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많은 부부의 서호주 로드 트립
"오~ 부럽다. 잘 다녀와. 올 때는 양손 무겁게. 알지?"
농담처럼 건네는 말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웃어넘기지 못하는 건 나의 소심한 성격 때문이다.
매번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지인들에게 기념 선물을 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곤 한다.
누가 사 오라고 강요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부채감이 드는지 도무지 나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다.
평소 쇼핑을 즐겨하지 않는 내가 해외에서 지인들의 취향을 고민해 가며 숙제처럼 쇼핑몰을 돌아야 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 상상은 늘 현실이 되고 만다.
이번에는 더욱 그런 압박이 컸다.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인 데다가 3주라는 긴 일정으로 인해 지인들의 부러움을 샀고,
그런 마음을 조금이나마 보상해주고 싶은 심리(?)로 인해 쇼핑 리스트는 점점 늘어만 갔다.
캠핑카를 빌리는 순간 대도시와 멀어지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캠핑카를 빌리기 전, 하루를 할애해서 퍼스 도심의 쇼핑몰을 돌아다녀야 했다. 장장 2만 보 이상을 걸어 다니며 구석구석을 살폈지만 쇼핑에 소질 없는 우리 부부의 손은 가벼웠다.
호주에서 유명하다는 T2 차 3개가 전부였다.
살인적인 호주 물가도 한몫했다.
호주는 저렴 게 고기 밖에 없어서 매일 고기로 배를 채워야 했다며 우스개처럼 떠들었지만 사실이었다.
고기 한 팩이 과자 두 봉지(한 봉지에 대략 5불) 값과 맞먹었으니.
<증거 사진>
보라, 이 영롱한 선홍색을.
이처럼 고기가 싱싱하고 저렴하니 안 먹을 이유가 없다.
그에 반해 다른 공산품들은 비쌌다. 호주는 인건비가 비싸서 그렇다고 한다.
선물로 고기를 부위별로 사다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육류는 국내 반입이 안 되니 다른 것을 찾아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여행을 다니다가도 쇼핑샵이 보이면 의무감처럼 들어가 한 바퀴 훑어야만 했다.
다리품을 열심히 팔며 돌아다닌 결과 선물을 구입하는 데 성공했고, 선물을 받은 지인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난 선물의 노예였다.
내가 왜 그렇게까지 부채감을 느꼈을까 생각하니 나 역시 여행에서 돌아온 친구들에게 선물을 받았던 기억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친구의 손엔 항상 선물이 들려 있었다.
뜻하지 않았던 선물에 기분이 좋았고, 그 기분을 되돌려주고 싶었던 심리가 자연스럽게 부채감으로 이어졌던 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런 강박으로 여행을 망쳐선 안 되겠다는 반성이 들었다.
일상을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어 떠난 귀한 여행이 아니던가.
오롯이 날 위해 즐길 수 있는 여유와 지혜를 가져야 함이 마땅하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어릴 땐 시간과 돈이 부족했지만, 지금은 거기에 체력도 부족하다.
한정된 체력으로 여행을 하려니 여기저기 안 쑤시는 곳이 없다.
왕년엔 새벽 비행도 끄떡없었지만 지금은 비행 다음 날 하루를 온전히 쉬어야 다음 일정이 가능하다.
늙어가는 몸뚱이 하나 끌고 다니기도 벅찬 나이가 되어 버렸다는 걸 이제 인정하기로 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체력이 부실해지다 보니 여행 선물 사는 것에도 인색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머리를 가볍게 살기로 했다.
삶도 여행도 미니멀리즘.
'양손 무겁게'라는 강박은 벗어던지고 앞으로는 양손 가볍게 오갈 생각이다.
가쁜한 마음으로 가볍게 떠나고, 가볍게 돌아오자!