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내가 읽은 '한강' 작가의 2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작품은 '채식주의자'였다. 평소 유쾌하고 소소한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한강의 소설은 충격적이고 무섭기까지 하다. 그래서인지 한강의 소설은 잘 잊히지 않았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더라도 읽은 당시의 감정과 충격은 그대로 남아 있어 마음을 단단히 하고 읽어야 했다.
이번 소설 또한 이런 나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가족의 처참한 죽음을 목도할 수밖에 없었던 남은 이들의 아픔을 묘사한 것일까? 절단된 손가락을 치료하는 과정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이었고 충격적이었다. 비극적인 죽음으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가족이 어디에서 어떻게 마지막 순간을 보냈을지 그 흔적이라도 찾아 애도하고 싶은 살아남은 이들의 처절한 노력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공식적인 애도는 못하더라도 나름의 방식으로 애도하고자 했던 소설 속 인물들의 몸부림은 작가 한강이 말했던 "지극한 사랑"일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했던 잔혹한 사건은 스스로 분해되어 우리의 역사와 삶에 녹아들기 힘들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폐기물이 다시 토양에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자연의 처리(미생물 분해 등)를 통해 물리적, 화학적으로 변해야 하듯이 인간이 인간에게 가했던 잔혹한 사건이 우리의 역사적 토양에 다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분해와 정리가 필요하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아래에 설명할 생체모사기술(Bio-inspired technology)과 연결했던 이유는 생명 현상을 잘 들여다보면 그 안에 우리의 역사와 삶을 조화롭게 만들어갈 수 있는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즉, 자연이 인간에게 건네는 위로와 지혜를 말이다.
한편으로, '한강'이라는 작가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경하'라는 인물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제대로 소화시킬 수도 없고, 제대로 잠을 잘 수도 없는... 인간은 그래도 생존 본능에 의해 적응하는 인간이지 않던가? '한강'이라는 작가의 상상과 생각은 글에 옮기고, 생활은 건강하고 유쾌했으면 하길 바란다.
수십 억년 전 열악했던 지구 환경에서 생명을 유지하면서 번식하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생명체는 아주 오랜 기간 진화와 적응을 통해 작은 에너지로도 생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체적인 정화와 순환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 최신 연구방법과 첨단기술을 통해 생명체가 품고 있는 저에너지, 초정밀, 고효율, 친환경의 지혜를 해석할 수 있게 되면서 생명체로부터 영감을 받아 기술적 한계를 돌파하고, 글로벌 난제를 해결하는 생체모사기술(Bio-inspired technology)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식물의 씨앗을 모방하여 제작한 '자가 매립 씨앗 운반체'는 공중 파종의 효과를 높인다든지 깊은 바닷속 갑각류 유충에서 발견한 '광(光) 조작 물질'은 태양에너지와 같이 빛에 의존하는 기술 업그레이드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롭 기대하고 있다.
먼저 공중 파종은 비행기, 헬리콥터, 드론으로 씨앗을 살포하여 심는 방법으로, 물리적으로 접근하기 어렵고 넓은 지역에 신속하게 씨를 뿌릴 수 있어 특히 화재와 같은 재해로 인해 황무지가 된 땅을 복원하는 데에 유용하다. 그러나 공중 파종의 특성상 땅에 잘 묻히지 못한 씨앗은 햇빛, 바람 등에 직접 노출되면서 발아율이 매우 낮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쥐손이풀(Erodium) 씨앗이 보이는 자가 매립 방식에 영감을 받은 연구팀이 있다. 쥐손이풀의 씨앗은 얇고 단단하게 감긴 줄기 안에 들어있다가 비가 오거나 습도가 높으면 코르크 따개(드릴) 모양의 줄기가 풀리면서 회전하여 씨앗을 흙 속으로 밀어 넣어(self-burying) 뿌리를 내린다.
연구팀은 이러한 특징을 활용하기 위해 쥐손이풀 씨앗을 모방하면서도 더 다양한 환경에 활용될 수 있도록 씨앗 운반체를 개발하였다. 우선 운반체 재료로 하이드로겔, 종이 등 여러 재료를 고려한 끝에 흡습성이 우수한 생분해성 화이트오크 베니어판(목재)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목재 내부와 외부의 팽창 계수를 다르게 가공하여 씨앗이 토양에 더 잘 매립되도록 하였는데, 땅에 떨어진 나무 운반체는 비와 같은 수분을 만나면 드릴처럼 형태가 변해 땅 속으로 파고들어 가는 원리를 이용하였다.
이번에 개발된 생분해성 씨앗 운반체를 'E-seed'라 칭한 연구팀은 E-seed가 농업과 산림, 환경 생태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산사태를 예방하고, 외래종 침입을 줄이며,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의 재조림에도 사용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씨앗 외에 선충류(천연 농약으로 사용되는 벌레), 비료를 뿌리는 데에도 이용할 수 있을지 또 묘목 심기에도 적용할 수 있을지도 연구가 진행 중이다. 한편, 연구팀은 폭풍우가 운반체를 훼손시키는 것을 관찰하여 가혹한 환경에서도 운반체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연구도 추진할 예정이다.
출처 : Nature, Self-burying robot morphs wood to sow seeds, 2023.2.15.
