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터스텔라〉(2014) 속 수면 이야기
Editor's note
슬립X라이브러리는 우리 일상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수면에 관한 상식과 오해에 관한 이야기를 담습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영화 〈인터스텔라>(2014) 속 냉동수면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배경은 암울한 근미래입니다. 지구는 오랜 식량난, 극심한 황사로 멸망을 목전에 둔 상황이었죠. 이에 주인공 쿠퍼(매튜 맥커너히 배역)는 인류를 구원해줄 행성을 찾아 우주여행을 떠납니다. 일찍이 쿠퍼와 같은 목적으로 태양계 밖을 나갔던 NASA 탐사 대원들―그중에서도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행성을 발견했다’고 신호를 보내온 대원들―을 만나기 위해서였죠. 쿠퍼와 그의 동료들은 토성 근처에 있는 웜홀로 향합니다. 일명 ‘시공의 지름길’로 불리는 웜홀을 통해 단시간 내 다른 은하계로 넘어갔죠.
웜홀 진입 전, 토성까지 가는 긴 여정 동안 쿠퍼 일행은 냉동수면에 들어갑니다. 지구에서 화성까지 가는 데 8개월, 이후 화성의 중력으로 가속해 토성까지 가는데만 14개월이 걸렸으니 인위적으로 오랜 잠을 청했던 거죠. 냉동수면 장면은 이후 또 한 번 나옵니다. 쿠퍼 일행이 만 박사(멧 데이먼 배역)의 행성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냉동수면 상태에 있던 만 박사를 깨운 것이었죠. 만 박사는 말합니다.
“처음엔 약간의 희망을 가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완전히 포기했지. 필수품도 다 떨어졌고. 동면에 들어가면서 깨어날 시간도 안 정했어. 자네들이 죽은 날 부활시킨 거지.”
사실 죽음이 두려웠던 만 박사는 거짓 신호를 보내 두고 동면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냉동수면을 통해 생명을 연장하며 구조를 기다렸던 것이었죠.
냉동수면은 〈인터스텔라〉 외에도 〈혹성탈출〉 〈캡틴 아메리카〉 〈데몰리션맨〉 등 그간 여러 SF 영화에서 심심찮게 등장해온 설정입니다. 특히 〈인터스텔라〉처럼 장기간의 우주여행을 다룬 영화에서 냉동수면은 꽤나 효과적인 장치입니다. 생명을 잠시 ‘일시정지’시켰다 부활하게 한다는 건 잠시나마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말이니까요.
하지만 냉동수면은 현실에선 아직 실현 불가능합니다. 냉동상태로 보존된 ‘냉동인간’들은 존재하지만, 이들 중 깨어난 사례는 전무하죠. 현재 미국 알코르생명연장재단과 함께 냉동인간 시신 보존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 단체는 러시아 냉동인간기업 크리오러스(KrioRus)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시신’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현실에선 사망선고가 있어야 냉동 보존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즉, 냉동인간은 영화에서처럼 냉동상태로 수면을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닌, 사후 냉동 보존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죠. 다만, 사망 시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합니다. 알코르생명연장재단처럼 냉동인간을 ‘생체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쪽도 있습니다.
냉동인간 보존 과정으로 알려진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인체의 혈액을 모두 빼낸 뒤 장기 손상을 막기 위한 부동액을 투입합니다. 그런 뒤 영하 196℃의 액체 질소로 가득 찬 냉동 탱크에 시신을 보존합니다. 혈액을 빼내는 이유는 체액이 얼면서 부피가 커지면 체내 세포를 손상시킬 수 있어서죠. 참고로 업체별로, 냉동 보존 신체 영역별로 차이가 있으나 크리오러스의 경우 보존 기간은 보통 100년, 그에 따른 비용은 최대 46,000 달러 우리 돈 약 6000만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국내에서도 냉동보존을 의뢰한 사례가 있습니다. 크리오러스 공식 웹사이트 상의 국가별 냉동보존 의뢰자 리스트에도 한국 사람이 한 건(2020년 1월) 집계되어 있죠. 그와 관련한 BBC 코리아의 지난해 보도(’냉동인간: 내가 세상 떠난 엄마를 ‘냉동보존’한 이유’)에 따르면 해당 건은 한 남성이 혈액암으로 돌아가신 노모를 보존한 것이며, 국내에서 냉동보존을 의뢰한 사례는 그 외에도 한 건이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첫 번째 의뢰자는 의료 기술이 발전할 날을 손꼽으며 언젠가 사별한 어머니를 되살릴 수 있길 바랐다고 합니다.
그의 바람이 실현될 수 있을진 솔직히 미지수입니다. 물론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2016년 미국의 한 연구팀에선 토끼 뇌를 냉동시켰다 해동하는 것에 성공했다는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죠. 다만 토끼 실험에서처럼 냉동인간도 뇌의 기억 신경망 연결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을진 아직 증명된 바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크리오러스를 비롯한 관련 기업들은 비난을 피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시신을 갖고 장난친다’ ‘희망 고문하며 돈 번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건 아닐 겁니다.
과학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변치 않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인간은 ‘시간’이라는 변수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냉동보존된 인간이 이전처럼 부활할 수 있게 된다 해도 그 사이 시간은 계속 흐릅니다. 더욱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블랙홀에서도 불가능해 보입니다. 쿠퍼는 5차원의 블랙홀 공간에서 딸 머피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순간을 동시에 볼 수 있었지만, 과거 속으로 들어갈 순 없었습니다. 그저 책꽂이 벽 뒤에서 딸의 이름을 계속 부르며 애를 태울 뿐이었죠.
하지만, 쿠퍼는 마침내 답을 찾습니다. 늘 그래 왔듯이. 그 키(key)는 다름 아닌 “머피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쿠퍼는 지구를 떠나기 전 머피에게 선물했던 손목시계 초침을 움직여 모스 부호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합니다. 브랜드(앤 해서웨이 배역)의 말처럼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유일한 것”이었죠.
사랑이 정말 시공의 제약을 거뜬히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더라도 견뎌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냉동보존까지 해두며 붙잡아두지 않더라도, 그 사랑은 결코 달아나지 않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