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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만 사는 정아씨 Jul 01. 2022

워홀 2년 차, 너는 호주가 왜 좋아?

나의 워홀기 4

어느덧 워홀 2년 차, 1년 뒤에 돌아온다 해놓고 여전히 호주에 머무르고 있는 나에게 가족과 친구들이 도대체 언제 한국에 오냐고 물었다. 


"한국에 언제 들어와?"

"모르겠어."

"왜 몰라? 언제 들어올지 생각하고 떠난 거 아니었어?"

"뭐 워홀 비자로 평생 있을 순 없으니까 돌아가긴 해야겠지만.. 호주에 있다 보니까 호주가 좋아서 최대한 더 있다 가고 싶은데, 그 끝이 언제가 될진 모르겠어."

"... 너는 도대체 호주가 왜 좋아?"




사실 지금은 세 번째 워홀 비자를 따기 위해 다시 호주 시골로 들어와 농장일을 하면서 온갖 불평불만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굳이 서드 비자까지 준비하면서 호주에 남아있는, 

호주가 좋은 이유가 있다. 


경쟁의 사회에서 살아왔으나 경쟁하기 싫어서 피하고 편하게 살아온 인생이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나름의 스트레스가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안 보면 그만이고, 하기 싫으면 안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나처럼 속 편하고 단순한 인간조차도 내 나름대로의 계산을 하고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살아온 것이다.


생각해보면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로 내려갔을 때 제주도가 너무나 좋았던 것도 이런 이유였던 것 같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만 있는 새로운 환경에서 자유와 여유를 즐기며 살다 보니 행복했고, 그래서 다시 육지로 갔을 때는 너무 답답했다. 


그렇게 제주살이를 마치고 세 달 뒤, 나는 호주에 왔고, 그게 지금이 됐다. 


지금 내가 호주를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G’day

한국에 있을 때, 나는 인사성이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싹싹한 편도 아니었던 것 같고, 친한 사람이 아니면 굳이 인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호주에 와서 인사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게 됐다. 이곳에선 그냥 길을 지날 때도,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우선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한다.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하고 외국인이 내게 말을 거는 것 자체에 겁을 먹었었는데 익숙해지고 나니 이것이 얼마나 좋은 문화인지 알게 됐다. 


호주에서도 시티는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보니 좀 덜하긴 하지만 어쨌든 대부분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고 소소한 대화를 주고받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다. 


How ya' going?, Good.


이 별것 아닌 짧은 인사 두 마디만 주고받으며 쓱 지나가는 게 전부지만 웃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참견 없는 사회

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누군가 내 인생에 참견하는 순간 벽을 둔다. 이 또한 개인주의적이어서 인 것 같긴 하다. 나는 나 자신이 너무 중요한 사람인지라 누군가 내가 정해 놓은 선을 넘어 들어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거기다 참견까지 한다면, 그건 정말 싫다.


한국에선 참견하는 사람이 많았다. 내 인생이지만 내 멋대로 산다는 것이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구나 라는걸 알게 됐다. 하지만 호주에 와서 느낀 점은 여기 사람들은 남에게 정말 친절하게 다가오지만 거기까지 일 뿐이다. 그 이상의 선을 넘어서 참견하진 않는다. 


'네 건 네 거, 내 건 내 거.'


정이 넘치는 한국 사회에서 이는 다소 야박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나는 이런 문화가 오히려 좋았다. 남의 선택에 훈수를 두지도 않고 존중해 주는 것. 이게 내가 바라는 것이었나 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건설현장 일을 한다고 하면 대부분 막노동이라 하며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호주에선 다들 그냥 자기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일 뿐. 직업으로 사람을 판단하지도 않고, 돈을 적게 벌던 많이 벌든 무슨 일을 하던 그건 그 사람의 일일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남이 뭘 하든 그런 것에 별 관심이 없다. 그게 뭐든지, 누구든지.


내가 몇 살이더라?

여기에선 내 나이를 잊고 산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내가 호주 올 때 나이인 27살에 멈춰 있는 것 같다. 여기선 나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고 외국애들은 동양인을 실제 나이보다 좀 더 어리게 보는 것도 있다. 그리고 진짜 내 나이를 말해도 아직 어린 나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을 만나면 다들 나이를 물어보는데 그럼 그때 멈칫하고 ‘잠깐, 내가 몇 살이더라?’하고 생각한다.


