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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서영 Feb 24. 2023

인서트, 더 나은 대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순간

영화 <인서트> - 이용수 감독

‘첫 경험’들은 종종 홀대 당한다. 서툴기 마련인 첫 경험들은 능숙하지 못 하다는 이유로 쉽게 무시 받거나 폄하 당한다. 처음이라는 사실 만으로 유일한 순간들에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려고 할 때, 그 특별함은 쉽게 퇴색되고 만다.





카메라를 처음 잡아보는 다큐 촬영 팀 막내 미라에게 인서트 촬영이 맡겨진다. 제대로 찍어 왔을 리가 없다. 가로등은 죄다 흔들리고, 영상 밝기는 제각각이며, 서툰 작동에 혼란스러워 하는 자기 모습까지 전부 담겼다. 게다가 이 인서트 촬영은 낮잠을 자고 싶었던 선배의 구실일 뿐이었고, 애써 찍어온 결과물은 안 봐도 별로일 게 분명하다며 누군가에게 보여지기도 전에 지워져 버렸다. 떨어뜨려 고장을 내버린 카메라의 수리비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아무리 봐도 이 날은 미라에게 운수가 썩 좋지 않은 날이다.




그러나 이 날이 미라에게 매우 특별했음은 분명하다. 이 날은 ‘첫 경험’으로 가득하다. 처음으로 누군가 자신에게 촬영을 맡긴 날이며, 처음으로 카메라로 세상을 담아본 날이고, 처음으로 화면 속 세상에 푹 빠진 날이기도 하다. 미라가 앞으로 카메라를 수없이 잡아 베테랑이 된대도 이 첫 경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유일한 것이며, 이 날 느낀 감정은 다시는 맛볼 수 없을 초심이다.





선배는 미라의 이 중요한 순간을 너무 쉽게 무시해버렸지만, 영화는 미라의 첫 경험을 제대로 알아봐 준다. 찍을 건 하나도 없고 선배는 꼰대라고 불평하던 미라가 카메라로 자신이 담은 세상을 보는 순간을, 영화는 최선을 다 해 특별하게 담고자 노력한다. 배경에는 안 어울릴 만큼 벅찬 음악이 깔리고 점차 진지해지는 미라의 얼굴은 한껏 클로즈업 된다. 슬로우 모션이 걸린 카메라는 미소가 번지는 미라의 얼굴에 최대한 길게 시선을 둔다. 곧 날 것처럼 발뒤꿈치가 들어올려지는 건 첫 경험의 짜릿함에 기분이 한껏 들뜨기 때문일 거다. 40초 남짓의 이 장면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미라의 이 순간에 구석구석 눈길을 준다.




이용수 감독는 ‘작품을 평가 받는 것이 불편한 마음이 들어 시작한 작품’이라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우리에겐 모두 서툴다는 이유로 세상에게 무시당했을 특별한 순간이 하나쯤 있다. 영화는 보여지기도 전에 너무 쉽게 평가를 받고 사라진 미라의 첫 경험에 시선을 줌으로써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했지만 내 기억 속에는 커다란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모든 첫 경험들, 그런 순간들은 더 나은 대접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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