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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이브 Sep 30. 2023

미니벨로 타고 제주도 달리기

3-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

배가 항구에 정박한 느낌이 들었다.

한껏 기대감을 안고 나간다.


한잠 자고 일어나니, 배가 항구에 닿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대한 선박이라 해도 움직이는 느낌이 줄어들자 공기마저 차분해졌다. 꿈틀대는 공기의 느낌도 없고, 배에서 엔진떨림도 느껴지지 않았다. 인기척에 일어나 커텐을 젖히니, 내가 묵고 있는 다인실 침실 앞 동의 커텐이 열려져 있고, 자신의 자취를 남기듯 파란색 이불은 뒤엉켜 있었다. 사람들은 이미 나가고 없었다. 딱 한 명 있었다. 운동화가 가지런히 놓여져 있고, 커텐도 끝까지 친 것을 보니 아직도 꿈나라인 듯했다. 이윽고 객실을 비워달라며 직원이 사람들에게 안내를 했다.  


옷차림 선택


그 사람을 제외하고는 내가 제일 늦게 일어났다. 이렇게 푹 잠을 잘 수 있었던 것은 전날 피곤했었기 때문이리라. 맥주 한 캔과 동생과의 어린시절을 추억하며 울고 웃었던 기억이 더욱 꿈속으로 파고들게 한 것 같다. 잠을 깨고 나니 제주에 도착했다는 기쁨으로 많은 사람들은 이미 바깥에 나가 있었고, 차를 갖고 온 사람들은 미리 승차하러 갔다. 나는 세수를 하고, 오늘 입을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 8월의 제주는 더울 테니 반바지와 민소매 티셔츠였다. 여름의 건강한 피부톤을 유지한다기보다는 비타민 부족으로 피부를 노출하자는 나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동생도 반바지 반팔을 입었다.


브롬톤과 파이크 외장 10단 운반하기


우리는 자전거를 포장한 채로 어깨에 메고, 다른 한쪽으로는 여행용 짐가방을 메고 내렸다. 처음으로 섬에 닿는 자전거는 내 마음보다 더 부풀어오른 것 같았다. 내 사바파이크 외장10단 미니벨로는 왜 이렇게 덩치가 큰지 모른다. 동생의 자전거는 뭔가 컴팩트했지만, 내 것은 부피가 크고, 폴딩된 것이 고정되지 않고 자꾸 움직였다. 전부터 몇번 타보면서 이 사실을 미리 알았기에 커다란 부직포가방을 다이소에서 구해왔다. 오천원밖에 하지 않는 부직포 가방 마저 없었다면 자전거가 자꾸 풀려서 제주도에 내리기도 전에 마음의 안정을 위한 주문을 외워야할 지도 모른다. 부직포 가방이 있어서 그나마 덜 풀렸다.

동생의 브롬톤은 어깨에 폭 멜 수 있었지만 내 것은 매우 큼직해서, 어깨에 메더라도 상당한 압박감이 있었다. 누군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결국엔 브롬톤 간다. 파이크 10단을 어깨에 멜때마다 그 생각을 했다. 이래서 브롬톤 브롬톤 하나보다. 그렇지만, 타보기도 전에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내 자전거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려고 했다.


제주도 해안 도로 주행하기


제주항에서 용두암까지 달렸다. 처음에 헤맨다더니 정말 헤매고 말았다. 길에 표시된 파란색 환상 자전거길 표시를 따라가더라도 헤매고 있다. 주된 길(메인 길)과 부차적인 길(옵션 길)도 안내해주기 때문에 그리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주행하다가 갑자기 파란색이 없어질 때가 있다. 잘못 들어온 것이다. 분명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었지만 말이다. 이해할 수 없는 표시에 카카오 지도를 켜서 환상 자전거길 코스를 살펴보면서 유심히 달려야 했다. 그리고 용두암 즈음 오면 헤매지 않고 달릴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 대부분 보도블록인 곳에 자전거길을 만들어둬서 보도블록을 많이 이용했다. 덜크덩덜덜 거리는 자전거 진동으로 주행감이 정말 떨어졌다.

남들은 환상 자전거길을 열심히 달리시던데, 이 길을 어떻게 달린거지? 옆으로 가끔씩 지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분들은 보도블록으로 달리지 않고, 차도로 달린다. 초보인 나는, 동생에게 절대로 차도 옆을 달리지 못한다고 말하고는 안전한 도로로 달리겠다고 했다.  환상 자전거길은 아스팔트 잘 포장된 차도 한쪽에도 만들어두었기에 잘 달릴 수 있는 곳도 있다.



첫번째 인증센터를 놓치다.


제주항에서 용두암까지는 3.8킬로미터. 달리고보니, 바다가 보였다. 우리는 옆으로 자전거를 눕혀놓고 사진을 찍었다. 용두암 인증센터는 어디야? 이렇게 해맑은 모습으로 달렸다. 자전거 주행 길에 빨간 박스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인증센터가 나오지 않았다. 느낌이 놓친 듯했다. 카카오 지도를 검색해보았다. 앗, 벌써 500미터를 지나쳤다고 나온다. 자전거를 거꾸로 올라가자고 했다. 내리막길을 한참 내려와서 되돌아가자면 업힐이었다. 나는 의욕에 찼지만, 동생은 그깟 인증 도장 안 찍겠다고 했다.