그다음은 바닷속 생명체에서 얻은 영감에 대한 내용이다. 멀고 깊은 바닷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물들은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광(光) 조작 위장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마치 투명 망토를 두른 것처럼 자신을 보이지 않게 하는 위장 방법은 효과적이지만, 시각에 의존하는 동물들은 어두운 눈 색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다른 곳은 투명하게 하더라도 눈 때문에 포식자에게 들킬 위험이 높아진다. 그런데 일부 갑각류의 유충은 이런 딜레마에 대한 해결책으로 눈의 어두운 부분을 주변 물 색깔과 동일하도록 진화해 온 것이 발견되었다.
새우의 일종인 Macrobrachium rosenbergii 유충의 황록색 눈을 첨단 이미징 기술로 분석한 결과,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물질로 구성된 나노구조체(나노구, nanospheres)가 있다는 것과 이러한 나노구조체를 형성하는 신물질인 이소잔토프테린(Isoxanthopterin)은 소형의 광자 유리(photonic glass)로 빛을 반사하는 동시에 어둠 속에서 시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신물질의 조합을 조절하여 나노구의 크기와 순서를 제어하면 짙은 파란색에서 황록색까지 반사율을 조정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다양한 서식지의 물 색깔에 따라 눈의 반사율을 일치시켜 포식자의 시야에서 자신을 보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먼바다 갑각류의 유충에서 발견한 광학 솔루션을 모방하여 새로운 광자 재료를 최적화한다면 생체에 적합한 광학 재료로 특성을 개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빛에 의존하는 태양에너지, 통신, 원격 감지 등의 기술들의 업그레이드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우리는 먼바다, 깊은 바닷속 생명체와 그 안의 질서를 잘 모른다. 채굴과 채취를 위한 바다 탐험이 아닌 지구 생태계의 일원으로 바닷속 다양한 생명체의 생존 전략과 지혜를 배우기 위한 탐험이 필요한 시점이다.
출처 : Science 표지(Vol.379, Issue 6633, 2023.2.17) / Science, Photonic tinkering in the open ocean, 2023.2.16.; Scienc, A tunable reflector enabling crustaceans to see but not be seen, 2023.2.16
올해 초 노르웨이 의회는 국제사회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국 수역 내 북극 해저에 광물자원 탐사와 채굴을 상업적으로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2024년 1월 9일). 이번 결정으로 노르웨이는 상업적 목적의 심해 채굴을 허용하는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이 수역에는 전 세계 생산량을 웃도는 구리뿐만 아니라 리튬, 스칸듐 등의 희토류가 매장되어 있다고 추정됨에 따라 전기차 제조업체와 광산회사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5년 후쯤 구입하게 될 나의 다음 차는 전기차일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얼마나 좋은 것을 갖느냐의 경쟁이 우리의 삶뿐만 아니라 지구의 여기저기를 참 피곤한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우리의 경제 시스템은 대량 생산에 의한 대규모 공급과 수요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 가지고 있어도 더 많이 갖고 싶은 인간의 본능을 부추기는 분위기로 일단 수요는 만들어 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지구 환경과 자원을 고려해 볼 때, 산업혁명 이후 200년 가까이 우리의 경제체계를 지배해 온 '규모의 경제'라는 개념에서 벗어날 때가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량 생산 = 저렴한 가격'이라는 공식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량 생산 = 저렴한 가격'이라는 간단해 보이는 공식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라는 승수가 더해져 노동, 환경, 건강에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끼치고 있다.
그렇다면 지속가능한 경제체계는 무엇일까? 경제나 경영을 전공한 바 없고, 경제관념도 부족하지만 생각해 보았다. 부추겨진 수요에 기반한 대량 생산과 공급 대신 다양한 수요에 기반한 맞춤 생산과 공급을 의미하는 '다양성의 경제'는 어떨까? 하지만 대량 생산이 필요한 영역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다양성의 경제 안에는 대량 생산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대량 생산 = 저렴한 가격'이라는 공식을 깨고 '맞춤 생산 = 똑똑한 소비'라는 공식을 희망한다. 대량 생산이 주류가 아닌 다양성의 경제체계 안에서 부의 축적은 어느 한곳에 집중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기대도 해본다. 하지만 경제체계 안에는 나를 포함하여 우리 모두가 속해 있기 때문에 급진적으로 변하기보다는 온건하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과 함께 우리의 생각도 변해야 하고, 사회의 분위기 변화도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고, 현재도 진행 중이지만 아직도 우리는 다양한 생명체의 신비로운 작동 원리를 잘 모른다. 우리의 상상 범위를 넘어선 생명 현상을 발견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이러한 생명 현상의 지혜에서 출발한 생체모사기술(Bio-inspired technology)은 획기적인 소재 개발이나 인류가 직면한 식량/에너지 부족, 기후변화, 환경파괴 등의 난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대량 생산, 대량 채굴을 위한 대안적인 방법으로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생명체가 품고 있는 저에너지, 초정밀, 고효율, 친환경의 지혜는 다양한 수요에 기반한 맞춤 생산에 더 많은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한강' 작가의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생체모사기술을 거쳐 다양성의 경제로까지 옮겨 왔는데, 이번 글을 통해 인간이 인간에게 가한 상처를 자연이 인간에게 보여주는 지혜로 치유해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