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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리 May 16. 2023

호주에서 만난 야생 동물들

겁 많은 부부의 서호주 로드 트립

서호주를 여행하다 보면 여러 야생 동물들을 만나게 된다.

호주를 대표하는 캥거루, 코알라뿐 아니라 에뮤, 소, 양, 딩고, 흑조, 돌고래 등 이름을 알 수 없는 야생 동물들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아무 곳에서나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가끔 서프라이즈처럼 뜬금없이 툭툭 튀어나오기 때문에 눈을 크게 뜨고 있어야 한다.

에뮤는 이곳에서 처음 봤는데 만화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닮아서 꽤 친근감이 느껴졌다.

에뮤 부부, 에뮤 부부와 아이 둘, 에뮤 공동체 등... 운전을 하면서 많은 에뮤들을 볼 수 있었다.


가장 살 떨렸던 건 카리지니 국립공원에서 만난 딩고(들개).

혼자 걷는 날 노리고 보폭 맞춰 따라오던 거무스름한 딩고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어찌나 섬뜩하던지.


가장 기대했던 캥거루와 코알라는 얀쳅 국립공원에서 봤는데 둘 다 야행성이라 대부분 늘어져 있는 모습에 만족해야 했다. 느릿느릿 잠자리를 옮기던 코알라와 귀찮게 하지 말라고 자리를 피하는 캥거루.


야간 운전을 하다가 운 좋게 캥거루를 만났지만 녀석이 우리 차로 돌진할까 봐 가슴을 졸여야만 했다.

가슴 아프게도 살아 있는 캥거루보다 로드킬 당한 캥거루를 더 많이 봐야만 했고, 

그날 이후 우린 더 이상의 야간 운전을 하지 않았다.


몽키미아에서 돌고래 가족들도 만날 수 있었다.

예전에 어부들이 먹이를 주던 것이 계기가 되어 매일 아침 저렇게 먹이를 얻어먹기 위해 찾아온다고 한다.

돌고래를 이렇게 해변에서 가까이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가장 날 놀라게 했던 건 퀜다.

쿠지비치(Coogee Beach) 캠핑장을 휘젓고 다녔던 녀석을 처음 본 순간 얼음!

영락없는 쥐였다. 그것도 엄청 큰 자이언트 쥐.

우리 저녁 먹는데 자꾸 달려들어서 정말 밥이고 뭐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아침에 키친룸에 가보니 안내문에 녀석의 소개가 쓰여있었다. 이름은 퀜다.

쥐가 아님이 확인되었지만 그래도 내 머릿속엔 여전히 커다란 쥐로 각인이 되어버렸다.

나중에 호주 면세점에서 쿼카 옆에 살포시 놓여 있는 이 녀석의 인형을 발견하고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낮에 보면 귀여웠으려나?

누구는(쿼카) 관광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데 너는 쥐새끼 취급을 받는구나. 

이놈의 외모지상주의.


여행 중에 가장 애정이 가고 기억에 남는 야생 동물은 역시나 앵무새다.

액스마우스 중심가에서 관광객들 주변을 맴돌며 해적질을 하던 하얀색 앵무새들을 보고 엄청 신기했는데, 이렇게 직접 마주하게 되다니. 

그저 감개가 무량할 따름이다.


카리지니 국립공원을 가기 위해 하루 묵었던 톰 프라이스 캠핑장에서 녀석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처음엔 비둘기 떼인 줄로만 알았다.

근데 세상에! 핑크핑크한 앵무새라니.

앵무새가 비둘기들처럼 돌아다니는 광경에 난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이거 실화임?

아몬드를 몇 개 주니 떼거지로 몰려와 더 내어놓으라며 뻔뻔하게 요구하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살면서 앵무새들과 식사를 같이 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애완견처럼 녀석들과는 교감이 된다는 자체도 마냥 신기할 따름이다. 심지어 애교까지.

식사 내내 내 곁을 떠나지 않고 계속 애교를 부려서 이름까지 지어준 핑키 원, 핑키 투.


앵무새가 지능이 높다는 얘기만 들었지, 이 정도일 줄이야.

아몬드를 다 먹더니 목이 말랐는지 수돗가로 가서 물을 마시려는 모습에 정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심지어 수도꼭지까지 틀어가며.

성격 급한 내가 보다 못해 가서 틀어주긴 했지만 녀석들의 지능에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체크 아웃 시간이 되어 아쉽게 핑크 앵무새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다음 행선지인 카리지니로 향하려는 그때,

타이어 펑크 발견!

우리나라처럼 보험사를 부른다고 휑하니 출동할 수 있는 땅 덩어리도 아니고, 하필 토요일이라 일하는 호주인들도 없고, 스페어타이어는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고...

행복 뒤엔 불행이 따르는 게 인생의 이치라지만, 대략 난감이 아닐 수 없다.

렌터카 회사에 연락을 하니 퍼스와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 자기들도 어찌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이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머나먼 오지에서 이 난관을 어찌 헤쳐나가야 할지.

한숨을 쉬며 돌아보니 핑크 앵무새들이 무리 지어 놀고 있다.

그냥 확 여기서 애들이랑 같이 눌러앉아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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