"무슨 소리! 이걸 찍어둬야지, 인증도장 없이는 못가."


나는 거꾸로 갈 생각도 있었지만 500미터 정도 걸어서 다녀오리라, 자전거를 맡기고 수첩을 들고 올라갔다. 동생도 여기까지 왔으니, 내가 대신 찍어주고 왔다.


이후로는 인증센터를 사전에 어드메쯤인지 기억해두고,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용두암의 내리막길을 지나고 나니, 동생이 나를 불러 세운다.


"브레이크 좀 그만 잡으면 안 될까. 손에 쥐나겠어."

"뭐? 내리막에서 안전해야지."

"뒤에서 오는 나도 좀 생각해줘야지."

"그럼 네가 먼저 가."


내리막길에서 속도 내기를 두려워하는 나는 브레이크를 계속 잡았다. 내리막 요령이 없다보니, 용두암부터 떨어지는 내리막길에 좁은 보도블록을 내려오느라 고생했는데, 뒤 따라오는 동생은 충돌하지 않으려 더 잡았나보다. 동생이 약간 식은땀을 흘리긴 했다. 나는 여기서부터 동생에게 선두를 맡겼다. 우리 둘인데 선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길을 잘 알아야 하기에 내가 앞장섰던 것뿐, 이제부터는 해안을 따라가기만 해도 되었다. 같이 달리고 싶은 누나의 속을 알기는 할까. 속도의 입장차이가 있어서 먼저 가라고 했다.

동생은 쌩하고 달려갔다. 나는 그냥 두었다.


'동생과 내 속도가 정말 다르구나.'


나는 혼자 탄다는 마음으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서로가 마음이 편했다. 언덕을 오를 때 동생이 나보다 조금 느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롬톤과 외장 10단차이인가? 분명 평지에서는 동생이 훨씬 빨랐는데 말이다.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런데 한번 바꿔 타보았는데, 브롬톤을 타든 외장10단을 타든 내가 더 업힐에서 나았다.

따릉이로 자전거를 종종 타던 내가 업힐에서 좀더 강한 것 아닐까 싶었다. 브롬톤은 손에 익지 않으면 업힐 할 때 약간 버벅거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외장 10단은 오른손만으로 기어를 바꾸어가면서 업힐을 하고, 평탄한 도로를 달렸다. 제법 잘 달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8월, 6시30분에 시작해서 9시까지 제주의 바람은 매우 살가웠다. 얼굴을 날카롭게 스치고 달아나는 바람도 있었지만, 대개는 살긋하게 왔다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떠나갔다. 새벽에 출발한 우리는 애월 해안 도로를 달리기 전에 9시가 되니 배가 고파졌다.


기운 내게 편의점에서 뭐라도 먹고 가자


이른 시간이고 평일이라 문을 연 식당이 나오지 않았다. 편의점이 보이자 우리는 자전거를 세웠다. 편의점 유리 밖 눈에 보이는 곳에 자전거를 세우고선 우리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용어, 보급을 했다. 마치 내가 정말 자전거 매니아라도 되는 듯, 이러한 용어를 쓰는 것이 좋았다.


탄수화물인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고, 땀으로 날아간 수분 보충을 위해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평상시 컵라면을 먹을 일이 거의 없어서 즐기지 않았는데, 식당도 없고, 먹을 것이 마땅치 않아서 기력보충을 위해 컵라면과 오렌지주스 얼음컵을 샀다. 컵라면이 이렇게 맛있는 거였구나,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러한 시스템이 있는 자전거길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달릴 수 있는 거라며 마음의 인사를 편의점 직원에게 하면서 나갔다. 편의점에 들어갈 때 장갑과 고글, 헬맷을 벗을 때의 그 시원함과 기력보충을 한다는 기쁨, 이제 다시 달려볼까 하며 다시 착용할 때의 긴장감과 또다시 달릴 기대감이 좋았다. 이러한 사소한 감정들조차 자전거를 탈 때의 기분좋은 경험이 된다.


목이 말라, 시원한 아아를 마시자


9시가 지나 10시~11시가 되니, 목이 계속 타들어갔다. 8월에 자전거로 달리다보니, 땀을 많이 흘린 것 같다. 가을이나 겨울에는 땀이 그다지 나지 않아서 물을 마시는 횟수도 절대적인 양도 줄어드는 편이었다. 그것에 대비하여 물을 2개씩 넣기는 했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더 목이 말라 중간중간 세우며 물을 마셔야했고, 물이 마침 떨어져서 전망좋은 카페에 들어가기로 했다.

카페 종업원이 나왔다. 우리에게 자전거를 아무데나 세우지 말라며 쌀쌀한 눈빛과 말을 했다. 들어가기도 전부터 이런 대접이니 옷차림을 보고 땀냄새 난다고 싫어하려나? 부담이 되었다. 다들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제주를 즐기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다른 곳으로 가는 수밖에.