이걸 굳이 호주가 좋은 이유로 꼽을 정도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이 드는 것에 불안감과 걱정을 안고 있었던 나로선 여기서 멈춰진 내 시간이 행복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 멈춰진 시간이 나에게 주어진 또 다른 기회처럼 느껴진다.


예전에 아일라라는 친구가 내게 물었다.


“너는 여기 시즌 끝나면 어디로 가?”


“나는 멜버른으로 갈 거야. 왜냐하면 나는 호주의 큰 도시에 다 살아보는 게 목표여서 이제 멜버른, 퍼스, 태즈메이니아 만 남았거든. 근데.. 모르겠어 멜버른 밖에 못 갈 거 같아서 너무 아쉬워.”


“왜?”


“나는 이제 나이도 있고, 한국도 들어가야 하고…”


“아니야, 너 나이 안 많아. 네가 가고 싶으면 다 가보면 되잖아. 멜버른은 아주 네 마음에 들 거야.”


영어를 못하지만 대충 이렇게 얘기해 줬던 것 같다. 하고 싶으면 하면 되지 뭐가 문제냐는 듯이. 아일라의 말을 듣고 조금 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다 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 어리니까!



너 이거 하고 싶어? 그래, 그럼 해!

갑자기 누군가 ‘수영하러 갈래?’라고 묻는다면 무언가를 챙기기 바쁘다. 수건 챙겨야지, 갈아입을 옷 챙겨야지, '거기 샤워실은 있어?' 하고 묻는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런 복잡한 것들이 필요 없다. 


집에서 차로 오분 거리인 홀슈베이에 수영하러 가기로 하고 바리바리 싸간 우리와 다르게 호주 사람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오는 걸 봤다. 여자들은 옷 안에 비키니를 입고 와서 옷 벗고 바로 들어가서 수영하고 모래사장에 누워 햇빛 쐬다 모래만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위에 옷을 입고 맥주 한잔 마시러 간다. 간식부터 비치 타월까지 가방 가득 짐을 챙겨 온 우리와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게 참 멋있어 보였다. 


단순히 수영을 예로 들었지만 그냥 뭘 하든 남 눈치 안 보고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복잡한 것 필요 없이 단순한 삶이 부러웠다.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기’가 목표인 나는 이런 삶과 이런 분위기가 너무 부럽고 좋았다. 


후회는 하고 난 일 보다 하지 않은 일에서 더 많은 후회가 남는다고 했다. 고민만 하지 말고, 하고 싶으면 하자!


즐기면서 일하는 사람들

농장에서 일하며 느낀 것이지만 확실히 한국인들이 손도 빠르고 일도 융통성 있게 잘한다. 그래서 외국애들이랑 일하다 보면 답답할 때도 많았다. 이걸 이렇게 하면 더 빠를 텐데라는 생각에 속이 터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느리고 여유롭지만 일을 항상 즐기면서 한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느리고 답답해 보인 것이다. 일을 하면서 자기 나라 노래인지 뭔지, 시끄러운 기계소리에 파묻혀 잘 들리지도 않는 와중에 노래를 부르며 일하는 애들도 있고, 옆 사람에게 우리가 초등학생 때나 하던 유치한 장난들을 치며 웃으며 일한다. 일하는데 뭐가 그렇게 즐겁나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하루는 쉐드 매니저가 다가와서 말했다.


“너 웃는 게 안 보여! 아 너 마스크 쓰고 있어서 그렇구나, 미안!”


쉐드에서 일할 때 마스크를 쓰고 일하는데 당연히 내가 마스크 쓰고 있는걸 못 봐서 말한 건 아닐 것이다. 늘 돌아다니면서 장난치는 그 쉐드 매니저 눈에는 항상 말없이 웃지도 않고 일만 하는 내가 눈에 띄었을 것이고, 그래서 좀 웃으며 일하라는 뜻에서 한 말일 것이다.


왜 이렇게 다들 느려 터졌나 답답했는데 이렇게 즐기면서 일하는 그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인상 쓰고 있던 내 모습이 오히려 부끄러워졌다.




물론 한국이 호주보다 좋은 점도 많다. 생활하는 데 있어서 훨씬 더 편리하고 빠르고 다양한 서비스들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빠르고 편리한 생활보다 이렇게 느리고 불편한 생활에서 내가 더 즐겁게 살아간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처음 호주에 왔을 땐 ‘뭐가 이렇게 다 느려?’라고 생각했던 나였는데 이제 한국에 가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다들 뭐가 이렇게 급해?’


2021.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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