다는 짐을 여행 팀원들과 함께 숙소 로비에서 기다렸다. 짐을 싣고 오는 차량(!)을 보고 팀원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숙소 앞 도로가 좁았던 탓에 벽도 세우지 않은 널빤지 리어카 위에 짐을 올리고는 한 사람이 그 무거운 걸 직접 끌고 오고 있었다.

팀원들은 짐을 받아 내리고서 팁을 건네고는 앞다투어 맨발의 리어카꾼과 기념사진 촬영까지 한다.

인도에서는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일을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은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 법한 일인 양 요란스럽게 반응한다. 이 상황을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며 나는 자못 궁금해졌다.

이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인도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수용하게 될지. 어떤 식으로 우리네 삶을 그네들의 삶에 비추어보고 어떠한 앎과 감상을 얻게 되어 한달 후 어떻게 변화되어 있을지.

떠남, 그것만이 해낼 수 있는 유일무이한 비장의 무기이기에. 우리의 선조들이 그리 해왔고, 그 선조들이 발에서 발로 역사를 써가며 현세의 발전을 이룩해준 오래된 시원(始原)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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