제주도를 달리다보면 어떤 곳은 자전거를 여기 안에 세우라며 손수 안내해주는 곳도 있었다. 사람마다 이해도도 손님의 밀집도에 따라서 반기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힘들게 도착한 곳이었기에 기분은 좋지 않았다. 그래도 굳이 경치로 소문나서 사람들이 많을 만한 곳, 그곳에 미련두지 말고, 다음 카페로 가보자고 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보내고 나면 다음 카페는 오랫동안 나오지 않아 방금한 선택을 후회하게 만들었다. 진짜 꽤 오랫동안 달렸다. 동생은 지쳐보였고, 나는 곧 다음 카페를 알아보겠다고 앞장섰다. 두리번거리면서 바라보다가 열려 있는 듯한 카페에 들어섰다. 우리는 카페 담벼락에 서로의 자전거를 묶고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의 분위기가 특이했다.


"엥? 여긴 뭐지?"


처음으로 가는 신비한 분위기였다. 물에 초가 있는 접시가 둥둥 떠다니면서 자연음색을 내고 있었다.

'뎅그렁 뎅그렁' 소리가 마음의 깊은 곳을 만나게 해주는 듯한 신비한 카페였다. 우리는 바깥 풍경도 너무 좋아서 음료를 마시다가 너무 더워서 안에 들어와서 먹었다. 이윽고, 또다른 느낌이 연출되었다.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사람들은 사진을 직기 시작했고, 나는 그곳에 잠시 머물렀다. 이 뜨거운 여름, 하얀 백사장에, 차가운 안개가 발 밑에서 뿜어져나오고, 마치 신선 숲 속에 들어온 듯한 그 느낌. 자전거를 타고 우연히 들렀던 이곳에 동생과 나란히 앉았다. 잠시 앉아 접시가 내는 공명음을 들으며 마음을 정화하는 기분이었다.

이곳은 입소문이 난 곳인지 이곳을 우연히 찾아온 우리 같은 사람들보다는 알아보고 찾아온 이들이 더 많았다. 우리는 이런 곳을 우연히 발견한 기쁨으로 멋지다고, 의외의 장소에서 만나는 선물이라고 주고받았다.


뜨거운 자전거 길에는 얼음 음료를 보관할 통을 준비하자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흘린 정직한 땀은 흘린 만큼 갈증을 느끼는 빈도수도 많아졌다. 편의점에 들르면 몸이 너무 더위를 느껴서 얼음이 동동 떠다니던 음료수컵을 꼭 하나 더 샀다. 그러나 밖에 갖고나오면 얼음이 너무 빨리 녹아버려 속상했다. 얼음이 녹기 전에 차가운 물을 마셨다. 그덕분에 물을 마시는 양이 많아졌다. 달리느라 열이 차올라 뜨거워진 속을 차가운 얼음물 한 모금이 달래주는 그 기분, 갈증은 쉽게 내려앉는 것 같았다. 세 번째 카페에 도착했을 때 텀블러도 함께 파는 매장이었다. 텀블러를 샀다. 이 텀블러는 생각보다 너무 얼음을 잘 보존해줘서, 정말 잘 산 아이템이었다. 동생에게 사주고서는 나도 하나 갖고 싶어서, 똑같은 것을 찾아보니 없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비슷한 것을 찾았다. 매장 안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손에 쥐고 있었다. 나와 같은 생각인 듯하다. 그렇게 산 두 개의 텀블러는 해가 쨍쨍 나는 길 위에서 우리에게 얼음을 유지하고, 생수물만 채워 넣으면 차가운 음료수를  먹을 수 있게 해주었다. 알고보니 뚜껑을 덮으면 다음날까지도 얼음이 살아있다는 유명한 텀블러였다. 자전거 주행 시 텀블러는 꼭 가지고 다녀야겠다.




이렇게 물도 많이 마시고, 카페도 몇 차례 들르면서 제주도 해안을 80킬로미터 달렸다. 모슬포항 근처까지 갔다. 60킬로미터에서 멈췄으면 가장 좋은 컨디션을 유지했을 텐데 동생은 그 이후 통증을 호소했다. 나는 70킬로미터까지는 통증이 없었지만 그 이후 약간 느껴졌다.


우리는 팔과 다리에 비타민D 생성도 양껏 했지만, 따갑도록 그을렸다. 그날, 다이소에서 알로에젤을 사서 바르고, 쿨시트를 팔과 다리에 덮어쓰고 자도, 피부가 열상을 입어서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다음 날 달리려고 했지만 내리쬐는 햇빛에 피부가 타들어가듯 쓰린 아픔 속에 결단을 내렸다. 송악산 인증센터까지 5킬로미터만 달리고, 버스로 점프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수순을 밟았다.


성공인가?

동생과의 특별한 추억이라면 그럴 수도 있고.


실패인가?

제주도 200km 주행을 다 하지 못한 거라면 그럴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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