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갈서영 Mar 08. 2023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권력

영화 <솧> - 서보형 감독

감독은 권력자다. 영화 속 세계를 만든다는 것은 그 속의 사건들과 인물들,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창조하고 주무를 수 있는 힘을 쥐게 된다는 뜻이다.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에게 이유 모를 불행을 선사하기도 하고, 그 안에서 세계 평화를 이룩할 수도 있으며 그 사이의 어떤 것도 이뤄낼 수 있다. 감독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관객들에게는 이 권력이 잘 와닿지 않는다. 작품 속 세계는, 관객들이 얼마나 몰입하여 감상했는지에 상관 없이 영화관을 나오면 없었던 듯 사라지는 허구이기 때문이다. <솧>은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 이 권력이 얼마나 공포스러울 만큼 강력한 것인지 알린다.



영화 속의 지배-피지배 관계는 다층적이다. 시선을 가진 사람과 시선이 향하는 사람, 질문하는 사람과 대답하는 사람, 고용인과 피고용인, 취조하는 사람과 취조 당하는 사람, 영화를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 사이 점점 깊어지는 비대칭적 권력 관계로 미경을 옭아맨다. 최종적으로 감독은 배우 미경을 영화 속 인물 미경과 동일시하여 감독과 작품 속 인물, 즉 창조주과 피조물의 관계로 미경을 끌어당긴다. 그는 수진의 진술 속 남자, 형사, 그리고 감독으로 존재한다. 현실과 영화 속 세계는 그가 이 분리된 두 영역에 동시에 존재함으로써 연결되고, 그는 이 두 세계를 오갈 수 있는 다리로써 기능한다.




이후 진행되는 인터뷰는 배우 미경을 캐릭터 미경에 밀어넣는 과정이다.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감독은 캐릭터 미경을 배우 미경에게 인위적으로 끼워맞춘다. 미경과 수진이라는 이름의 일치만 해도 기막힌 우연인데, 알고 보니 감독의 전 여자친구 이름도 미경이었으며, 대본은 마침 수정되어 보수적이라던 인물에게 노출 장면이 생기고, 다 잠겨있다던 단추는 사실 한 개가 사라졌단다. 자기 자신을 연기한다고 말할 때까지 배우 미경은 캐릭터와 자신을 일체화하는 것이 자신의 의지라고 생각했지만, 이쯤 되면 의심이 되는 게 당연하다. 교살당한 미경처럼 조여진 목걸이가 갑자기 불편하게 느껴졌을 때, ‘이상할 정도로 비슷하네요’ 라고 이 불안감을 말로 꺼냈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후다.



단추는 영화 속 세계로의 유인으로부터 미경을 지켜줬던 것이자 유일하게 그를 현실 세계에 발붙이게 해준 ‘토큰’이다. 감독은 캐릭터 미경이 입고 있던 코트도 단추가 하나 없어졌다는 설정을 만들어내면서 현실의 증표였던 단추마저 영화 속 세계로 편입시켜 버린다. 마지막 동아줄을 놓친 것처럼 미경은 현실과 완전히 단절되고 살해당한 영화 속 인물 미경으로서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시선을 가진 사람과 시선이 향하는 사람 사이의 비대칭은 이 둘 사이 내내 존재했다. 마지막 부분에서 카메라는 드디어 감독의 등 뒤에서 미경을 비추며 이 시선의 주인을 드러낸다. 형사나 감독으로서 자신을 드러낼 필요가 없었던 것은 의심할 바 없는 그의 권력이다. 반면 심문을 받았던 수진이나 카메라 앞에서 수진의 연기를 했던 배우 미경, 그리고 배우로서 감독과 인터뷰를 하는 미경은 내내 화면에 덩그러이 놓여 관객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그 어떤 것도 숨길 수 없을 만큼 밝은 조명 아래에서 모든 움직임과 말을 낱낱이 녹화당하는 사람과 배후에서 그 모든 것을 조종하는 사람은 명백한 지배 관계 아래에 있다. 


사실 모든 영화에는 각자의 창조주가 있다는 걸 모르는 관객은 없다. <솧>은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인식하지 않는 이 지배 관계가 공포를 자아낼 수 있을 만큼 강력함을 알린다. 그리고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이 권력을 눈 뜨고 똑똑히 지켜보게끔 한다. 



작가의 이전글 매니큐어를 바른 공룡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